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기씨.
어느덧 참고 견디며 흐른 1년 후 나는 허리가 아파 일하다 말고 주저앉아 못 일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생산품을 2단·3단 적재하기 위해서는 평균 10㎏이 넘는 앵글을 들어올려 단을 쌓아야 한다. 어떤 앵글은 양 옆에 꽉 끼어 잘 빠지지 않는 게 있었는지 그것을 강제로 들다가 그만 허리가 삐끗한 것이었다. 난 허리통증 때문에 아프고 고통스러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하청업자 차량으로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있는 현대차 사내병원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아니, 왜 사내병원을 안 가고 어디 가는겁니까?" 업체소장은 사내병원을 사용할 권한이 없다면서 밖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참, 별 희안한 원하청 관계 다 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 일로 난 일주일 정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빨리 낫게 하기 위해 억지로 일어나 매일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3일치 약을 지었는데 4일째 되는 날 다시 처방전 받아 약국에 가서 내밀며 "약 짓는데 얼마냐"고 물었다가 숨 넘어갈 뻔 했다.
1500원이면 될 약값이 9500원으로 치솟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공상처리된 처방전에 대해서는 의료혜택이 꽝이란다. 그래서 난 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지을 돈이 있어야 지어먹던가 하지. 다행히 병원 치료는 하청업체에서 대신 내주어 하루에 한 번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처음에 하청소장은 한 2주 정도 푹 쉬라 했다. 그런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일요일 밤 전화가 왔다. 하청 소장이었다. 일할 사람이 없어 그러니 월요일부터 출근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아직 아픈 기가 남았지만, 난 하청 소장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한동안 나는 아픈 몸으로 일했다. 그리고 시간 나는대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근골격계라는 직업병의 일종이었다. 같은 작업을 반복할 때 생기는 허리, 어깨, 목, 무릎, 발목 등에 나타나는 골병 현상이었다. 하청업체 입사해서 지금까지도 같은 일을 반복한다. 언제 또 어디가 골병들지 알 수가 없다.
하청업체 다니면서 이상하게 생각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해마다 정규직은 임금이 오르는데 하청은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도 궁금해 하청업자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대답이 한결같았다. "원청에서 올려주지 않아 올려줄 게 없다"는 것이다. 나 참, 뭐 이런 기업이 다 있지? 업체 사장이면 자기가 알아서 올려주면 되는거지, 원청 사측을 왜 들먹거려?
그때 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날 소장이 와서 그런다. 나보고 내일부터 다른 업체로 넘어갈 거라고. 그 때 또한 번 황당했다. 뭐야 이거? 현대차 사내하청업체는 인간장사? 자기들 맘대로 논밭 정리하듯이 하네? 난 하루 아침에 ○○기업에서 ○○(주)라는 업체로 하청업자가 변경되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하자. 어차피 내 서류 일체가 다 그대로 넘어간다니 바뀌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물어보니 원청에서 그렇게 하란다고 했다. 난 그 때부터 "아하, 현대차 사내 하청업자는 사람 찾아 투입시키고, 내가 일해서 번 돈 일부를 떼먹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1인시위를 끝낼 것 같은가?
나는 2004년 12월 7일부터 시간나는대로 내 몸 상태가 좋으면 계속 1인시위를 해왔다. 노동부, 경찰서 앞, 법원 앞, 사람 많은 중심가 등을 두루 서보기도 하고, 시내에서 현대자동차 정문까지 걷기 투쟁도 하고 자동차공장을 한 바퀴 도는 투쟁도 여러 번 해보고 맨발로 돌아보기도 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도 우산 들고 울산공장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임단투가 끝나고도 나는 계속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본관 옆에서 아침 출근투쟁을 하고 있는데 경비가 오더니 "이제부터 회사 내에서 1인시위 못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나는 그래도 계속 서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럼 강제로 못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누가 지시한 거냐고 물었지만 경비는 "그런 거 알 거 없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폭력사태가 또 일어날 것만 같아서 1인시위 한 지 10여분 만에 현수막을 접어넣고 일터로 가버렸다. 나는 업무방해도 하지 않았고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고 작업거부도 한 적이 없다. 나는 출근시간, 점심시간, 퇴근시간을 활용해서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대한 내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법으로도 가로막지 않는 1인시위를 현대차 자본이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것도 폭력의 두려움을 앞세운 무력으로, 강제로 말이다. 이 얼마나 천박한 노동탄압인가!
민주노조, 강성노조라는 현자노조가 시퍼렇게 살아있음에도 나는 자본의 폭력이 겁나서 1인 시위를 공장 안에서 못하고 있다. 나는 공장 안에서 1인시위를 해도 경비들이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겠다는 확답이 없는 한 공장 안에서 1인시위를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1인시위를 끝낼 것 같은가? 나는 밖에서 계속할 것이다. 불법파견 정규직화가 실시될 때까지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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