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
아흔을 넘기신 할머니의 머리가 은발이셨다. 은발의 할머니에게 홍시 서너 개를 사들고 가면 늘 파란 지폐 한 장을 내 호주머니에 넣어 주셨다. 홍시 값을 배로 돌려 주신 것이다. 아무리 뿌리쳐도 "손주며느리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래…" 하시며 늘 나를 격려해 주셨던 할머니.
그때 홍시를 사 들고 할머니 댁에 들어서면 할머니는 늘 마루 한가운데 앉아서 참빗으로 센머리를 곱게 단장하셨다. 할머니는 머리카락도 별로 없으신데 왜 하루에도 몇 번씩 은발의 머리를 곱게 단장하셨을까? 할머니는 센머리를 곱게 단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빚어 넘겼으리라. 그러나 그때 나는 몰랐다. 할머니가 센머리를 넘기며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하셨던 까닭을.
그런데 벌써 내 머리에는 할머니의 센머리가 하나 둘 내려 앉았다. 처음 할머니의 센머리 하나가 눈에 띄었을 땐 그 머리카락을 뽑아 내려 안간 힘을 썼다. 그러나 차츰 앞머리에 무더기로 센머리가 이사를 오고 있으니 이제는 손 쓸 재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