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욱 장편소설> 762년 - 첫 회

표류(漂流)-1

등록 2006.02.27 10:16수정 2006.02.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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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도움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정벌한 신라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국가제도를 개혁하였고, 강화된 왕권으로 귀족을 억눌렀다. 또한 인구 증가와 생산력 향상에 따라 조세가 늘어나자 왕경을 정비하고 대대적인 건설공사를 벌였다. 이에 대해 귀족들은 노골적인 불만을 품으며 경덕왕에 대한 반역을 꾀하기에 이른다.

한편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한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 고구려의 후신임을 자처하고 나선 발해 또한 국가의 기틀을 갖추며 크게 성장한다. 우리 역사에서 북쪽의 발해와 남쪽의 신라라는 남북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두 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어 크게 대립한다.


한편 발해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당나라와 크게 대립을 한다. 당시 당나라는 천하제일의 강국이었는데 이를 발해가 자극한 것이다. 그러던 중 발해의 2대왕 무왕이 당나라 등주를 공격하여 그 갈등이 극에 달한다. 그 후로 발해와 당나라는 크고 작은 국지전을 펼치며 대립하게 된다. 이에 당나라는 신라와 밀착하여 남쪽과 서쪽에서 발해를 압박하는 전략을 택한다.

한편 일본은 사사건건 신라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이를 경계하기 위해 발해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다. 발해와 일본은 동해를 사이에 두고 정기적으로 사절을 파견하곤 했다. 바야흐로 신라와 발해를 두고 당나라와 일본의 치열한 대립과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762년, 격동과 파란의 동북아 정세이다.


위아래 동서남북으로 눈 닿는 끄트머리 어디를 바라봐도 있는 것은 바다와 하늘일 뿐, 세상은 온통 바다와 하늘로만 이뤄져 있었다.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과 바닷가 물먹은 눈동자로 아득하게 밀려갔다 밀려오는 것 같았다. 바닷물이 자꾸 눈으로 밀려들어와 주위의 사물이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흐리게 보였다.

왕신복은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기 위해 상반신을 뒤로 젖혀 뒤통수를 바닷물에 적시면서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시선이 수평선에 닿을 듯 말 듯한 낮은 위치에서는 파장이 긴 빛밖에 안 보여 온통 보라색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작렬하는 태양에 눈이라도 멀세라 몸을 웅크리고, 소금물에 부르틀 대로 부르튼 입으로 바닷물이 들어갈세라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그러면서 두 팔로 널빤지를 세게 움켜쥐었다. 만일 이것을 놓치게 된다면 자신은 저 아득한 심연의 바다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밤새 졸음과 허기를 참으며 거의 본능적으로 움켜쥐었던 널빤지였다. 선실 입구의 문짝이 분명한 이 널빤지가 어떻게 바다로 떨어졌는지 그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에 빠져 꼼짝없이 죽는 줄로만 알았던 왕신복은 이 널빤지에 몸을 의지해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널빤지 하나에 생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자 자신의 존재 너무 미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발해 대문왕(大文王)의 총애를 받고 있는 정당성 좌윤(政堂省 佐尹)이 아닌가?

한 나라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그가 겨우 널빤지 하나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널빤지가 발해를, 아니 이 삼한 땅을 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눈을 감았다 떠도 풍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자고 있는 것인지 깨어있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았다.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어김없이 고통이 몰려왔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갈증이었다. 태양이 높이 떠오르고 햇볕이 따가워지면 점차 심해질 것이다. 푸른 바닷물을 벌컥 마시고 싶은 유혹이 몇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참아야만 한다. 일시적인 갈증을 해결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갈증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사람은 물 없이도 여드레에서 열흘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살고자 하는 강한 의욕만 있으면 어떡해서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가는 배를 만나거나, 해류를 잘 이용해 육지나 섬에 닿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지만, 왕신복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 믿음과 확신이 없다면 이 순간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일부러 입안에 침을 만들어내어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널빤지를 붙잡고 있는 손을 들여다보았다. 하루 밤낮을 바다에 담겨 있은 탓으로 피부는 불었고, 손톱은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온몸이 자기 몸 같지 않고, 육체에서 감각이 분리된 듯한 느낌이었다. 목덜미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 앞으로 고개를 숙이자 투명한 바닷물 속으로 자신의 무릎과 발목이 또렷하게 비쳤다. 동해 바다는 한없이 투명했다. 또한 푸르고 깊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동해바다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바다 가운데 배를 몰고 가서 아주 긴 실에 돌을 매달고 바다 속에 넣어 보아도 그 깊이를 측정하지 못할 정도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바다 속 깊은 곳에 용왕이 살고 있는 용궁이 있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별천지가 펼쳐져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 동해를 건너다 폭풍우를 만나 수장된 사람들이 그 용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 왕신복은 바다 속 깊은 곳을 내려다보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저곳에 빠져든다면 포근하고 아늑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대로 정신이 몽롱한 속에서 죽고 싶다는 욕망이 암울하게 몸 안을 굴러다니며 눈덩이처럼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하늘아래서 목숨이 사라지면 혼은 아름답게 저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용궁으로 내려갈지도 모른다. 적어도 갈증과 굶주림으로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득한 저 바다의 심연으로 끌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거 http://blog.ohmynews.com/novel에 오시면 소설 "762년"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와 역사적 자료, 그리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등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많이들 찾아오셔서 소설과 역사적 사료의 만남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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