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황홀

[서평] 오정희의 <내 마음의 무늬>

등록 2006.02.02 17:53수정 2006.02.0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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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설 쓰기가 힘들다는 것은 삶이 힘들고 섣부르게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 미묘하다는 깨달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껏 내 삶의 두 축은 생활인으로서의 '살기'와 소설가로서의 '쓰기'였고 그 둘의 균형 잡기에 적지 않은 안간힘을 써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바로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황금부엉이
글쓰기가 곧 '삶 쓰기'가 될 수 있으리란 소박한 기대로 가정생활과 글쓰기 중 어느 것 하나 놓지 않고 살아왔지만 창작에의 욕구와 일상인으로서의 욕망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힘겹고도 팽팽한 줄타기를 해 온 작가 오정희(59)씨가 두 번째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황금부엉이)를 펴냈다.


이 책은 2000년부터 쓴 짧은 글 24편을 모아 엮은 것이다. 장편소설 <새>(1996년)발표 이후 10년 만이다. 그는 첫 번째 산문집을 1991년에 펴낸 바 있다. 소설을 쓰지 못하는 작가의 쓰기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두 번째 산문집<내 마음의 무늬>를 내기까지 작가는 과연 문학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일까.

글을 쓸 수 없는 중에도 글 쓰는 작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글쟁이의 운명이 아닐까.
그는 이번 산문집에는 생활인으로서, 두 아이의 어머니와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소설가로서 살아오면서 일어났던 간단치 않은 이야기와 춘천생활, 소설쓰기의 어려움과 애정, 창작관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문학 하는 행위는 비정하고 엄혹한 것이어서 그것에 장애가 되는 어떤 문제도 구실도 남루한 변명에 지나지 않게 만드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생활과 문학 사이에서 고뇌했는가를 알 수 있다.

또한 '고통의 제스처의 추함, 엄격한 자기 검증을 거치지 않은 언어의 추함'을 스스로 경계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고 있으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쓰지 못하게 될 경우 오는 초조함과 불안함이 담긴 대목이 여기 있다.


"저녁쌀을 씻다가 눈을 들어 창밖을 보면 노을에 잠기는 산의 능선과 숲을 지나가는 흰 새의 모습이 말할 수 없이 비의적으로 신비하게 와 닿아 오고 나는 인생에 대한 어떤 막연한 슬픔으로 가슴이 메어오곤 했다.

무엇이든 시작하기에도 포기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나름대로 규정했던 삼십대의 고비들을 어렵게 불안하게 넘기며 밥하기 싫어서, 그리고 인생이 이렇게 지나가는가 하는 절망감대문에 옷소매로 눈물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생활과 문학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이런 심정을 한 번쯤 느껴 보았을 것이다. 쓰겠다는 말만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초조감으로 쩔쩔매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생활과 문학이라는 고통스러운 경계에 서서 살아온 작가는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조리대와 나란히 놓인 책상에서 글을 쓰면서 밥 짓기와 글쓰기가 결코 생각처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 문학이라든가 창조적 생활이란 저 멀리서 나부끼는 깃발이 아니라 지금 여기, 발 딛고 있는 자리를 굳건한 터전 삼아 발아하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본문 중

그녀의 첫 번째 산문집 <물안개 피는 날>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재능이란 집념에 다름 아니며 창작은 정신과 힘의 집중이 요구되는 지극히 이기적인 직업인만큼, 그렇게 신경과 기분을 조각조각 일상사에 찢어 쓰며 무슨 힘으로 소설을 쓰고 큰 작가가 될 수 있겠느냐"는 애정 어린 우려를 듣기도 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정과 소설이라는 덫이면서 닻인 두 개를 황홀하고도 고통스럽게 끌어안고 왔다. 작가는 이제 '글쓰기의 즐거움! 글쓰기의 행복! 글쓰기의 황홀!'을 덧붙이고 싶다고 책의 머리말에서 드러내고 있다. 이제 오랜 침묵의 시간을 지나 그녀가 돌아왔다.

'많이 생각하고 오래 삭히어 빚어내는 한 줄의 고요하고 단정한 문장과 깊은 울림으로 숨 쉬는 행간의 세계'를 꿈꾸는 그녀. 이 책을 통해 침묵의 세월만큼 깊고 울림 있는 신명나는 글 판을 벌리는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음,
황금부엉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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