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권자 신성미(34·가명)씨는 1급 장애아 4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4살배기 1급 장애인 아들과 6살 딸이 있는 한부모 가정.
기초생활수급권자 신성미(34·가명)씨를 만나기 위해 강서구 등촌동 주공 임대아파트로 향하는 마음은 무거웠다.
빈곤층 700만명. 2006년 새해를 여는 한국 사회의 화두는 양극화다.
지난 3일 오후 신씨의 집을 찾았을 때 아들인 바람이(가명)는 낮잠을 자고 있었고, 딸 소망이(가명)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바람이와 함께 장애인 복지관에 다니는 이웃집 정연이(여·가명)와 정연이 엄마가 놀러 와 있었다.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신성미씨는 상당히 주저했다. 자기보다 형편이 못한 이웃들이 훨씬 더 많은데 자신이 나서는 것이 과연 맞을까라는 고민 때문이었다.
1만원 들고 도망치듯 들어간 쉼터
결혼 전까지 신씨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았다.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으로 집안이 기울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먹고 살 만 했고 신씨도 20대 중반까지 직장 생활을 했다. 신성미씨의 삶이 변화를 겪기 시작한 것은 아들 바람이를 낳고부터다.
사지가 멀쩡한 아이가 돌 무렵이 돼도 뒤집기를 하지 않자 이상해서 개인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아이 상태가 이상하다며 큰 병원에서 종합 진단을 받으라고 권했다. 큰 병원에서 MRI를 찍었지만 의사는 "아이가 정상이 아니다"는 의견을 낼 뿐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바람이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신씨는 인생의 큰 위기에 봉착했다.
일은 하지 않았던 남편의 폭력이 상습화되고 거기다 바람까지 피우기 시작한 것. 참다 못해 이혼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남편의 간통 현장을 확인하고 "이혼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신히 이혼을 한 것이 2003년 겨울이었다. 그 해 여름 신씨는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친구에게 꾼 돈 1만원을 반바지에 넣고 무작정 집을 나와 쉼터로 간 적이 있다.
"한 방 안에 세 가정 정도가 있었어요. 그런데 쉼터에서 전혀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는 거예요. 정말 밥 세끼 빼고는 해주는 게 없었던 셈이죠. 아이들한테 쵸코파이, 과자 하나 안 사줬어요. 큰 아이가 먹을 것에 집착하면서 점점 이상하게 천덕꾸러기로 변했어요.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서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다른 쉼터로 도망쳐 가듯 옮겼어요."
처음 머물렀던 쉼터에서 그는 '분노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폭력과 간통까지 한 남편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쉼터에서는 심리적인 치료를 해주기보다는 강사를 불러 매듭을 만드는 교육을 시켰다.
신씨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쉼터에서 안정을 찾았다. 심리치료와 가족치료가 진행되면서 살아야겠다는 의욕도 되찾았다.
"아이들과 굶어죽게 생겼는데 장애진단서를 어떻게..."
▲기초생활수급권자 신성미씨의 통장에는 3인 최저생계비 76만 8120원과 장애인인 바람이 보육비 14만원이 지원된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신씨네 총 수입 90만원 가운데 20만원은 장애아인 바람이 치료비로 사용된다. 신씨의 6살 난 딸 소망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내년엔 이마저도 깎인다.오마이뉴스 남소연
| | | 빈곤층 716만 명...전체 인구의 15% | | | | 우리나라의 빈곤층 규모는 70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전체 인구의 15%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4년을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최저생계비의 120% 미만 소득을 올리는 차상위계층이 716만 명에 이른다.
GDP대비 사회복지예산 비율은 2002년 1.5%에서 2005년 1.8%로 증가했으며, 2006년 사회복지 예산은 49조 1281억원이다.
그러나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 기준)는 2001년 0.319, 2002년 0.312, 2003년 0.306으로 등으로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2004년 0.310으로 다시 악화되고 있다.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로의 소득으로 나눈 소득5분위 배율(도시근로자가구 기준)도 2001년 5.36, 2002년 5.18, 2003년 5.22, 2004년 5.41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양극화 추세가 지속되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약 1.17%포인트 하락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박수원 | | | | |
남편과 이혼한 뒤 2004년 1월 신씨는 친구의 도움으로 하월곡동 산동네에 집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말도 못하고 거동도 할 수 없는, 그래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장애아 바람이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 형편도 못 됐다. 동사무소를 찾아 기초생활수급권자 신청을 했다.
"수중에 1000원도 없어서 이웃들한테 돈을 꿔서 살았어요. 그런데 수급권자 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두 달을 기다려서 겨우 수급권자가 됐어요. '급하다'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너무 관료적으로 이런저런 서류를 요구하는 거예요.
동사무소에서는 만 2살이 넘은 바람이 상태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진단서가 담긴 서류를 원했어요. 진단을 받으려면 검사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잖아요. 수녀님들한테 도움을 받아 겨우 후원금 100만원을 마련해 1급 장애 진단서를 받을 수 있었어요."
물론 동사무소 직원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신씨는 "아이들하고 굶어죽게 생겼는데 서류만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절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신씨는 3인 최저생계비 70만원을 받아 살았다. 10kg에 가까운 아들을 데리고 장애인 복지관을 찾아 다녔다. 거동도 하지 못하는 바람이를 업고 산동네를 오르내리는 통에 무릎에 항상 파스를 붙이고 다녀야 했다.
하월곡동이 철거되면서 갈 곳이 없었던 그는 후원금과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생긴 돈을 합쳐 강서구 등촌동 임대 아파트의 보증금 200여 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실 전 운이 좋은 편이예요. 이렇게 임대 아파트에라도 살고 있으니까. 만약에 천주교에서 운영했던 그 쉼터로 가지 못했다면 저와 아이들이 어떻게 됐을까요? 아이 둘은 시설에 버리고, 그냥 그렇게 살았을 겁니다.
전 사실 양극화 해결이 거창한 뭔가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끝없이 추락하는 사람들에게 완충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봐요. 주눅들고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관료화되지 않은 장치들을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왜 생색내듯 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