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 정말 금해야

굽은 등으로도 당당하게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그 분을 보며

등록 2005.09.10 18:49수정 2005.09.1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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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교회 문을 열려고 보니 누군가 누워 있었다.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등이 약간 굽은 것 같았고, 옷에서는 심한 냄새가 풍겼다. 그 옆, 교회 마당에는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었다. 번호판도 없는 오토바이였다.


"아저씨, 일어나세요."
"……."

"아저씨, 교인들이 이제 몰려 와요."
"……."

"아저씨, 다른 곳으로 옮기셔야 돼요."
"……."

몇 번에 걸친 이야기 끝에 그 분은 겨우 그 자리를 떴다. 그리곤 교회 안쪽에 있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때마침 교인들이 한두 명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벌러덩 드러누워 있던 자신이 민망했던지, 그 분은 의자에 기대앉았다.

그 분은 그 분대로 밖에 앉아 있고, 교인들은 모두 교육관 안에서 기도회를 가졌다. 모든 교인들은 기도회에 집중했고, 그 분은 나름대로 쿨쿨 잠을 잤다. 한 시간 가량 가졌던 기도회가 끝날 무렵, 일찌감치 나는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그 분이 있으려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은 보이지 않았다. 그 모든 짐들을 챙겨서, 오토바이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실 기도회가 끝나면 교육관에서 잠을 자는 몇 몇 분들과 함께 잠을 자도록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분이 없는 상태에서 그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해도 변명만 될 듯했다.

후회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 그 분을 대했을 때 너무 냉하게 대하지만 않았더라도, 몰려오는 교인들보다도 오히려 그 분을 더 따뜻하게 대했더라도, 그 분은 결코 말없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 분의 뒷모습이예요. 얼마나 당차고 꿋꿋한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 분의 뒷모습이예요. 얼마나 당차고 꿋꿋한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습니다.권성권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낮, 그 분이 또 다시 교회 앞마당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 분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밀려왔다. '다시금 기회를 주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셨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으니, 어제와는 달리 더 따뜻하고 정성스레 그 분을 맞았다.

"아저씨, 오늘도 오셨네요. 자 일어나세요."
"어휴, 죄송합니다. 한 숨만 자고 가려고요."

"그래요, 잘 오셨어요. 들어가시죠."
"근데 어떻게 여기에 오신 거죠."
"……."

그때부터 그 분은 자기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 놓았다. 고향에서 자란 이야기에서부터, 전기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 이야기, 그곳에서 쫓겨나서 14년 동안을 지금 이렇게 떠돌아다닌다는 이야기, 그리고 가끔씩 다리 밑에서 잠을 잔다는 이야기 등 여러 것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 분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그저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만이 그 분과 나 사이를 조금이나마 좁힐 수 있는 길 같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과는 달리 키도 반이나 작고, 등도 많이 굽은 그 분을 이해하기란 나와 그 분이 너무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 3일 남았네요."
"무엇이요?"

"공사판에서 7일 동안 일을 했는데, 이제 3일만 더 하면 10일이잖아요."
"그런데요?"

"그러면 하루 4만원이니, 40만원을 받잖아요."
"그 돈 받으면 뭐 하시게요."

"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여관도 잡고, 물건도 사서 팔아야지요."
"참 대단하시네요."
"그렇죠. 세상은 재밌게 살아야 해요."

그 분이 하는 이야기를 듣자, 그저 동정심에 이끌려 쳐다보는 나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웠다. 미리서 그 분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재단하고 쳐다보던, 나의 모습이 되레 초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키에 굽은 등으로도 너무나 당당하게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그 분을 보며, 나는 물끄러미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곤 선한 마음을 전하려거든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베풀어야 할 것이고,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것임을 그 분 뒷모습을 바라보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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