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건의 한미합의,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PSI 참여·전략적 유연성 합의 관전법

등록 2006.01.25 11:00수정 2006.01.2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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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24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전략적 유연성 합의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자료사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24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전략적 유연성 합의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상하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힘들다. 정부 당국자는 "같은 시기에 이뤄져 우리 정부의 입장 변화로 비춰지고 있을 따름"이라고 의미 축소했지만 이 말을 마냥 믿기엔 조짐이 심상치가 않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용에 이어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부분 참여하기로 한 사실이 밝혀진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언론은 참여폭이 '부분'이란 점을 감안해 "일종의 고육지책"(경향)이라고 했다. "미국과 북한 모두를 저울질한 결과"(중앙),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정부의 고민을 반영하는 것"(동아)이라고도 했다.

이렇게 진단한 언론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PSI 부분참여만을 따로 떼어내 분석했다는 점이다.

반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용과 PSI 부분참여를 한 데 묶어 분석한 <한국일보>는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의 "단순한 우회전이 아니라 'U턴'에 가까운 행위" 주장을 인용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정부, 미 압박에 사실상 손들어".

또 오늘자에서 관련 사설을 실은 <서울신문>은 "정부, 미 강경책에 왜 끌려 다니나"라고 물었다. "미국의 강경파를 설득하지 못하는 정부의 외교력 미흡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내 매파가 6자회담을 둘러싼 긴장을 증폭시킨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일보>와 <서울신문>의 분석을 종합하면 우리 정부는 미국 내 매파의 강경책에 굴복했으며,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수용, PSI 부분참여 모두 그 산물이라는 것이다.

정리할 게 있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수용과 PSI 부분참여는 전부인가, 부분인가? 이 물음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수정되는 것인가? 조짐이 이상하고, 때마침 최재천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마당이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평화·번영·자주와 전략적 유연성 호응 어렵다

참여정부는 대북정책의 뼈대로 평화번영정책을 천명한 바 있다. 대미정책과 관련해서는 수평적 동맹관계로의 재정립을 제시했다. 요약하자면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키워드는 평화·번영·자주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용과 PSI 부분참여는 세 개의 키워드와는 호응하기 어렵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용이 "동북아 군사안보구도에 격렬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했다. "격렬한 변화"가 뭘 뜻하는가?

PSI는 핵·생화학무기·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이동과 확산을 육·해·공 전 방면에 걸쳐 군사력으로 봉쇄하는 구상이다. 이 구상에 한국이 부분적으로 편입된다. 이것이 북한을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

더 있다. 주한 미 대사관은 어제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어, 북한 위조지폐 제조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방한한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테러자금 및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가 우리 정부에 "대량살상무기 확산 주범과 그들을 돕는 지원망을 재정적으로 고립시키는데 한국이 더욱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군사적 봉쇄 외에 금융 봉쇄를 추가로 요구한 것이다.

글레이저 부차관보의 요구가 수용될 경우 제재 범위는 금융에 한정되기 힘들다. "대량살상무기 확산 주범 및 지원망에 대한 재정적 고립책"에는 남북 경제협력이 포함되기 쉽다. 남북 경제협력에 돈과 물자가 오가기 때문이다. 그럼 남북교류의 토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현상만 놓고 보면 흐름은 평화·번영·자주와는 정반대다. 최재천 의원의 표현을 빌리면 U턴에 가깝다. 그런데도 정부는 말이 없다. 그래서 미루어 짐작하고, 알아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주한 미 대사관이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어 한미 협상 내용을 공개한 사실에는 놓칠 수 없는 대목이 하나 있다. 아직까지 우리 정부가 대북 금융제재에 전적으로 합의해준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 정부가 합의를 해줬다면 주한 미 대사관이 이례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주한 미 대사관의 보도자료 발표는 일종의 한국 정부 압박용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래서 일말의 기대도 가져본다. 아직 U턴을 한 건 아니라는 막연한 추측도 해 본다. 깜박이만 넣었을 뿐 아직 핸들을 돌린 건 아니라는 추측 말이다.

긍정적으로 추측을 하니까 범위가 확장된다. PSI 부분참여를,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전술적 후퇴 정도로 해석해도 되는 것 아닐까?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수용과 관련해서도, 우리 국방부가 주한미군 작전범위 확대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으니 달리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까? 현실과 희망 사이에는 엄중한 차이가 있다. 의지와 실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발을 한번 담그면 빼기 어려운 게 인생사다. 설령 뺀다 해도 발에 묻은 뻘의 흔적을 지우긴 쉽지 않다. 뻘의 흔적을 지우기까지 상대방이 마냥 기다려줄 것이란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전략적 유연성 사실상 뼈를 드러내겠다는 얘기

a 녹색연합, 민교협, 민중연대, 참여연대, 평화네트워크, 평통사, 황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 20여명은 23일 오전 청와대앞 합동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인해 한반도가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원하는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며, 동맹 재편에 관한 국민적 토론과 의견수렴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녹색연합, 민교협, 민중연대, 참여연대, 평화네트워크, 평통사, 황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 20여명은 23일 오전 청와대앞 합동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인해 한반도가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원하는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며, 동맹 재편에 관한 국민적 토론과 의견수렴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한미 군사동맹체제의 뼈대를 바꾸는 중대 사안이다. 이 문제에 합의를 해줬다는 건 뼈를 드러냈다는 얘기다. 살 한 점 떼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PSI 부분 참여도 그렇다. 8개 분야 중 5개 분야에 한정했고, 참여가 아니라 참관이라고는 하지만 북한이 느낄 감도는 우리 정부의 설명과는 다를 것이다. 더구나 한미 군사훈련을 할 때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훈련을 하기로 결정해 버렸다. '참관' 주장을 일거에 날려버릴 민감한 부분이다. 그 뿐인가. PSI에 참여하는 국가가 70개국에 달한다. 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다. 그건 곧 미국과 척을 지는 일이다. 한 번 발을 담그면 끝인 게 바로 PSI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나 PSI 모두 전술 운용 폭이 극히 제한된 사안이다. 전략 사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래서 미국 내 매파의 압박을 피하기 위한 전술적 후퇴라는 설명은 별로 설 자리가 없다.

미국 내 매파가 그런 전술 운용을 허용할 것 같지도 않다. <중앙일보>가 미 군사전문지 <디펜스 뉴스>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다음달에 21세기 국방전략을 담은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를 발표한다고 한다.

보고서는 전 세계 4개 지역에서 적대행위를 억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4개 지역 중 2개 지역이 각각 동북아와 동아시아 연안이라고 한다. 동북아는 북한, 동아시아 연안은 중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보고서는 2개 전쟁에서 승리, 1개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는데 미 군사 전문가들은 '결정적 승리'의 의미가 '점령' 대신 '정권교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고 한다.

정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덜컥 합의해주고 결정해버린 이유가 뭘까? 국민이 반드시 물어야 하고, 정부가 의무적으로 답해야 하는 사안이다.

눈길 끄는 25일자 <한겨레> 보도

관련해서 눈길을 끄는 보도가 있다. <한겨레>는 오늘 1면 머릿기사로 '합의 안 지키는 북, 언제까지…'를 올렸다. 북한이 남한과 약속한 군사당국자 회담, 개성과 백두산 관광사업 등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한겨레>는 북한을 향해 "신의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른 언론이 일제히 PSI 관련 기사를 1면에 전진 배치한 것과 달리 <한겨레>는 관련 기사를 5면에 후진 배치하면서 북한의 불성실한 태도를 꼬집는 이 기사를 1면 머리로 끌어올렸다.

<한겨레>의 이 편집태도가 뭘 뜻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겨레>조차 말줄임표를 쓴 마당에 넘겨짚는 건 무리다. 다만, 이런 편집이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짚을 수 있다. 두 가지다. 이른바 양날의 칼이다.

첫째, 안전판 확보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매파의 공세가 날로 거세지고,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노선이 이상 징후를 보이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확보할 수 있는 안전판은 남북교류를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북한의 약속 불이행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성과는 보장할 수 없다. 북한의 태도가 남한의 '촉구'에 의해 좌지우지될 정도였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공을 들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간단한 궁금증이 앞선다. 더구나 남한에서는 북한의 태도를 더욱 강경하게 만들 사안이 돌출된 상태다.

둘째, 정반대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변화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공을 들였는데도 북한은 오리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압박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보고 어쩌라는 말이냐"는 정부의 푸념성 해명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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