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사태 오도록 뭐했나" 자괴에서
"언론이 어떻게 검증하나" 항변까지

'황우석 신화' 뒤쫓던 과학기자들, 무슨 생각 할까

등록 2005.12.27 12:04수정 2005.12.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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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 조작 사태를 계기로 전문기자의 보도태도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노정혜 서울대 연구처장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대 본부 소회의실에서 황우석 교수 사태와 관련해 연구결과 검증을 위한 조사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계획을 밝히고 있다.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 조작 사태를 계기로 전문기자의 보도태도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노정혜 서울대 연구처장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대 본부 소회의실에서 황우석 교수 사태와 관련해 연구결과 검증을 위한 조사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계획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힘들고 슬프다." (모 언론사 의학전문기자)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나온 것을 언론이 어떻게 검증하나." (모 방송사 과학담당기자)
"아직은 진실을 모르는 상황이지 않느냐, 서울대 조사가 끝난 뒤 나름대로 평가할 것이다." (모 신문사 의학전문기자)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논문이 조작으로 드러난 뒤 그동안 이를 보도해왔던 기자들의 각기 다른 반응이다. 특히 '과학·의학 전문기자' 타이틀을 달고 있는 기자들의 심경은 어지럽다.

"도대체 전문기자들은 무엇을 했느냐"는 독자, 시청자들의 매서운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언론은 이번 사태를 낳은 핵심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황 교수를 '세계 최고'로 추앙하는데 앞장섰던 언론들은 저마다의 '반성문'을 내놓고 있다.

과학전문기자 "이런 사태 오도록 뭐했나"- "아직 진실 모른다"

한 언론사의 의학전문기자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황 교수의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것처럼 나 또한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힘들고 슬프다"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스스로 물었다. "이런 사태가 오도록 넌 뭐했느냐"고.

그는 이 글에서 황 교수 연구논문의 조작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는 심정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아울러 올해 초만 해도 황 교수의 업적을 앞다퉈 보도하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과학·의학 전문기자들도 당혹한 심경을 표현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마이뉴스>는 26일 이들에게 "전문기자들은 왜 황우석 의혹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는가"라고 물었다. 취재에 응한 이들은 익명을 전제로 여러 고민을 털어놨다. 일부 기자는 자신이 속한 신문사 보도에 대해 솔직하게 반성하기도 했다.


모 신문사의 A 과학전문기자는 '황우석 파문' 관련 자사 보도에 대해 "애초 난자매매 의혹이 나왔을 때는 황 교수를 강하게 비판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대응을 잘 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난자문제까지는 이성적으로 차분히 보도했다, 그런데 그 이후 감성적인 여론이 일면서 대응을 잘 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기자는 "그때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브릭' 등의 의혹제기도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며 "지금은 구성원들이 별로 불만은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신문사의 B 과학담당 기자도 "개인적으로 회사에 (황 교수 연구논문이)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어느 신문사든 마찬가지지만 처음에는 '설마 황 교수가 왜곡했겠느냐'는 생각이 많이 든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우리 회사도 어떤 형태로든 황 교수 사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신문사의 C 과학전문기자는 "이번 사태에서 기자들이 본질에 대한 접근보다는 비본질적 문제에 휩쓸려 여론을 호도한 측면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논문조작' 사실은 밝혀졌지만 '줄기세포 존재여부' 등 아직 진실이 다 드러나지 않았다며 입장을 유보하는 기자도 있다.

한 유력 일간지 D 의학전문기자는 "(회사가) 나름대로 보도과정에서의 문제를 검증하고 있다"며 "아직은 진실을 모르는 상황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조사위원회 조사활동이 끝난 뒤 검토한 것을 보고 나름대로 평가를 내릴 것"이라며 "지금은 보도의 잘잘못을 얘기할 적절한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앞서 인터뷰한 B 과학담당 기자도 "아직은 줄기세포 존재에 관해 여러 소문이 떠돌고 있어 구체적으로 진위 여부를 언급하기 부담스럽다"라며 "서울대 조사결과가 최종적으로 나와봐야 안다"고 말했다.

전문성 한계 인정... 일부 "기자로서 원칙 충분히 지켰나"

a 12월 7일자 <조선일보> A2면 보도. 이 신문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에 정부는 올해에만 30억원을 지원했다"며 "예산만 소폭 지원"했다고 비판했다.

12월 7일자 <조선일보> A2면 보도. 이 신문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에 정부는 올해에만 30억원을 지원했다"며 "예산만 소폭 지원"했다고 비판했다. ⓒ 조선 PDF

a <font color=a77a2>[이랬던 보도가...] MBC가 협박을 통해 증언을 얻어냈다는 내용으로 피츠버그대 연구원들의 인터뷰를 다룬 4일 YTN 보도. (왼쪽). <font color=a77a2>[일주일 뒤에는] 연구원들이 인터뷰 자료조작 사실을 감췄다는 주장을 보도한 10일 YTN 방송.

[이랬던 보도가...] MBC가 협박을 통해 증언을 얻어냈다는 내용으로 피츠버그대 연구원들의 인터뷰를 다룬 4일 YTN 보도. (왼쪽). [일주일 뒤에는] 연구원들이 인터뷰 자료조작 사실을 감췄다는 주장을 보도한 10일 YTN 방송.

이들 전문기자들은 황우석 파문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춤을 춘데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덧붙여 해명했다. 경쟁적으로 '황비어천가'를 쏟아낸 보도행태를 반성하면서도 국내 과학계의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 그 중 하나가 바로 '전문성'이다.

한 방송사의 E 과학담당 기자는 "기자로서 과학기술부 출입을 해보면 (생소한) 부분이 수없이 많다"며 "보도자료가 나오긴 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다 모른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또 언론을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세계적인) 저널에 (논문이) 실리게 되면 무조건 믿는다"며 "이번 사태는 그런 맹점이 있었는데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나온 것을 언론이 어떻게 검증하겠느냐"고 해명했다.

또다른 신문사 F 과학담당 기자도 "(황 교수 연구논문 재검증은) 말 그대로 언론이 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전문성의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황 교수를 무조건 옹호하는 여론에 언론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도 있다고 시인했다. F기자는 "지금은 논문이 조작으로 드러났지만, (초기에) 문제점들이 나왔음에도 (언론이)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신문사의 G 과학담당 기자는 이번 일이 비단 전문성이나 전문기자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G기자는 "이번 사건은 (과학을 잘 아는) 전문기자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며 "기자로서의 원칙에 충실한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반성했다. 해당 분야를 잘 몰라도 진실에 얼마나 근접하려 노력했느냐가 중요했다는 얘기다.

기자들 "과학계 폐쇄성·침묵의 카르텔이 큰 문제"

a <한국일보>는 타 종이매체와는 달리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성과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이후 <한국>은 황우석 교수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가지 원인을 진단하는 기사를 기획물로 싣고 있다. 사진은 <한국> 12월 27일자.

<한국일보>는 타 종이매체와는 달리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성과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이후 <한국>은 황우석 교수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가지 원인을 진단하는 기사를 기획물로 싣고 있다. 사진은 <한국> 12월 27일자. ⓒ 한국일보 PDF

전문기자들은 대부분 '황우석 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원인의 하나로 현실 조건을 꼽았지만 외부에서 또 다른 이유를 찾기도 했다. 과학계가 가진 '정보접근의 폐쇄성'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B기자는 "황 교수를 둘러싼 의혹은 너무 큰 문제였고 전문기자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도 (의혹을) 얘기하기 어려웠다"며 "특히 연구원 등 취재원에게 접근하기 매우 힘들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접근 자체가 어려웠던 황 교수 연구팀에게서 의혹을 취재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전문기자들은 과학계가 폐쇄성과 '침묵의 카르텔'을 깨지 않을 경우 제2, 제3의 황우석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E기자는 과학보도의 경우 갖가지 정보를 종합해야 판단이 가능한데 민간 차원에서 국내 전문가들을 모두 취합해 리스트를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따라서 그는 정부가 제대로 된 언론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E기자는 "전문가 집단 리스트 작성은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온 국민과 나라의 소모적 낭비가 너무 컸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다른 전문기자들은 '전문가 리스트'가 있다고 해도 이번 사태와 같은 경우 별다른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했다. 과학계 내부의 '침묵의 카르텔' 때문이다.

G기자는 "(황우석 사태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자문을 구할 경우) 전문가들이 잘 안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들은) 취재대상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비판적이거나 불리한 코멘트를 안해주려 한다"는 경험담을 전했다.

F기자 역시 '카르텔'이라는 표현으로 한국 과학계를 비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과학기사를 쓰면 반드시 크로스체크를 하는데 한국 과학계는 '카르텔' 비슷한 게 있어서 말을 잘 안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만약 (전문가들이) 말을 잘 안 하면 '뛰어난 성과가 아니구나, 발표하는 쪽에서 부풀려서 발표했구나'라고 짐작한다"면서 "그럴 경우 짐작에 걸맞은 수준으로만 기사를 취급한다"고 말했다.

한 예로 이달 중순 황우석 파문이 확대됐을 때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논문 검증'을 제의한 생명공학 전공 교수들이나 서울대 의대 교수들의 성명에서도 '카르텔'의 심각함이 확인된다는 것. 이들은 용감하게 건의서를 냈지만 실명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름이 알려질 경우 되돌아 올 화살을 감당해 내기가 그만큼 두려웠기 때문이다.

동아·경향·SBS... 줄줄이 자성
사설 등 통해 '황우석 파문' 입장 밝혀

▲ 황우석 교수팀 보도와 관련 자사 보도태도를 반성한다는 내용을 담은 <경향> 12월 24일자 사설.

23일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중간발표로 황우석 교수팀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조작으로 드러나면서 언론의 자성이 잇따르고 있다. 각 사별로 반성의 수위와 톤은 다르지만 그동안 진실규명에 소홀했다는 점만큼은 솔직하게 시인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24일자 사설 ‘황우석 신화의 붕괴, 국가적 자성 계기로’에서 “다시는 거짓 신화에 휘둘리지 않는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 모두가 어떤 실수와 실패를 했는지,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하고 국가적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본보 역시 황우석 파동을 자성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했다.

비록 자사 보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짧게 걸친 정도에 불과했지만, 반성에 인색한 언론계 관행을 고려할 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을 듯하다.

황우석 교수 지지에 편승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SBS도 23일 메인뉴스를 통해 짤막한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SBS는 “지난 5월 황우석 교수의 <사이언스> 잡지 논문을 사실로 믿고 전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시청자 여러분의 판단에 큰 혼선을 빚게 해 드렸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비교적 솔직하게 고백한 언론 가운데 한 곳이다. <경향>은 지난 24일자 사설에서 “경향신문은 과연 이성과 진실의 편에 제대로 서고자 성찰했던가, 우람한 허위의 성채를 향해 진실의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해왔는가”라고 자문한 뒤 “이 질문에 우리는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여론이라는 광풍 앞에서 믿기 힘들지만 그래도 진정 물으려 하는 용기보다는 객관과 균형이라는 미명에 의탁하려 했음을 감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뼈아픈 자성을 통해 오로지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언론의 본연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서 진실규명에 적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한국일보>는 취재기자의 칼럼을 빌어 타 언론의 혹독한 자기반성을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이 기자는 “결과적으로 언론플레이에 이용당한 것은 전문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논쟁적 사안의 경우 다양한 사실과 견해를 두루 취재해 엄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기자로서의 기본을 망각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아온 KBS는 26일 방영한 <뉴스해설>에서 서울대와 정치권 등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정작 자사의 보도태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 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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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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