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보고 '이거'라고?

외국인력 내실있는 한국어 교육 필요

등록 2005.10.01 19:07수정 2005.10.0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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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육용 교재들 ⓒ 고기복

외국인이주노동자 문제로 지방노동부사무소를 오갈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기에 마냥 주눅 들어 보이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보려고 왔으면서도 괜히 죄진 것 같고, 고용주 눈치가 보이는 것이 노동자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특히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고용주의 협박과 '불법체류자'냐는 근로감독관의 질문을 받다 보면, 눈동자는 커져만 가고 어깨는 움츠려들고 목소리는 기어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 저는 한 지방노동사무소에서 일반적으로 노동사무소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분위기와 전혀 딴판인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고용주를 만났습니다.

필리핀인 '나타타(30)'와 이름을 물어보지 못한 그의 친구는 한국에 온 지 석 달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근로감독관의 출석 요구 시간보다 여유 있게 도착했는지, 건물 밖 의자에 앉아 있던 그는 연신 싱글벙글 하며 신발바닥으로 땅바닥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배가 듬직하게 나온 중년 남자가 서류 봉투 하나를 들고 약간 비켜 서 있었는데 그 역시 마냥 웃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약속 시간에 여유가 있던 터라, 필리핀인으로 보이는 그의 옆으로 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꾸무스따까(안녕하세요?)"
"따갈로그(필리핀어) 할 줄 아세요?"
"아뇨, 조금만. 무슨 일로 왔어요?"

무슨 일로 왔느냐는 질문에도 역시 마냥 웃기만 하길래, "혼자 왔어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옆에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이거 사장님!"이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말이 서툰 탓에 옆에 함께 온 고용주를 가리키며, '이거'라고 하는 실수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보면서 사장이라는 사람은 허허 웃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서툰 한국어에 장난기가 발동한 저는 "한국에선, 이거 사장님하고 말하지 않아요. '이놈, 사장'이라고 말하든가, '이 분은 사장님'이라고 말해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제야 옆에서 지켜보던 사장이라는 사람이 "처음인데 잘 통하시네요. 이 사람들이 '이거'니 '이 분'이니 알면 제가 여기까지 왔겠어요?"라며 말을 건네 왔습니다.


그들이 노동사무소에 오게 된 이유는 이랬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식사를 마칠 때쯤 일당제로 일하러 왔던 사람 중에 한 명이 나타타에게 일회용 커피를 타오라고 시키자, 피곤했던 나타타는 손을 흔들며 싫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커피를 부탁했던 그 사람은 젊은 사람이 어른을 무시한다고, 옆에 있던 빈 페트병을 들고 나타타의 목을 한 대 때렸다고 합니다.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여긴 나타타는 사장에게 말을 했고, 사장은 그 일에 대해 일당으로 일하러 온 사람에게 주의를 주고 일이 끝난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 일요일에 나타타는 성당에 가서 자신이 당한 일을 전했고, 그 일을 들은 동료 필리핀인 중 한 명이 노동부에 신고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타타나 사장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왜 지방노동사무소에서 오라고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 두 사람에게 "노동부까지 왔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먼저 "일해야지요. 다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하고요"라고 답하자, 나타타는 다시 "이거 좋아요"라며 옆에 있는 사장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이놈 좋아요. 아니면 이 분 좋아요 라고 해요" "이놈 하면 사장님 앵그리, 이 분 하면 사장님 해피" 일부러 콩글리쉬로 농담을 하자, 옆에서 있던 사장이 "일은 잘하는데, 말까지 예쁘게 하면 내가 업고 다닌다"며 거들었습니다.

저는 둘의 표정이나 대화를 보면서 외부인이 페트병으로 때린 부분이 분명 잘못되었지만, 그들이 노동사무소까지 와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그들이 그곳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말'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만큼 불편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은 그러한 불편을 감수하고 고용하는 것이고, 외국인 이주노동자들 역시 그러한 불편을 알고 입국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불편을 마냥 감내하라고 하는 것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안길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취직을 위해 입국하는 노동자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시키도록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육이 형식적으로 시행되다 보니 큰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그런 한국어 교육이 좀 더 내실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는 인력송출 국가에 대해 출국 전 교육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국내에 입국한 후에도 지속적인 교육 지원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언어 교육의 문제는 외국인이주노동자에게 한국어만 배우라고 하는 것은 일방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외국인을 고용하는 업체측에서 외국인력의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우리말을 배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는 점에서 한국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음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언어 교육의 문제는 외국인이주노동자에게 한국어만 배우라고 하는 것은 일방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외국인을 고용하는 업체측에서 외국인력의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우리말을 배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는 점에서 한국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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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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