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울지 마라, 2~3일 출장갔다고 생각해라"

현대 하이스코 농성 노동자들이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

등록 2005.11.02 12:14수정 2005.11.0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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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대 하이스코 농성 노동자들이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

현대 하이스코 농성 노동자들이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 ⓒ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10월) 26일이면 당신과 만난지 5년이 되는데 멋진 기념일을 보내고 싶었는데 같이 못보낼 수도 있겠네."

"말 못하고 와서 미안하다. 정말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으니까…."

"절대로 울지 마라. 그저 2∼3일 출장 갔다고 생각해라. 나, 야근도 많이 했잖아."

"심장은 두근거리며 도무지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여러가지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여보! 시집와서 고생만 시키고 미안하이. 힘들어도 조금만 견디고 앞으로의 우리 삶을 멋지게 살아보세."


지난 10월 24일 새벽, 현대하이스코 순천 공장 20m 높이의 크레인을 점거농성하기에 앞서 농성자들이 남긴 편지이자 '투쟁결의문'의 내용이다.

이들은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던 자신들의 처지와 현실을 지금 농성 현장에서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농성자는 자신의 부인에게 "절대로 울지마라"며 "그저 2∼3일 출장 갔다고 생각해라"고 당부했지만, 그의 '출장'은 벌써 10일째를 맞고있다.


"(10월) 26일이면 우리가 만난지 5년째"라는 노동자도 있었다. 결혼 기념일을 함께 하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을 아내에게 보내면서도 "이렇게까지 할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다시 돌아올때 까지 마음 굳게먹으라"고 가족들에게 당부하고 있지만 이들이 큰 불상사 없이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 하이스코 측은 모든 대화를 거부하고 있고, 경찰은 자신해산하지 않는다면 강제진압에 나서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강제진압이 언제 실행될지 모르는 가족들은 공장 앞 바리케이트 앞에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공장 안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다음은 전국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노조가 공개한 농성자들의 편지글 전문이다.

a 현대 하이스코 농성 노동자들이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

현대 하이스코 농성 노동자들이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 ⓒ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사랑하는 아내에게

당신과 결혼한 지 4년이 지나 5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동안 당신에게 남편으로서 미안한 마음뿐이오…. 당신과 많은 대화도 없이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라고 어머님이나 장인·장모님께는 잘 말씀드리고 며칠 보이지 않더라도 집안일 잘 챙기고 마음 굳게 먹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26일이면 당신과 만난 지 5년이 되는데 멋진 기념일을 보내고 싶었는데 같이 못 보낼 수도 있겠네…. 사랑해. 영원히!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어느덧 따사한 여름이 지나가고 늦가을로 접어든 시기에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서 너무 미안하고, 말로만 잘해준다는 핑계로 아빠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그래도 꿋꿋이 잘 이해해준 00이 엄마,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에 너무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날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며, 이 아들, 아니 한 가장의 아빠로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어서 한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언제나 우리 가족 건강하게 잘 내고 항상 좋은 일만 있게 제가 '기도' 하겠습니다. 부모님, 00야! 00아 사랑해요….

00엄마 보세요

말 못하고 와서 정말 미안하다. 정말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으니까. 이 글을 보면 너무나도 많이 울겠지~. 울지 마라~.

00 엄마에게 하고픈 말은 하나 뿐이다. '절대로 울지 마라~'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정말 나만을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00씨, 당신과 나의 분신 00이를 위한 일이야. 그저 2~3일 출장갔다고 생각해라. 나, 야근도 많이 했잖아. 모든 게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니 확신한다. 그러니 걱정 말고 조금만 기다려줘. 00이도 잘 보살피고 아빠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회사 갔다고 그래. 00엄마……. 정말 사랑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다리가 떨려온다.

심장은 두근거리며 도무지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타고 온 자전거는 어떻게 할까? 내일 닭모이를 사다주기로 했는데 끝내 어머니가 사러 가셔야겠구나…. 안경은 벗고 렌즈를 끼고 올걸 하는….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나를 가로막는다.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 있다지만 막상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오니 '잘해낼 수 있을까'로 시작하여 '며칠이나 견딜 수 있을까'로 잡념은 커져간다. 평소 그렇게 외쳐대던 나로부터 결의·결사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나약한 나를 비추어 여러 동지의 결의를 부러워한다. 든든함을 느낀다. 동지가 가면 나도 간다. 이제부터는 진짜 나로부터의 결의·결사다. 아자, 이빨 꽉 물고 가자! 승리를 위해~

나는 오늘 인생에 있어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과 아내 그리고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록 힘들고 고난의 길이지만 지금 내가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사랑스런 두 아들에게 부끄러울 것 같다. 자랑스럽고 늠름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우리 가족들이 언제나 평안하도록 한 집의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여보, 시집와서 고생만 시키고 미안하이~ 힘들어도 조금만 견디고 앞으로의 우리 삶을 멋지게 살아보세~" 오늘 난 우리가족과 나를 위해 어떤 역량이 있어도 힘차게 싸워 나갈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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