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간 아들딸 기다리는 어머니 더이상 없기를..."

생명선교연대 20주년 행사장의 증언... 한 어머니가 되돌아본 민주화

등록 2005.11.04 11:53수정 2005.11.0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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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상임대표 최의팔 목사)는 지난달 31일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2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날 민중교회운동에 대한 회고 시간에 안월순(74) 여사는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아들딸(2남2녀)과 남편 등 온 가족으로 인해 겪었던 안타까움과 고초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안 여사의 둘째아들 김해성 목사가 어머니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편집자주>
a 지난달 31일 서울 경동교회에서 생명선교연대 2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고 안월순 여사는 지난 시대를 회고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경동교회에서 생명선교연대 2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고 안월순 여사는 지난 시대를 회고했다. ⓒ 김해성

a 안월순 여사.

안월순 여사. ⓒ 김해성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1980년 5월 나는 서대문경찰서 유치장 앞에 섰다. 차마 큰아들(김거성 목사·반부패국민연대 사무총장)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 볼 수가 없다. 얼마나 폭행과 고문을 당했는지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큰아들은 고문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복학생들을 다 잡아다 놓고 서로 이간질을 시키는데 견딜 수가 없어요."
"목사가 되려는 내가 뒤집어쓰고 재판받고 나갈께요."

경찰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대해 분노를 느끼면서도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1979년 10월 박정희가 살해당하자 큰아들이 석방되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수감된 지 22개월만의 일이었다.

아들을 품에 안은 기쁨도 잠깐, 또 다시 체포된 뒤 그렇게 또 창살을 사이에 두고 아들을 만났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이내 작은 아들(김해성 목사, 중국동포의집ㆍ외국인노동자의집 대표)도 체포됐다. 눈앞이 캄캄하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방안에 넘어진 양초처럼 온몸이 바닥으로 녹아 스며들었다. 이 일을 어찌 할거나?


이후 결혼한 큰아들은 첫 딸의 이름을 '민주'라고 지었다. 얼마나 민주주의가 사무쳤으면 그리했을까?

모난 돌

a 김해성 목사가 구속되자 성남지역 민중교회에 속한 교인들이 항의집회를 열었다.

김해성 목사가 구속되자 성남지역 민중교회에 속한 교인들이 항의집회를 열었다. ⓒ 김해성

1986년 11월 무렵 작은 아들이 민정당사 앞 시위로 다른 목사님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거기다가 종로경찰서에서 당한 폭행으로 인해 뇌진탕으로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다. 가서보니 고막은 파열됐고 얼마나 짓밟혔는지 온몸이 온통 피멍이었다. 입원하고 치료받는 몇 달 동안 이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간호원 대신 경찰관 2명이 병실을 온종일 지키고 서 있었다.


작은아들이 퇴원한 지 얼마 안돼 대통령선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성남에서 유세중인 노태우 후보를 길거리에서 만났다.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아들은 노태우를 향해 구호를 외쳤단다.

"광주학살 책임지고 노태우는 물러가라!"

88특수경호대가 순식간에 해성이를 덮쳤고, 작은아들은 내쳐진 개구리처럼 아스팔트 위에 이내 늘어져버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닭장차에 끌려간 아들은 경찰의 주민등록증 제시 요구를 거부했다가 집단 폭행을 당하면서 턱뼈가 깨져 버렸다.

성남지역에서 취업을 봉쇄하는 블랙리스트가 돌아 다녔다. 그 안에는 '주민교회'와 '산자교회' 교인 명단이 가득 차 있었다. 이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선교자유 수호기도회'가 열렸으며 이 과정에서 교인 몇 명이 연행됐다.

두 교회는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성남경찰서 정문 앞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경찰이 기도하는 도중에 난입하면서 심한 마찰이 벌어졌고 경찰 폭력에 의해 교인 13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작은아들은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고 나는 팔꿈치뼈가 부서졌다.

조그만 병실 침대 두 개에 엄마와 아들이 마주보고 입원했던 것이다. 작은아들이 웃는 얼굴로 눈을 찡긋하며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십여 차례 폭행을 당하고도 여유를 부리는 작은아들을 보면서 툭하고 한마디 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더니 정말 미워 죽겠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작은아들은 어느 날부터 외국인노동자들을 돕는 일에 나섰다. 그러더니 끝내는 외국인노동자를 연행하는 법무부 직원들과 충돌하면서 구속됐고, 성남검찰청 정문 앞에서는 매일이다시피 석방촉구기도회가 열렸다.

나는 그 시간이 매우 두렵고 떨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계란에 바위치기처럼 느껴지는 독재정권과의 싸움에 나선 아들 딸들은 구속, 폭행, 부상을 당했으며, 이를 지켜보는 어미의 심정은 새까맣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새까맣게 둘러싼 경찰에 포위된 채 드리는 일촉즉발의 기도회. 휠체어에 앉은 병중의 권사님, 백일도 안 된 아이를 비롯해 민중교회 교우들이 함께했다. 무엇보다 내 아들 때문에 누가 또 잡혀 가거나 다칠까봐 걱정이 되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다시금 한숨이 나온다.

사선 넘나들다 깨어난 남편의 한마디 "대통령 누가 됐지?"

a 김해성 목사를 비롯한 구속자들의 속방을 촉구하는 교인들.

김해성 목사를 비롯한 구속자들의 속방을 촉구하는 교인들. ⓒ 김해성

1998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방광암을 앓던 남편(김문재 장로)이 수술하기 위해 입원했다. 공교롭게 수술날짜가 대통령 투표 날로 잡히자 남편은 수술을 미루어 달라고 사정했다. 병원측이 곤란하다고 거절하자 남편은 '그러면 투표를 하고 와서 수술 받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중국에 있는 딸(김영지)에게 전화하게 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한국에 나오라고 전갈한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한국에 온 딸에게 하는 말이 당신 대신 투표해야 한다고, 한 표가 급하다며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선거 개표가 한참 진행되던 중에 시작된 수술은 16시간이 지나서야 끝났고 남편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가 뒤늦게 깨어났다. 간신히 정신 차린 남편이 긴장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꺼낸 첫 마디가 가관이었다.

"대통령 누가 됐지?"

남편은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오매불망 그리던 민주화의 소망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가 구속 면한 막내딸

한신대학에 다니던 막내딸(김영미)에게 잔돈을 주며 가끔 전화를 하도록 했다. 전화가 오지 않으면 시위를 하다가 잡혀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건국대 사건이 터지던 날 막내딸은 여지없이 그 현장에 있었다. 때마침 그날이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이어서 막내딸이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 그리고 다시 건국대로 발길을 돌렸으나 경찰이 이미 봉쇄한 상태여서 들어 갈 수 없어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얼마 후 진압되면서 건국대에 있던 학생 대부분이 구속됐고 모진 폭행과 고문이 있었다.

어느 늦은 밤, 막내딸이 눈이 퉁퉁 부어 집으로 돌아 왔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석방된 뒤 연못에 뛰어 들어 자살했다는 것이다. 연신 눈물을 쏟아내는 막내딸을 보면서 '언제 이런 비극이 끝날 것인가?'라는 생각에 덩달아 가슴이 미어졌다.

그 어둡고 잔인했던 시대가 지나고 민주화의 물결이 서서히 밀려들면서 독재정권은 물러났고 세상이 조금씩 나아졌다. 무엇보다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아들딸을 둔 어미로서 잘못된 세상이 이 아이들을 빼앗아 갈까봐 항상 불안했다. 그런데 먹구름이 걷히고 있으니 그 기쁨은 다른 어머니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지난 고통은 추억이 됐다. 가끔 집안 모임이 있으면 이런 저런 밀린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진다. 그런데 집안이 아닌 길거리 집회장에서 집안모임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한다.

"엄마! 집회 현장에서 외삼촌(안남영)도 만나고, 오빠들도 만나요."
"거기에서 이해학 목사님이 말씀을 하셨어요."

어느새 우리 가족이 된 이 목사님 이야기까지 곁들여진다. 분명히 단언하건대, 길거리 가족모임은 이제 더 이상 없어져야 한다. 끌려간 아들딸들을 기다리느라 애타하는 어머니도 이제는 영원히 사라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생명선교연대는?
'한국민중선교협의회'로 출발 20년 동안 민중 신앙공동체 지향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는 민중이 주체가 되는 신앙공동체를 지향하는 기독교단체로 1985년 4월 '한국민중선교협의회'로 출발했다가 지난 1997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꿨다.

이 단체는 민중교회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생명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성남 주민교회, 서울 동월교회, 신명교회, 인천 새봄교회, 서울 이웃사랑교회, 청주 빛고을교회 등 전국 40여개 교회가 소속돼 있다.

결성 초기에는 노동자, 농민, 빈민운동으로 시작했으며 그동안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반전평화운동을 비롯해 지역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외국인 이주 노동자 사역, 가출청소년 사역, 장애인 사역, 통일을 위한 사역 등으로 운동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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