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성공... 성공하고 싶어요"

미리 들어 본 이주노동자들의 새해 소망

등록 2005.12.15 08:56수정 2005.12.1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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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면서 더운 지방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옷을 잔뜩 껴입어 움직임이 다소 둔해졌습니다. 덩달아 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목을 어깨 아래로 움츠리고는 밖으로 나다니는 게 내키지 않는지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쉼터 식구들이 열심히 TV를 보고 있기에, 옆에 가서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TV에선 청각장애인에 대한 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었는데, 마침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그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좀 이른 감이 있었지만 쉼터 식구들의 2006년도 소망을 물어보았습니다.

우리 쉼터엔 직장에서 일을 하다 임금을 못 받았든가, 최저임금이나 근로계약서상의 약속대로 급여지급을 받지 못했든가, 구타 등의 문제로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하고 구직 활동 중인 사람들이 주중에 20~30여명 늘 생활합니다.

그렇기에 다들 'Korean Dream!'이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왔지만, 한국에 오자마자 닥친 문제들은 부푼 꿈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을 한 번쯤 겪은 우리 쉼터 식구들은 자신들의 꿈을 얘기해 보라는데 대해 다들 막연하게 답을 하더군요.

그런 쉼터 식구들의 꿈은 한결같이 '성공'이라는 단어로 귀결되었습니다. 다들 성공하고 싶다는데 그게 과연 성공일까 하는 의문이 갈 정도로 소박한 소망들이었습니다.

회사 사장님이 잔업을 해도 계산을 해 주지 않고, 최저임금도 지키지 않아 회사를 나와 사업장 변경 신청 중인 시스완또는 "내년은 올해보다 좀 더 나아졌으면 합니다. 그래야 인도네시아로 돌아갔을 때, 출발할 때의 계획대로 성공해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지 않고 조그만 사업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충분히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체격이 작고 약골인데 첫날부터 50kg 정도 되는 물건을 하루 종일 어깨 짐을 지고 나르는 일을 했다가 이튿날부터 쌍코피가 터졌었다는 에꼬는 "내년은 05년보다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게 가장 우선이고요. 인도네시아 국가경제와 안전이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 같은 사람이 성공해서 다시는 이주노동을 하지 않지요"하고 답합니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여 이미 11살짜리 딸을 두고 있는 시띠(28)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모아야겠죠. 성공하고 싶어요"하고 바랍니다.


사장에게 숟가락으로 머리에 혹이 나도록 맞아서 쉼터를 찾아 왔던 사이폴은 "지금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실하고, 잘 참고 항상 긍정적이고, 심신이 건강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 받지 않을 만큼 성공했으면 좋겠고, 모든 사람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에 돌아가서 좋은 사장님이 되고 싶어요. 그런 다음에 예쁜 아내에, 귀엽고 예쁜 아이들 다섯 정도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외 다른 사람들도 다들 성공이라는 말을 하지만, 그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은 아니더라도 구타나 임금체불 등과 같은 문제만이라도 없었으면 하는 소극적인 소망이 많았고, 할 수 있다면 미래를 위해 약간의 저축을 하고 싶다는 말들을 했습니다. 쉼터 식구들이 비록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말하고자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쉼터 식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갖고 있는 소망들이 결코 거창하거나 허망하지 않은 아주 현실적이고 소박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현실적이고 소박한 소망은 우리 사회에서 여러 모양으로 다가오는 문제들로 인해 쉽게 무너지고 마는 것을 이주노동자쉼터를 운영하며 숱하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듯 '많이 나아졌다'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현장에서 문제를 안고 오는 사람들과 늘 부대끼다 보면 전혀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루 빨리 이주노동자의 마땅한 권리가 당연하게 지켜지고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년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세상,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이주노동자도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 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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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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