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오너에서 물러나야
두산 박씨 일가야말로 '반 기업인'"

장하성 교수, 18일 <나눔문화포럼> 강연서 주장

등록 2005.10.19 17:55수정 2005.10.2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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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교수는 "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잣대와 기준으로 미래를 설계해서는 무조건 진다"고 강조했다.
장하성 교수는 "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잣대와 기준으로 미래를 설계해서는 무조건 진다"고 강조했다.나눔문화 제공

[기사보강 : 19일 오후 7시]

"삼성이 문제를 푸는 것은 간단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오너가 아니고 전문경영인이 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인 이재용 상무도 그렇게 (전문경영인이) 되면 간단합니다."

그는 '간단하다'라는 말을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장하성(52) 고려대 경영대학장. 최근 삼성 X파일과 에버랜드 전환사채 유죄판결 등 삼성과 관련된 굵직한 현안이 터져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입을 주시했다.

장 교수가 지난 10여년동안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운동을 이끌면서 이른바 '삼성 저격수'로서 맨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대학장이라는 위치 때문이었을까. 그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입을 열었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 종로구 나눔문화포럼(www.nanum.com)에서 진행된 '삼성, 그리고 우리경제 바로 세우기'라는 제목의 강연자리에서다.

장 교수는 이날 자신이 소액주주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무모함(?) 등을 소개한 이후, 신자유주의와 외국자본에 대한 논쟁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고민 등도 솔직하게 밝혔다. 특히 삼성 등 재벌 총수일가의 경영권과 지배구조에 대해선 "변화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이건희는 소액주주, 그런데도 오너처럼 행동한다"


삼성 문제에 대한 장 교수의 입장은 확고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잣대와 기준으로 미래를 설계해서는 '무조건 진다'는 것이다. 또 한국사회에서 삼성의 영향력을 봤을때, 삼성이 변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오너보다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이건희 회장'을 강조했다. 장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재벌총수를 오너라고 부른다. 주인이다. 주식을 얼마나 가져야 주인일까. 일반적으로 50%가 넘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기업은 삼성전자다. 오너가 누구냐 하면 이건희 회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회장의 지분은 1.77%다. 아들인 이재용 상무 등 가족들은 1.75%를 가지고 있다. 다 합쳐도 3.5%다. 소액주주다. 제가 삼성전자 주총 때보다 가지고 간 주식보다 오히려 적다. 물론 당시 가지고 간 것이 내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당시 주총장에선 내가 1대 주주였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은 같지 않다. 저는 오히려 이건희 회장은 전문경영인이라고 본다.지분이 적으면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회장은) 오너처럼 행동한다."


"삼성전자와 에버랜드 재산을 재용씨에게 주는 것은 상속이 아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나눔문화 제공
이어 장 교수는 삼성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과정에서의 편법 증여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작년말 기준으로 63개에 달하는 삼성 계열사끼리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순환출자 구조를 그림으로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장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기업간 출자가 많거나 특정 가문이 경영권을 장악하는 사례도 많지만, 이처럼 누가 어떤 기업의 주인인지 모를 정도로 복잡한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의 투명성이 보장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과거 개발독재시절 국내에 축적된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는 외국과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 이같은 순환출자가 하나의 필요 수단이었고 정부도 이를 지원했다"면서 "하지만 당시에 적절한 전략이었다고 해서 현재에도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은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와 경영권 상속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장 교수의 말이 이어진다.

"상속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세대간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정당한 권리다. 전제는 세금만 제대로 내면 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 재산을 이재용 씨에게 주는것, 에버랜드 재산을 (재용씨에게) 주는 것은 상속이 아니다. 그것은 도둑질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주는 것이다.

에버랜드 회사 입장에선 증여다. 아무런 이유 없이 제3자에게 만원짜리(주식)를 3천원, 5천원에 주느냐. 이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에버랜드는 개인회사가 아니며, 계열사가 있고, 그 회사들은 상장회사들이다."


"삼성문제 해결은 간단하다, 이 회장이 '오너' 그만 두면 된다"

그렇다면 장 교수가 생각하는 삼성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 시대의 변화를 역설했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준비했던 10년 전과 현재가 너무 달라졌으며, 앞으로 더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삼성그룹도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주력 계열사들이 높은 수익을 냈고, 미래도 밝다고 강조했다. 기업으로만 보면 투명성도 높다고 했다.

그는 대신 "세상이 변하더라도 오너 경영권에 관련된 부분은 풀리지 않았다"면서 "단순한 경영권 문제가 아니라 세금의 문제, 투명성의 문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현재 삼성의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상무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도 말했다. 장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오늘의 삼성 문제는 매우 간단하다. 삼성 주력기업들의 미래가 매우 밝기 때문에. 문제는 더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역(逆)으로 삼성이 변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는 변할 수 없다. 삼성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이 결코 삼성이라는 특정기업이나 그 기업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특정 가족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행사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간단하게 풀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되면 간단하다. 그 아들인 이재용 상무도 그렇게 가면 된다. 삼성은 그럴 힘도, 기회도 가지고 있다. 지금 삼성이 겪고 있는 상황이 오히려 그러한 전환기를 만들어주는 중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야만 우리가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반기업 부추긴다고? 아무리 그래도 두산 박씨일가만 하겠나"

장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삼성의 영향력을 봤을때, 삼성이 변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도 없다"고 단언한다.
장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삼성의 영향력을 봤을때, 삼성이 변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도 없다"고 단언한다.나눔문화 제공
장 교수는 또 재벌과 일부 언론들이 '참여연대 등이 반기업 정서를 너무 부추기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재계 총수들이 줄줄이 범법자가 되는 현실 속에 누가 기업을 망치고 있는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참여연대와 저를 반(反) 기업인이라고 매도한들, 현재 두산그룹 박 회장일가만큼 반(反) 기업인이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두산의 박씨 형제들 간의 고소와 고발, 분식회계 등이 두산이라는 기업을 망치고 있는 장본인"이라고 비판했다.

최근에 재계 총수를 만났다는 장 교수는 "그가 '전경련을 그만두고 싶다' '두산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재계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총수들이 줄줄이 범법자가 되는 현실 속에 재계 스스로 이제는 국민들 앞에 진정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경영대학장으로 취임한 장 교수는 주변으로부터 '고대의 삼성 사태를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 '참여연대 활동 계속할 건가' '삼성 돈 주면 받을 것이냐' '반(反) 삼성맨이 학장해서 모금이 되겠나' 라는 등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주변의 여러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나름의 고민 속에 학장 자리에 올랐다"면서 "평소에 생각했던 '바른경영, 가치경영'이라는 교육 철학을 실천해보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최근 한국경제의 발전 방향을 두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북유럽식 모델 등의 논란에 대해 "신자유주의나 세계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 속에 우리 내부에서 신민족주의, 신국가주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장 교수는 이어 "자본주의 시장경제 모델도 허점 투성이에 모순 덩어리이며,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라고 전제하고 "자본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본의 힘으로 자본주의를 바꿔낼 수 있는 몽상가들과 실천가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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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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