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일배, 처절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홍콩 9박10일의 기록 5] 이젠 한국농민을 지지한다

등록 2005.12.28 09:48수정 2005.12.2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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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과 함께 한 홍콩에서 9박 10일. 더 이상 가슴에 묻어둘 수 없다. 눈물과 웃음이, 투쟁과 놀이가, 세계 민중들과 어깨 걸고 진행된 홍콩의 생생한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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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의 행렬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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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에 맞춰 세 걸음을 걷고 절을 한다. ⓒ 오도엽

덩, DOWN.
덩, DOWN.
덩, WTO.

북장단에 맞춰 한걸음, 한걸음, 또 한걸음. 더덩, 구호도 멈추고, 하늘을 향하던 깃발도, 꼿꼿하던 허리도 숙인다. 두 손, 두 무릎, 머리를 땅에 대고 절을 한다. 삼보일배. 수행의 길, 고행의 길을 열을 맞추고, 발을 맞추고, 마음을 맞춰 한 배, 두 배, 십 배, 백 배, 천 배를 하며, 홍콩의 거리를 까진 무릎 질질 끌고 앞으로 앞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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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할 땐 전농 깃발도 고개를 숙인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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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를 마치고 쉬는 모습 ⓒ 오도엽

12월 15일. 한국 농민의 처절한 삼보일배의 몸짓 앞에 홍콩 경찰도, 홍콩 시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문을 닫는 상가도 없고, 두려움으로 바라보는 시민도 없다. 절을 하며 나가는 평화로운 행진은 처절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경남 창녕에서 온 농민은, "나이도 있고, 좀 하다 빠질라고 했제. 그게 안되더라. 홍콩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지지를 보내는데 어디 빠질 수가 있나"라고 하며, 두 시간 너머 걸린 삼보일배를 끝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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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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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모으며 농민들의 소원을 빌고 있는 대학생 ⓒ 오도엽

삼보일배에 참가한 충북 농민은, "삼보일배를 하다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 무릎을 굽힐 때마다 내 마음이 차분해 지는 거야. 스님들이 왜 하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고.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었어"라며, 한국에 돌아가면 "버스 타고 서울에 올라가서 한 번 (경찰)붙고 내려 올 것이 아니라, 삼보일배를 해야겠어"라며 투쟁이 새롭게 가슴에 다가왔다고 한다.

농민들에게 삼보일배는 WTO와 싸우는 것을 넘어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이미 자신을 이겨 낸 농민은 홍콩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각료회의의 결과를 떠나 농민의 가슴에서 승리를 안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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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도 지쳤다 ⓒ 오도엽

삼보일배를 바라보던 한 홍콩 시민은, "폭력을 예상했는데, 놀랐다. 너무 인상적이고, 충격적이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다. 이젠 한국 농민을 지지한다"며 한국 농민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삼보일배를 마치고 각료회의장 앞에 모이자, 길을 막는 경찰 대오의 맨 앞을 여경들로 세워 놓았다. 네 줄로 여경들만 손을 잡고 앞에 서있고, 그 뒤에 방패를 든 경찰, 그 뒤에 진압봉을 든 경찰들이 섰다. 13일과 14일 맨 몸으로 각료회의장을 향하던 한국민중투쟁단을 곤봉과 최루액으로 진압한 것에 대한 여론의 항의에 밀린 대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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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을 경찰 대오 앞에 줄을 세웠다 ⓒ 오도엽

하지만 홍콩 경찰은 한국민중투쟁단이 평화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데도 방해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15일에는 삼보일배 행진에 쓸 방송차를 가로막고,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첫날 전세버스 계약 해지 압력, 평화 시위자 억류, 집회장 도시락 반입 통제 등 평화적인 한국민중투쟁단의 집회를 방해를 했다.

이날 저녁, 각료회의장 앞에서 진행된 촛불 집회에서 한국민중투쟁단 집행부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려고 하는데, 계속 방해 작업을 한다면 단호하게 싸울 수밖에 없다. 우린 모든 방법의 평화로운 투쟁을 했다. 하지만 각 나라 대표들은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내일부터는 우리의 의지를 밝히는 투쟁을 전개하겠다"며 홍콩당국과 각료회의 대표들에게 경고를 했다.

또 전농 관계자는, "이 시간까지 평화적으로 투쟁을 했으나 내일부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WTO를 박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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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농민이 홍콩 아가씨들 앞에서 '홍콩 아가씨'를 부르며 춤을 춘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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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놀러 온 홍콩 보험회사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도엽

전라북도와 경상남도 지역 농민이 묶고 있는 태퉁의 숙소에 오니, 홍콩보험회사 직원들이 놀러와 농민들을 초대해 고기를 구워 대접을 한다. "우리들도 한국 농민을 지지한다"며 밤 늦게까지 농민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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