공예 장인과 일본 유학생의 작은 대화, 큰 얘기

낙안읍성 짚물공방에서 벌어진 한일간의 대화

등록 2005.09.10 11:05수정 2005.09.1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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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진지한 모습으로 양국의 여러가지 얘기들을 쏟아내는 임채지 선생과 토모요씨

진지한 모습으로 양국의 여러가지 얘기들을 쏟아내는 임채지 선생과 토모요씨 ⓒ 서정일

쯔네야마 토모요(24) 그리고 그녀의 친구 오에 미와꼬(24) 그들은 모두 일본인이다. 토모요는 한국에 유학 온 지 1년 반 정도 된 신참내기 유학생, 미와꼬는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는 토모요씨의 친구. 그들이 금요일 오후 고즈넉한 낙안읍성 민속마을을 찾았다.



그리고 사립문을 열고 들어선 곳, 짚물공방. 가장 향토적인 곳이기에 누구나 눈길이 머무는 곳이지만 그들에겐 더 더욱 특별한 장소. 한국을 이해하려 하고 과거 한일간의 여러 가지 일들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에 가장 한국적인 색채가 나부끼는 이곳을 그냥 지나칠 리가 만무하다.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하면 되겠어?"

임채지(69) 선생은 일본인임을 알고 그들을 향해 볼멘소리로 한마디 한다. 그렇게 얘기의 물꼬를 임 선생이 먼저 튼다. 토모요씨는 한국 땅임을 인정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의 조선땅, 조선반도의 땅이라 못을 박는다. 서두부터 심상치 않은 깊이로 얘기가 오간다 싶더니 결국 그녀들은 마루에 걸터앉는다.

a 대화를 마친 임채지 선생이 미와꼬와 악수를 나누며 헤어짐을 아쉬워 한다

대화를 마친 임채지 선생이 미와꼬와 악수를 나누며 헤어짐을 아쉬워 한다 ⓒ 서정일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다양한 이야기는 곁에서 듣는 사람까지도 덩달아 귀를 쫑긋하게 한다. 불과 1년 정도 되었다는 토모요씨의 한국어 구사 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 언어가 그 나라 문화의 시작이자 함축된 것임을 볼 때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사용하는 토모요씨는 이미 한국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충분히 객관적일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한일간의 과거사에 대한 주제로 집요하게 질문을 해대는 임채지 선생. 어찌 보면 이미 첫 대화에서부터 통했다는 것을 직감한 것인지 얘기가 길어지고 질문이 집요해진다. 때론 질타하듯 때론 의견을 물어보듯 밀고 당기길 30여분, 빙그레 웃으며 임 선생은 커피 한잔 하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사실 매우 미묘한 것들이 숨어 있기에 대화가 끊어지기 일쑤인 한일간의 이야기들, 하지만 오늘 작은 토론은 숨 쉴 겨를을 두지 않고 흐르는 물에 물레방아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듯 흥겹고 매끄럽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안타까움. 그리고 속상한 현실.

a 토모요씨와 미와꼬씨가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립문을 나선다

토모요씨와 미와꼬씨가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립문을 나선다 ⓒ 서정일

잠시 후 그들은 따스한 커피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 커피와 프림이 섞이듯 생각이 섞여 부드러운 우정을 발하고 있다. 임 선생은 공연을 위해 들렀던 일본에서의 일들을 회상하며 그들의 좋은 점에 대해서도 얘기하기 시작했고 토모요씨는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인들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꾸준한 교육을 통해 앞으로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뭔가를 찾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1시간이 넘도록 진행한 그들의 작은 대화,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큰 이야기였던 수많은 것들은 어느새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진다. 비록 한국과 일본의 모든 국민들이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지는 않지만 또, 어떠한 이유에서든 풀려하지 않지만 적어도 영상 속에 담긴 오늘 얘기들은 먼 훗날 큰 바다에서 만날 작은 실개천 정도는 되리란 희망을 걸어보게 된다.

덧붙이는 글 | 낙안읍성 민속마을 http://www.nagan.or.kr

덧붙이는 글 낙안읍성 민속마을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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