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집에 500년 향나무가 있는 까닭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 두 종가의 서로 다른 문화

등록 2005.10.06 16:53수정 2005.10.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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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월성 손씨 종가집의 향나무. 종가집 며느리는 이른 아침부터 마당의 풀을 뽑고 있다.

월성 손씨 종가집의 향나무. 종가집 며느리는 이른 아침부터 마당의 풀을 뽑고 있다. ⓒ 추연만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는 월성 손씨, 여강 이씨 종가집이 평지가 아닌 언덕에 우뚝 선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의 큰 기와집은 '거꾸로 勿자형'으로 뻗은 구릉의 능선이나 중허리에 듬성듬성 배치되어 있다. 숲이 우거진 언덕위의 기와집들을 언뜻 봐도, 이 마을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금방 짐작케 한다.

양동마을 중간에서 왼쪽 비포장 길을 조금 오르면, 산허리에 우뚝 선 월성 손씨 종가집(서백당)이 눈에 띈다. 마을 어르신에 다르면 조선 세조 때 이시애 난을 평정한 '손소'란 분이 이 마을에 들어와 월성 손씨 종가를 이뤘다고 한다. 서백당은 지금으로부터 약 550년 전에 지은 것이란 안내판도 보인다.


a 서백당은 월성 손씨 종가집이며 회재 이언적 선생이 태어난 외가집이다.

서백당은 월성 손씨 종가집이며 회재 이언적 선생이 태어난 외가집이다. ⓒ 추연만

a 종가집 장독대. 언덕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물 머슴'이 아랫 샘에서 물을 길어올렸다 한다.

종가집 장독대. 언덕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물 머슴'이 아랫 샘에서 물을 길어올렸다 한다. ⓒ 추연만

서백당 바깥마당에는 종가집 며느리가 잡초를 뽑고 계셨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조심스레 질문을 했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안채와 사당을 보여주긴 부담이란 답을 하신다. 대신 집의 구조와 종가집 이야기를 전했다.

조선 성종 때 영남 관찰사를 지낸 이언적 선생도 이 집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서백당은 이언적 선생의 외가집인 셈이다. 외삼촌인 손중돈 선생(중종 때 이조판서 역임)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는 것.

"언덕에 있는 종가집은 식수를 어떻게 해결했나?"는 물음에 며느리는 "저 아래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사람이 둘 있었다"고 하면서 "예전에는 그 사람들을 '물 머슴'이라 불렀다"고 설명했다. 종가집을 둘러싼 조선시대 생활상과 신분구조가 언뜻 연상된다.

a 서백당 안에 지은 사당. 숲과 어우러져 은유적인 분위기가 난다.

서백당 안에 지은 사당. 숲과 어우러져 은유적인 분위기가 난다. ⓒ 추연만

a 여강 이씨 종가인 무첨당의 사당은 집안 제일 높은 곳에 있다.

여강 이씨 종가인 무첨당의 사당은 집안 제일 높은 곳에 있다. ⓒ 추연만

서백당에는 550년을 넘긴 향나무가 마당 동쪽에 서 있다. 높이가 약 9m, 둘레가 3m에 이르며 나뭇가지는 사방 6m나 되는 큰 나무다. 향나무는 마치 분재나무처럼 잘 다듬어진 모양이다. 동, 남. 북, 3방향으로 뻗은 밑가지 위로 또다시 세 가지가 꾸불꾸불 자라고 있으며 잔가지들은 서쪽방향으로 왕성한 성장을 하고 있다.

'양동의 향나무'(경북기념물 8호)는 세조 2년(1456년)에 손소 선생이 종가집을 지은 기념으로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러 나무 가운데 왜 향나무를 심었을까? 향나무 뒤에는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 한 사당이 보인다. 종가집은 집안에 사당을 짓고 조상을 모신 모셨다. "하루 건너 제사가 있다"는 말처럼 대종가는 1년에 수 십 날은 향을 피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a 이언적 선생이 거처한 무첨당(보물 지정)은 화려한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지금 이 곳에 사는 부부가 마주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언적 선생이 거처한 무첨당(보물 지정)은 화려한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지금 이 곳에 사는 부부가 마주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추연만

a 돌에 피는 '바위솔'이 종가(무첨당) 기와에도 피었다.

돌에 피는 '바위솔'이 종가(무첨당) 기와에도 피었다. ⓒ 추연만

월성 손씨 종가집은 집안의 사당을 나무숲에 살짝 숨겨둔 듯, 은은한 분위기가 풍겨 더욱 끌린다. 같은 마을의 여강 이씨 사당 배치와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씨 대종가의 사당은 집안 높은 곳에 세워져, 손씨 사당보다는 더 직설적인 분위기다. 집안의 성향에 따라 사당의 위치도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두 집안의 건축양식도 다른 특성이 엿보인다. 여강 이씨들이 지은 기와집은 대체적으로 크고 화려하다. 양동마을의 큰 건축물 가운데 손씨의 종택(서백당)과 정자(관가정)를 제외한 대부분의 큰 기와집은 여강 이씨가 소유한 집이다. 이씨 집은 손씨에 비해 튄다는 인상을 준다.


아마도 두 집안은 과거급제를 누가 많이 했느냐와 더불어 건축에도 선의의 경쟁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시각에서 양동마을 건축물을 비교하면 재미있는 볼거리가 더 많을 것이다.

a 경상도 감찰사 시절 이언적 선생이 왕으로부터 받았다는 향단(보물 지정). 99칸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50여 칸이 남았고 건물 오른쪽에 있던 오래된 향나무는 지난 태풍 '나비'로 넘어져 베어졌다.

경상도 감찰사 시절 이언적 선생이 왕으로부터 받았다는 향단(보물 지정). 99칸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50여 칸이 남았고 건물 오른쪽에 있던 오래된 향나무는 지난 태풍 '나비'로 넘어져 베어졌다. ⓒ 추연만

a 이조판서를 지낸 손중돈 선생이 지은 정자 '관가정'(보물 지정)의 향나무. 건물 뒤쪽에 사당이 보인다.

이조판서를 지낸 손중돈 선생이 지은 정자 '관가정'(보물 지정)의 향나무. 건물 뒤쪽에 사당이 보인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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