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 과연 호국의 화신일까?

[서평] 한국역사연구회가 펴낸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록 2005.10.10 21:16수정 2005.10.1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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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예전 학교공부를 하면서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웠다. 그저 집권자들이 어떻게 했는지에만 관심을 쏟았고, 정치적 변화만을 쫒아 역사를 외우는데 급급했다. 그래서 옛사람들의 생활상은 알 수가 없었고, 시험을 본 뒤엔 역사는 잊어버린다. 역사에서 문화와 사회는 외면당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란 집권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민중들의 삶이 합쳐져야 진정한 역사가 되는 것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민중들의 삶과 문화를 중심에 두는 역사서들은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 시도를 하는 책 중에 사계절출판사의 <한국생활사박물관>이 있었고, 지금 소개할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도 그 중의 하나이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책 표지 / 한국역사연구회, 청년사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책 표지 / 한국역사연구회, 청년사청년사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1988년에 출범한 한국역사연구회(아래 연구회) 회원들의 연작이며, 청년사에서 발간되었다. 연구회는 과학적 역사학을 수립하고, 그렇게 하여 나온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하여, 전문연구서와 다수의 교양서를 공동으로 발간하는 단체이다. 그들이 각자 주제를 설정하여 나름대로의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의 시작은 문화이다. 팔만대장경 등의 불교이야기, 빠질 수 없는 고려청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 풍수지리 이야기 등을 다룬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강성원 이화여대 이화역사관 연구원이 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어떻게 다른가'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낮추어 평가하는 사람은, 전자를 사대주의 역사관에 입각하여 편의대로 사료를 없애버렸다고 혹평한다. 그리고 후자에 대해서는 황당무계하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기록하여 사료적 가치가 없다고 악평을 하기도 한다"라고 전제한다.

'삼국사기' 고려후기 원본 / 김부식, 조병순 소장
'삼국사기' 고려후기 원본 / 김부식, 조병순 소장한국역사연구회
하지만 일부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서술은 하되 편찬자가 창작하지 않는다.(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원칙 아래 객관적으로 편찬하였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높은 귀중한 책으로 평가한다. 이에 비해 <삼국유사>는 다른 어떤 역사책보다도 일반 백성에 대한 서술이 많고, 그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보이는 것, 그들의 생활상과 의식, 신앙 따위의 사례와 향가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여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 홍영의 동덕여대 강사가 쓴 '술에 울고 웃던 고려인 삶의 빛과 그림자'는 고려시대의 음주문화를 재미있게 서술해주고 있다.


"오늘날 서민층과 가장 절친한 소주는 고려 후기에 들어와서 전래의 막걸리, 청주와 함께 3대 주종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각광받는 안동소주는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할 계획으로 안동에 병참기지를 만들면서 전파시킨 것이다. 이렇게 밖에서 굴러들어 온 소주가 박힌 토속주를 빼내고 자리를 잡고 난 이후, 소주는 빠른 속도로 유행을 타게 된다."

소줏고리(술을 빚을 때 쓰는 증류기) / 농업박물관 소장
소줏고리(술을 빚을 때 쓰는 증류기) / 농업박물관 소장농업박물관
그 뒤 금주령이 내려질 정도로 급속하게 퍼졌는데 그 때문에 조선시대에 와서는 약으로 쓰는 것 이외에는 소주를 마시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할 정도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안동소주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되는 것은 원나라가 정벌하지 못한 일본을 한류열풍과 소주 등의 문화로 정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삼별초는 원래 도적을 잡던 조직

2권의 '정치, 경제생활 이야기'에서는 '삼별초는 무엇을 위해서 싸웠나'란 제목으로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가 쓴 글이 눈에 띈다. 그동안 삼별초는 '몽고의 침략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끝까지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마친 호국의 화신'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삼별초의 모체가 되는 야별초가 나라 안의 도적을 잡기 위해 조직되었으며, 그 도적은 지배층의 수탈에 항거하여 일어난 백성들임을 먼저 지적한다. 따라서 삼별초는 무인정권을 지탱하던 무리들이며, 이에 지배층의 수탈대신 또 다른 몽고의 수탈을 걱정한 백성들이 호응하면서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결코 '호국의 화신'으로 묘사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 결핍된 정통성을 만회할 목적으로 민족 주체성 확립이란 구호를 내걸었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삼별초의 대몽항쟁이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되었다. 더욱이 여기에는 고려의 무인 정권을 민족적이고, 진취적인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군사정권의 상징을 조작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었다."

'고려첩장 불심조조' (1271년 삼별초 정부가 일본에 보내 몽고와 함께 싸울 것을 제안한 문서)
'고려첩장 불심조조' (1271년 삼별초 정부가 일본에 보내 몽고와 함께 싸울 것을 제안한 문서)한국역사연구회
즉, 이 책은 삼별초를 '호국의 화신'처럼 만든 것은 군사정권이 쿠데타의 명분과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왜곡, 강조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의식주 문제' 깊이 다루지 않아 아쉬워

이 책은 약간의 문제점이 보이긴 한다. 전체적으로 쉽게 쓰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일부 글쓴이는 전문용어를 아무 설명없이 쓰거나, 오히려 이해를 어렵게 할 낱말이 군데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1권의 '불교 교단의 세속화, 지눌의 결사 불교' 중 "돈오란 자기 마음의 본체인 공적영지와 부동지를 단박에 깨닫는 것이다" 따위를 들 수 있겠다. 불교에 이해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감당할까?

또 2권의 '물길 따라 뱃길 따라 열리는 고려의 교통로'는 당시의 22개 역도를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한 나머지 지루한 느낌을 주었으며, 또 현재적 관심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에 색깔 별로 나눈 22개의 길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게 그것인 것 같았다면 지나칠까?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인 의식주 중 옷과 살림살이 그리고 말글살이 부분이 한 꼭지도 없었다는 것은 많은 아쉬움을 주고 있다. "어떻게 살았을까?"라면 적어도 의식주를 골고루 다뤘어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단점은 굳이 옥의 티를 찾아내려 한 데서 나온 것이고, 전반적으론 참 좋은 책이라는 말을 굳이 해야만 한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명제는 분명 가지고 있지만 외우기에 급급한 역사 공부와 정치, 경제에 편중된 방향 때문에 얼마나 역사를 멀리 해왔는가?

이렇게 역사를 멀리 해온 대중들에게 사실 역사는 재미있는 것이며, 현대를 사는 우리가 꼭 알아야 되는 소중한 것이란 편지를 이 책은 띄우고 있다. 그것도 그동안 익숙하게 들어오던 진부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재조명한 내용들임은 물론 진보와 자주가 거슬리지 않게 문장 속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 곳곳에 소중한 자료들을 제시하는 친절함도 잊지 않았다. 

한국역사연구소 편집위원장 채웅석 교수(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한국역사연구소 편집위원장 채웅석 교수(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채웅석
책을 펴낸 데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연구회 채웅석 편집위원장(가톨릭대 교수)과의 인터뷰를 했다.

- 연구회를 조직한 사연은 무엇이며, 어떤 단체인가?
"연구회는 1980년대 변혁운동에 동참하려는 역사학자들이 주체가 되어 1988년 9월 3일 출범하였다. 또 연구회는 수공업적이고 분산적인 활동의 제한성을 극복하고 연구자 대중조직을 건설한 것이며, 각각의 작은 활동경험과 성과를 계승 발전시켜 연구자 자신이 학술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과 연구자들의 임무가 한국사회 변혁에 대한 기여에 있다는 점을 합의해냈다.

연구회는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의 수립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삼고, 이 같은 목적의 달성을 위해 공동연구, 연구 성과의 대중화, 회지 회보발간 및 대중을 위한 출판 보급 활동, 따위의 목적에 맞는 사업 등을 하기로 했다."

- 연구회의 현황은 어떤가?
"연구회의 회원은 연구회원과 일반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회원은 일상적으로 연구회의 공동연구 활동을 하는 회원으로 주로 석사이상의 한국사연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회원은 연구회의 사업취지에 동의하여 연구회에서 발간하는 회지를 구독하는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연구회원은 480여명, 일반회원은 120여 명이 활동 중이다."

- 연구회에서 펴내는 책의 대강을 보면 전문서도 있고, 대중서도 있는데 어떤 계획 아래서 나오나?
"역시 연구자 단체이니까 전문서적 위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중화를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대중서 펴냄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대중화의 한 방법으로 웹진도 발행하고 있다."

-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펴냈나?
"연구회원들이 거의 직접 대학 강단에 서는 사람이어서 그걸 활용해 대학생들에게 고려시대에 알고 싶은 것을 설문조사했다. 그것을 가지고 선호도를 따져 흥미있어 하는 것을 뽑아 주제를 설정하고, 이를 각 연구원이 맡아서 글을 쓰게 했다."

고려말 문신 박익 묘의 벽화 일부분(경남 밀양군 소재 / 당시 고려 여성들의 옷과 장신구를 볼 수 있다)
고려말 문신 박익 묘의 벽화 일부분(경남 밀양군 소재 / 당시 고려 여성들의 옷과 장신구를 볼 수 있다)한국역사연구회
- 내용에는 '훈요10조' 중 8조 즉, '차현 이남 공주강 밖의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몇 군데 간단히 언급되는데 이의 위조 가능성을 심도있게 다룰 수는 없었나?
"훈요10조 중 8조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학자들이 짚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심증일 뿐 구체적인 기록이나 증거가 없어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공개되지 말아야 할 문서가 공개된 점, 왕의 문서가 경주 최씨 문중에서 발견된 점, 왕건의 처가가 있는 호남을 배척할 까닭이 없는 점이나 고려 관료들이 호남 차별이 별로 없었던 것 등이 위조의 가능성을 열어 주지만 반대로 후백제의 저항 때문에 자연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이 부분은 구체적으로 다루기는 곤란한 내용이다."

- 1권이 '사회ㆍ문화', 2권이 '정치ㆍ경제' 이야기로 사회와 문화를 전면에 부각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의도적이었나?
"학생들이 목말라 하는 부분이 '사회ㆍ문화’에 집중돼 있었기에 1권을 사회ㆍ문화로 했고, 2권의 정치ㆍ경제도 내용에서는 실제로는 사회ㆍ문화적인 요소를 많이 집어넣었다. 또 사실 그동안의 역사책들이 정치ㆍ경제를 주로 다뤘기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다가간 것이다."

- 전체의 내용 특히 삼별초 이야기 등은 진보적이고, 자주적인 면이 짙게 보이는데 그 까닭은?
"70년 이후 80년대에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 주를 이루는 연구회는 '비판적인 아카데미즘'을 표방하고 있는데 그것도 한 이유이며, 기존의 역사서들이 보수적이거나 사대적인 부분이 많았기에 이를 반성하는 차원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진보와 자주는 오히려 역사의 진실성을 해칠 수도 있기에 신중하게 조화를 이루는 방향을 모색하려 했다.

특히 삼별초 이야기는 그동안 자주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민중은 소외된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민중과 자주를 같이 생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어쩌면 역사에서 진실을 보려 애쓴 흔적이라고 보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 책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 중에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2권을 보면 ‘무신 정중부의 일기’가 나온다. 물론 정중부가 일기를 썼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정중부의 생각을 일기형식을 빌려서 쓰면 재미도 있을 뿐더러 독자들의 이해도 훨씬 쉬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계획했는데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고려의 화폐들(윗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 건원중보, 무문전, 동국중보, 동국통보, 해동통보, 삼한통보, 해동중보, 은병, 삼한중보, 쇄은)
고려의 화폐들(윗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 건원중보, 무문전, 동국중보, 동국통보, 해동통보, 삼한통보, 해동중보, 은병, 삼한중보, 쇄은)한국역사연구회
- 앞으로 또 다른 출판계획은?
"현재 시대사 개설서들을 준비하고 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현대의 개설서들이 그것인데 올해 세밑까지면 조선시대 1권 정도는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 책의 수준은 대학생이면 이해할 수 있는 고급대중서를 지향하는데. 그것은 최근의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알리되 쉽게 풀어내는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다. '알맹이는 있되 이해는 쉽게'가 그 목표이다."

인터뷰 내내 채웅석 편집위원장은 소탈한 자세로 응했다. 학자라기보다는 그저 이웃의 지인을 대하는 것으로 느낄 만큼 편안했다. 그것은 한국역사연구회 연구자들의 심성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그런 자세에서 이런 진보적이면서 자주적인 그리고 민중을 생각하는 따뜻한 책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태정태세문단세를 부지런히 외워야하는 시대는 갔다. 다시 말하면 정치나 경제만이 역사는 아니며, 오히려 문화와 사회가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또 역사는 죽은 것이 아니라 현재에 그대로 살아있는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올 가을 푸른 하늘 밑에서 우리는 이 책을 보며, 고려 사람들의 생활과 철학을 오늘에 되살리는 즐거움을 맛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참고>
한국역사연구회 누리집 : http://www.koreanhistory.org
청년사 누리집 : http://www.ypub.co.kr

덧붙이는 글 <참고>
한국역사연구회 누리집 : http://www.koreanhistory.org
청년사 누리집 : http://www.yp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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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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