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태어나지 않은 1명의 성인을 기다리다

'살아 있는 민속마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

등록 2005.09.28 22:52수정 2005.09.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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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관가정(조선 성종 때 이조판서 역임한 손중돈 선생이 지은 정자) 오른 길가에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관가정(조선 성종 때 이조판서 역임한 손중돈 선생이 지은 정자) 오른 길가에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 추연만


a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져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 마을이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져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 마을이다. ⓒ 추연만

경주시 강동면의 양동마을은 집 하나하나가 높은 건축가치가 있어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돼 있다.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조선시대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히며 보물로 지정된 건물도 4개나 된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집단 거주한 마을로 지금까지도 양대 집안 후손들이 살고 있는 민속마을이다.

대규모 기와집 50여 채가 잘 보존돼 있고 초가집들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통마을로, 최근 문화재청이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할 정도다.


양동마을은 다른 민속마을과 달리 살아 있는 전통마을이다. 사람이 살면 건축물 보존이 더 잘 된다. 이를 '활용보존'이라 한다. 초가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1년 안에 반드시 폐가가 된다 한다. 그래서 인간생활이 있는 양동마을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어느 어르신에 따르면 이 마을에는 3명의 성인이 태어난다는 예언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손씨 이씨 문중에서 각각 1명씩 성인이 (손중돈, 이언적 선생을 지칭) 나왔으나 나머지 1명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양대 문중 후손들이 지금까지 이사를 가지 않고 마을을 지킨 결과가 됐다는 것이다.

a 기와집과 초가집 사이로 연기는 피어 오르고

기와집과 초가집 사이로 연기는 피어 오르고 ⓒ 추연만


a 대종가 일수록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아래는 노비와 평민이 산 집들이 있어 조선시대 신분구조를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다.

대종가 일수록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아래는 노비와 평민이 산 집들이 있어 조선시대 신분구조를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다. ⓒ 추연만


a 양동민속마을은 사람이 살고 있다.(위의 오른쪽 사진이 '향단', 밑의 오른쪽은 정자 '심수정')

양동민속마을은 사람이 살고 있다.(위의 오른쪽 사진이 '향단', 밑의 오른쪽은 정자 '심수정') ⓒ 추연만

양동마을 입구 왼쪽 산비탈에 우뚝 선 향단(이언적 선생이 살던 집) 안뜰에 있던 오래된 향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마을회관에 계신 어르신께 그 이유를 질문하니 “허허, 젊은 사람이 눈살미가 있네”하시면서 “얼마 전에 태풍 ‘나미’로 인해 향나무가 넘어졌다”고 대답하신다. “향단을 관리한 분이 오래 전부터 향나무 버팀목을 세워 줄 것을 건의했으나 당국은 여태껏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담장 보수에 사용된 시멘트가 향나무 뿌리를 병들게 했다고 하신다. 구멍이 뚫린 문화재 관리 현장을 봐, 씁쓸한 기분이 든다.

안동 하회마을에는 길가에 늘어선 상가들이 많아 전통마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오듯, 양동마을 한복판에 있는 교회와 쭉 늘어선 전봇대가 항상 눈에 거슬렸다. 그러나 양동교회는 곧 마을 변두리로 옮겨가고 전봇대 지중화 사업도 예산이 확보됐다 하니 퍽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형산강을 서남방 역수로 안은 지형인 곳에 ‘거꾸로 勿자형’ 산과 계곡을 따라 160호 집이 세워진 양동마을은 예로부터 이런 지형이 부의 상징이라 믿고 있었다. 실제로 과거에는 기계천 건너 넓게 펼쳐진 안강들판 대다수는 손씨, 이씨가 소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에는 형산강 수량이 많아 포항의 고깃배도 쉽게 오갈 수 있는 살기 좋은 ‘명당’인 셈이었다.


a 물봉 산중턱의 (종가집)향나무 가지 사이로 초가집이 보이죠?

물봉 산중턱의 (종가집)향나무 가지 사이로 초가집이 보이죠? ⓒ 추연만


a 집안에 사당을 모시고 있다(수졸당)  양동마을엔 이런 집들이 4채 있다.

집안에 사당을 모시고 있다(수졸당) 양동마을엔 이런 집들이 4채 있다. ⓒ 추연만


a 산중턱에 지은 큰 집에는 물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사진은 마을 동남쪽 산비탈의 '이희태 가옥' 앞 우물.

산중턱에 지은 큰 집에는 물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사진은 마을 동남쪽 산비탈의 '이희태 가옥' 앞 우물. ⓒ 추연만

큰 기와집은 평지가 아닌 나지막한 구릉과 산허리에 주로 배열돼 있다. 한 장소에 밀집되지 않은 채 우거진 숲 사이로 듬성듬성 흩어져 대저택이 세워져 있다. 대종가일수록 높은 곳에 집이 서 있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산비탈에 세운 집들은 평지보다 많은 건축비와 기술이 들어간 것으로 짐작된다. 양반들은 왜 높은 산에 집을 지었을까? 식수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의문이 쉽게 풀리진 않는다. 혹시 손씨, 이씨 양 문중은 건축에 선의의 경쟁을 한 것은 아닐까?

대규모 고택에는 집안 노비들이 산 행랑채도 보인다. 그리고 외거 노비들이 사는 초가집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평민들은 기와집보다 낮은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한다. 지금은 대부분 철거되고 초가집은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그러나 양동마을은 위쪽은 기와집 그리고 아래는 초가집이란 기본구조는 아직도 그대로 드러난다.


손씨, 이씨 대종가를 포함해 집안에 사당을 모신 저택도 4개나 보인다. 그리고 기와집의 전체적인 모양은 대부분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자는 ㄱ자형, 서당은 一자형) 햇빛이 집안 가득 들어오란 뜻인가? 양동마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인 향단은 마당이 2개로 지붕이 날일(日)자 모양이다. 해와 같은 기운들이 가득 들어오라는 뜻이라고 한다.

a 양동마을 고택은 대다수 'ㅁ' 자 형 건축 양식이다. 햇볓을 들게하는 실용적이는 (관가정)

양동마을 고택은 대다수 'ㅁ' 자 형 건축 양식이다. 햇볓을 들게하는 실용적이는 (관가정) ⓒ 추연만


a 관가정에 오르면 안강 들판이 훤히 보인다.

관가정에 오르면 안강 들판이 훤히 보인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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