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몸으로 경찰 저지선을 뚫어라!

[홍콩 9박10일의 기록 7] 최루가스에 숨은 각료회의장

등록 2005.12.29 11:41수정 2005.12.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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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과 함께 한 홍콩에서 9박 10일. 더 이상 가슴에 묻어둘 수 없다. 눈물과 웃음이, 투쟁과 놀이가, 세계 민중들과 어깨 걸고 진행된 홍콩의 생생한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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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에 가스에 각료회의장은 가려졌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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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 오도엽

12월 17일 아침, 농민들 숙소엔 긴장감이 돈다.

"오늘이 각료회의의 고비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평화적 투쟁을 다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각료회의장에 들어가 우리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각료회의를 무산시켜야 한다."

전농 지도부의 강경한 의지를 듣고 농민들이 박수를 친다.

"각목을 들지 않고 몸으로 뚫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맨 몸으로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각료회의장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이고, 끝내 각료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막혔을 때는 그 자리에서 각료회의가 끝날 때까지 노숙하며 우리의 입장을 알리도록 합시다."

전농의 지침이 떨어지자 농민들은 홍콩 거리에서 밤을 샐 각오로 두툼한 옷을 챙긴다. 이미 최루액과 곤봉의 위력을 본 농민은 맨 몸으로 뚫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고, 각목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견은 홍콩 시민이 우리를 지지하는데 맨 몸으로 맞서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진다.

경찰의 각료회의장 마지막 저지선에선 총을 쏠 줄도 모른다는 말이 전해졌지만, 냉담하던 홍콩 시민들이 적극 지지하는 모습에 힘을 얻은 농민들은 전농 지도부 입장에 따르겠다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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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장에 빵과 음료수를 가져온 홍콩 대학생들. ⓒ 오도엽

이 날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한국농민 참가단 결의대회'에는 어느 날보다 더 많은 홍콩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아주머니도 있었고, 종이에 한국농민을 지지한다는 글을 써 가지고 온 시민들도 있었다. 홍콩 시민들이 '홍콩의 친구들'이란 이름의 붉은 글씨의 유인물을 제작해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이젠 지지를 넘어 함께 세계의 빈곤에 맞서 싸우겠다는 내용이다.

각료회의장으로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깃발이 앞장서고, 각 국 대표단이 서고, 상여가 나가고, 풍물패가 흥을 돋고, 부산경남지역과 전북지역 농민에 이어 각 국 참가단이 행진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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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선을 향해 달려드는 농민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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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액과 곤봉으로 막는 경찰들 ⓒ 오도엽

1.5km쯤 행진을 하다, 상여를 맨 농민들이 갑자기 경찰을 향해 돌진한다. 상여를 사이에 두고 몸싸움을 하는 순간 농민들이 1차 저지선을 뚫고 각료회의장을 향해 일제히 전진을 한다. 쉽게 1차 저지선을 뚫었지만, 경찰차로 막은 2차 저지선은 더 이상 농민들의 진격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농민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경찰을 향해 밀고 나섰지만, 경찰은 최루액과 곤봉으로 농민들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농민 여러 명이 머리가 터지고, 온 몸을 곤봉에 맞고, 최루액에 옷이 얼룩이 졌다. 성난 농민들은 가로막은 경찰차를 넘어뜨리려고 했지만 쉽게 넘어가지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차의 유리가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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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앞에 곤봉에 맞아 피흘리는 농민이 항의를 하고 있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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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봉으로 한국농민을 때리는 경찰 ⓒ 오도엽

이때까지 한국농민들이 보인 폭력은 어깨동무를 하고, 방패와 곤봉, 최루액으로 무장을 한 홍콩 경찰들에게 머리를 들이대고 앞으로 나가려고 한 것이다. 홍콩 경찰은 몇몇 경찰 깊숙이 들어간 농민을 연행하려 했으나 주변에 있던 홍콩시민들이 항의해 놓아주어야 했다.

경찰차로 가로막힌 길이 쉽게 뚫리지 않자 일부 대열은 뒤로 돌아 각료회의장을 향해 달려간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각료회의장을 바로 눈앞에 두고 경찰에 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한 농민들은 더욱 거세게 몸으로 경찰을 밀친다. 다치는 농민들이 많이 생기자 농민들도 성이 나고, 지치지 않고 돌진하는 농민들을 보며 홍콩경찰들도 흥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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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다친 사람이 많았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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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도록 지루한 대치는 계속됐다. ⓒ 오도엽

저녁 7시경 경찰 왼쪽 저지선 일부가 무너지고 경찰 뒤편 각료회의장 앞으로 일부 농민들이 달려간다. 스무 명 남짓 각목을 든 농민들이 저지선을 일순간에 뚫은 것이다. 경찰 저지선 뒤편에 전농 깃발이 휘날리자 몸으로 지루하게 돌진하던 농민들이 함성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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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목을 든 일부 농민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각료회의장 앞까지 갔다. ⓒ 오도엽

딱 5분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경찰의 최루탄이 쏟아지고, 그 많던 시위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토록 가려고 했던 각료회의장은 뿌연 최루가스에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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