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빠가 '앞으로 나란히'를 하셨습니다

28개월...솔지아빠 뇌출혈 정복기

등록 2006.03.17 12:04수정 2006.03.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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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려나 봅니다. 오늘 저는 조금 이르게 활짝 핀 웃음꽃을 보았습니다. 2년 동안 뇌출혈로 고생하신 아버지, 오늘 드디어 '앞으로 나란히!'를 제대로 하셨습니다. 아주 바르게 아주 똑바르게.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칭찬도 잔뜩 해주었습니다.


1955년생인 아버지. '우리 딸 고생 많이 했다' 눈물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십니다. 집에 오니 오늘은 왠지 지난 날에 제가 남들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들을 제가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가족이 뇌출혈로 고생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2003년 11월 14일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흔히들 뇌출혈하면 아주 먼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이 병이 그렇게 심각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이렇게 길고도 느린 회복단계를 가진 병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병 경과보고를 하면 :

1. 입원 : 2003년 11월 14일 아침 4시 입원하였고 저는 아침 7시에서야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서 보호자 사인을 하였습니다. 보호자 사인이 없으면 병원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도 수술을 하지 않습니다. 병원 관계자 측의 설명에 따르면 수술이 잘못될 경우 시신처리가 아주 번거롭다고 합니다.

2. 수술 : 아침 9시에 수술 시작하여 오후 5시경 수술 완료.(뇌수술은 아주 오래 걸립니다): 그간 보호자님들께서 꼭 하셔야 할 일은 건강보험이 완납되어 있는지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막대한 수술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800만원 정도 되는 수술비가 나왔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약 150만 원 정도 냈습니다. 수술 후 중환자실로 이동합니다.


* 뇌출혈 :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외상성, 즉 외부에서의 타격으로 인해 뇌를 둘러싸고 있는 막과 머리 피부 사이에 피가 고이는 것과 뇌 속의 핏줄이 터져서 뇌 안에 피가 고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뇌출혈로 인한 후유증은 언어장애, 기억력 상실 등 정신적인 것과 신체 마비인데, 오른쪽 뇌가 다칠 경우 왼쪽 몸이 왼쪽 몸이 다칠 경우 오른쪽 몸이 마비됩니다. 뇌출혈이 심해서 수술의 여부를 결정할 때는 동공상태를 본다고 합니다. 동공이 완전히 풀려 있으면 수술을 해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뇌출혈이 된 것이며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해서 24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 여기서 중환자실은 영화에서 보듯이 마냥 슬프고 뭔가 서정적인 분위기가 절대 아닙니다. 일단은 중환자실은 면회시간이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세 번 대략 30분 정도씩 됩니다. 하지만 중환자실이기 때문에 면회 시간일지라도 급히 누가 사망할 경우 보호자들은 나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환자 한 명당 보호자 면회가 2명 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연락하여 번거롭게 많은 지인들을 방문케 할 필요는 없습니다.


3. 다시 입원 : 뇌수술 후에는 뇌가 붓습니다. 원래는 뇌가 쭈글쭈글 하잖습니까? 주름이 없어질 정도로 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선생님들께서는 붓기 가라앉는 시간을 3일 정도로 잡습니다. 그리고 이때를 고비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7일, 21일 후가 또한 고비입니다. 뇌수술을 한 후에는 혼수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합병증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호자는 환자가 당뇨가 있는지 혈압은 어떠한지 등등을 의사선생님과 중환자실 내 간호사 선생님들께 미리 알려드려야 합니다.

4. 중환자실에서 : 중환자실은 정말 아비규환이기 때문에 간호사 선생님들께 많은 것을 바랄 수 없습니다. 일단 혼수상태로 고요히 있는 환자에게는 화상 환자나 사고로 인한 환자들보다는 신경이 덜 가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하루에 1시간 30분 있는 면회시간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 먼저 녹음기를 하나 사서 환자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장치해 놓습니다. 뇌라는 것이 신기해서 조용하면 자꾸만 자려고 합니다. 따라서 보호자가 함께 할 수 없는 시간에는 이어폰을 귀에 꽂아 놓는 것이 좋습니다.(저 같은 경우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연속 재생해 놓았습니다.)

* 면회시간에는 자꾸만 말을 겁니다. 물론 환자는 못 듣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뇌는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편히 주무세요" 내지는 "쉬세요"와 같은 평온한 말이나 짜증은 금물입니다. 생사를 오가는 무의식 속에서도 환자는 모두 듣고 있습니다. 노환으로 임종을 앞둔 분들에게나 보호자가 그런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마비가 온 신체부위 특히 팔 다리에 각별한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환자가 기운이 없기 때문에 누워 있을 때 발이 직선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방치하면 나중에 회복이 되더라도 심하게 절게 됩니다. 고로 발을 직각으로 세워서 아래에 베개로 받쳐놓습니다. 팔도 완전 바깥으로 펴고 있거나 구부리고 있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연민이 가고 안타까워도 강력하게 쿠션 같은 걸로 받쳐서 곧게 펴고 있게 해야 하며 잔뜩 움켜쥔 손은 오자미 같은 것을 쥐어주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굳어서 정신이 다 회복되어도 거동이 굉장히 불편하게 됩니다)

* 가래 : 왠지 모르게 중환자실 내의 거의 모든 환자분들이 심하게 기침을 하고 가래도 엄청 나옵니다. 간호사님들께서 호수를 목 안에 마구 집어넣어 가래를 빼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보호자는 강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침착하게 등을 두드려주거나 심장 근처를 손으로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됩니다.

5. 혼수상태 : 저희 아버지께서는 혼수상태로 2달 동안 계셨습니다. 누워만 있기 때문에 피부가 짓무르는 욕창이 생길 수 있으므로 면회시간에 들어가서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베이비파우더를 발라줍니다. 똥오줌을 받는 것은 아직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중환자실 간호사님들께서 해주시니까요. 입속을 가글도 해주어야 하고 물수건으로 땀 차는 곳이나 얼굴을 세수도 시켜주면 좋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쑥스러워서 못했던 말들 많이많이 해주십시오. "사랑하는 아빠" "아빠 오늘은 내가" "아빠. 오늘 나보니까 좋지?" 아무 말이 없어도 그 무표정 혼수상태 아버지의 눈에서 작은 눈물 하나씩 떨어지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6. 이번은 혼수상태까지만 쓰겠습니다. 마무리를 짓자면 :

야무지게 아침마다 의사선생님과 상담 꼭 하세요.(부르터진 입술에 피곤한 의사선생님께 가끔 샌드위치도 사드리고요) 보호자가 환자를 사랑해야 병원사람들도 환자를 존중합니다. 정말 뇌출혈이란 것은 장기전이기에 너무 잘하려고 초반전에 무리해서 기저귀, 휴지, 물수건등 잡다한 것들에 너무 돈 낭비하지 마세요. 충분히 병원비, 약값, 진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지출해야 할 것도 무척 많습니다. 그리고 보호자님 또한 잘 드시고 틈틈이 잘 주무셔야 합니다. 보호자가 괜히 청승맞게 눈물 흘리거나 아프면 환자 정말 외로워지고 힘들어집니다. 오늘 <오마이뉴스>기사를 보니, 아버지가 뇌수술을 하시는 분이 계시던데. 그래서 도움이 될까하고 써봅니다. 힘내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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