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씨 자살과 언론의 '엉뚱한' 상술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사생활 보도 지양하고 본질에 천착하라

등록 2005.12.01 11:18수정 2005.12.0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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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터넷 카페에 올라왔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셋째 딸 윤형씨의 사진.

인터넷 카페에 올라왔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셋째 딸 윤형씨의 사진.

열흘이 넘었다. 그래도 고인에 대한 기사는 끊이지 않는다. 국내 언론, 외국 언론 가릴 것 없다. 너나없이 고 이윤형씨 자살을 어떤 식으로든 기사화하고 있다.

기사도 상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의 총수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이처럼 손님 끌기에 좋은 소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상술에도 도의가 있는 법이다. 상도라는 것이다. 언론시장의 상도 가운데 맨 앞자리에 놓이는 것이 공과 사의 구별이다. 사생활에 대한 보도는 엄격히 제한해야 하며, 설령 그가 공인이라 해도 사생활을 보도하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상도다.

그래서 묻는다. 고 이윤형씨는 공인인가? 고인의 자살이 비록 사생활에 해당하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파헤칠 수밖에 없는 사안인가? 이 질문에 응답하려면 우선 이점부터 챙겨봐야 한다.

고 이윤형씨가 공적 영역에서 국민과 만나는 지점은 제한된다.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 받은 이건희 회장의 네 자녀 중 한 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방법 등으로 삼성 계열사 지분을 보유했던 사실이 그가 국민과 만나는 지점이다. 특히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개정 문제로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가 사회 이슈가 돼 있는 상태에서 이 지점은 시야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지점임에 틀림없다.

이 두 지점이 추려지면 방향은 선다. 언론이 '추적'해야 하는 건 자살 이유가 아니라 '자살 이후'다. 고인이 갖고 있던 2000억 원대의 삼성계열사 지분이 어떻게 상속되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 이슈가 된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게 정도요 상도다.

하지만 언론은 애초부터 핸들을 자살 이유로 틀었다. 교통사고사가 어떻게 자살이 됐는지 그 미스터리를 제기하며 말초신경을 곤두세웠다.


물론 삼성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자살을 교통사고사로 바꿔 발표함으로써 언론의 '후각'을 자극한 과실은 분명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쳐야 했다. 그의 자살에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것도, 사회적 영향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면 나머지는 이건희 회장 일가에 맡기면 될 일이었다.

남자 친구와의 결혼문제가 자살의 주원인이었다는 게 정설이 돼 버린 지금에 와서도 언론은 또 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사랑 잃은 백만장자 상속녀의 외로운 자살"이 담고 있는 소설 같은 사연을 부각하거나 '재다신약(財多身弱, 재물이 많으면 몸이 약하다)'의 굴레를 안타까워하는 보도(조선일보) 등이 그것이다.


이런 보도가 국민 정서를 어떻게 끌고 갈지는 미지수이지만 대충은 가늠해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한껏 너그러워지는 우리네 정서가 또 다시 발동되는 것 같은 현상이지만 뭐라 탓할 수는 없다. 추도의 자유는 국민 개개인에게 있으니까.

하지만 언론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삼성 총수가 처한 곤경과 삼성 총수 딸이 택한 자살을 연결 짓는 식의 그림 그리기는 경계할 일이다. 오히려 고인의 자살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었다는 얘기가 왜 삼성 쪽에서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왔는지를 따지는 게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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