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트렌디 드라마의 한계는 지나친 소재주의다. 볼거리에만 발목이 잡혀 비현실적인 설정과 안이한 플롯이 넘쳐난다.SBS
<파리의 연인>이나 <프라하의 연인>처럼 얼핏 보기에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소재를 로맨스의 공식으로 풀어내는데 독보적이던 SBS에게 있어서 인생역전, 신분상승의 환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의 설정은 그야말로 SBS 트렌디 드라마의 스타일에 딱 맞는 소재였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소재주의 그 자체에 있다. 단순한 게임의 법칙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리얼리티 쇼와 달리, 드라마는 좀더 다원화된 갈등구조와 에피소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SBS 트렌디 드라마의 한계는, 보통 초반에 독특하고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선을 끌지만 중반을 넘어서기도 전에 벌써 가진 밑천을 다 드러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역시 SBS 트렌디 드라마의 전통적인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작의 설정을 따라, 리얼리티 쇼의 가짜 백만장자 역할을 연기하게 된 영훈(고수)과 어린 시절 첫사랑 은영(김현주)이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 구도, 시청률 지상주의에 눈이 먼 방송사의 음모 등이 개입된 해외에서의 초반부는 제법 흥미진진했다.
리얼리티 쇼가 끝나고, 무대가 다시 한국으로 옮겨온 7회를 기점으로,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이미 보여줄 만한 것을 다 소비한 채,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급급해 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다보니 인물들의 상황이나 선택에 대하여 필연성이 떨어지는 설정이 한둘이 아니다.
은영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리얼리티쇼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이라든가, 방송이후 영훈과 은영이 부득이하게 계약연애를 하게 되는 설정. 영훈의 짧은 성공과 스캔들로 인한 위기 등은 억지로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위해 작위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