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1급 늠름한(?) 아버지, 2급에 도전하다

28개월 솔지아빠 뇌출혈 정복기

등록 2006.03.24 10:31수정 2006.03.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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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길 재활원 : 이제부터 악전고투의 본격적 시작입니다. 여러분.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신 후 환자의 보험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세요. 대개 의료보험환자와 산재보험환자로 나눠집니다. 산재일 경우는 병원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길지만 의료보험환자일 경우 3개월 이상 안 됩니다. 따라서 3개월마다 옮겨 다녀야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의료보험환자라 이사를 네 번이나 다녔습니다.


보험에 대해서 : 참, 보험 하니까 난 어떤 보험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드시죠? 종신보험, 생명보험, 암보험 등등. 일단, 꼭 보험증서를 잘 읽어보세요. 한 글자의 차이가 굉장히 다릅니다. 예를 들면 수술비나 입원비 같은 경우는 바로 받을 수 있지만 입원비 같은 경우는 기한이 정해져 있어서 입원비 걱정 없다! 아니요. 있다! 입니다. 또한 장애에 대한 보상은 병원과 국가에서 주는 등급에 따라서 액수가 다릅니다. 장애등급은 가장 중한 경우가 1급인데, 그렇다고 해서 돈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빠가 보험을 든 이유 : 사고 나기 1년 전인가요? 갑자기 제 통장에서 매달 약 15만원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샅샅이 찾아내서 지불한 곳에 전화를 해보았지요. 맙소사. 보험회사라네요. 아버지가 저 몰래 본인 종신보험을 드셨다고 하네요. 다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왜 지불인도 제가 되어야 하냐고요. 절교를 선언하려 했지요. 의도가 영 불순하게 느껴져서.

"아빠! 뭐 보험 들었어?"
"엉 종신보험 하나 들었어."
"왜 그랬어? 그럼 아빠가 내지 왜 나더러 내라 그래?"
"이제 아빠는 돈이 하나도 없잖아. 아빠가 죽어도 너한테 줄 것은 하나도 없고. 그래서 하나 들었어."
"...돈 안 벌고 뭐해? 지금은 뭐하는데?"
"대리운전."
"택시는?"
"월급 다 차압당했어."

몇 년 전에 집이 아주 커다랗게 망했거든요.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완전 생존을 위해서 살았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 그때쯤 지치셔서 이렇게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셨던 것이랍니다. 뭐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냥 울분 꾹 누르고 매달 냈지요. 그리고 1년 후 공교롭게 사고가 난 것이랍니다.

그런 초라한 아버지 모습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래서 마이너스 대출해서 9월에 천만 원까지 꿔줬는데 11월에 그렇게 사고가 난 것이죠(우스갯소리로 말하면 아버지 혼수상태일 때 꿔간 돈 갚으라고 옆에서 제가 많이 구시렁거렸습니다. 돈 갚으려면 얼른 일어나라고).


늠름한 아빠, 장애 1급 : 1년쯤 지나서 장애등급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때 당시 간병인이 항시 있을 시에만 걸을 수 있었고 인지능력, 판단력은 정말이지 7살 수준이었습니다. 늠름하게 1급을 받으셨지요. 100빼기 20도 안 되시더라고요. 1급이라 하면 평생 간병인이 있어야 하며 대화도 불가능하고 혼자서 샤워도 못하고 대소변 못 가리는 정도랍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더디더라도 발전하고 계셨거든요. 보험증서를 읽어보니 "장애1급일 경우 사망자 취급을 한다!"라고 써 있더라고요. 그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러면 보험도 종료되는 것이고 '사망자'가 뭡니까? 멀뚱히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계신데.


2급을 받자! : 한 3일을 공부했습니다. 둘이서. 아버지의 미래를 위해서도 1급으로 종신보험을 종료시키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2급을 받으면 10년간 소액이더라도 보조금이 지급된다고 써 있더라고요. 더하기 빼기 공부도 하고 움직이는 것도 더 열심히 시키고 하다못해 물리치료사 선생님까지 데려다 과외도 했습니다.

느리면서도 생각은 드셨나 봅니다. 열심히 잘 따라주셨죠. 병원 측에서 번복 안 된다는 것 꾀고 으름장 놓고 빌어서 간신히 재시험 봤습니다. 그리고 2급을 받았답니다. 보험은 굉장히 복잡하고 섬세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당하시게 되면 보험증서를 꼭 꼼꼼히 읽어보세요. 저같이 번거롭게 고생하지 마시고요.

재활원에서 회복기간 : 감정적으로 굉장히 여려집니다. 짜증도 많이 내고 특히 아주 많이 우십니다. 그때 한창 탄핵 때문에 전국이 시끌벅적했었는데 TV에서 국회의원님들 싸우는 것만 봐도 펑펑 우시면서 안절부절 못하셨더랍니다. 이거 원 하루 온종일 싸우는 거 나오니 하루 온종일 우신 거지요. 나쁜 국회의원들.

그러면 전 "대~한민국!" 이러고, 그것을 보시면 얼굴이 또 환해져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팔로 박수치시려 하십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2002월드컵 감격의 순간이 떠오르셨는지 또 우십니다. 하도 울어대니 어떤 날은 한참 안 운다 싶으면 괜히 시동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제가 먼저 "엉~ 엉~" 소리를 내면 또 따라 우십니다. 감이 오시죠? 얼마만큼 여려지는지요.

짜증내거나 화내고 소리칠 때 : 복식호흡 한 번 하세요. 호통 치실 때입니다. 같이 짜증내고 징징거리면 일 커집니다. 가뜩이나 대화도 잘 안 되는데 속이 터지지요. 환자가 짜증을 내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답답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보호자한테 미안한 건 알겠는데 상황이 영 비관적이니까 바보 같으니까 그러는 것이지요.

이럴 땐 논리적으로 "아빠. 앉아. 누가 이렇게 앉으래? 보통 사람들이 앉듯이 앉아. 그리고 손에 쥐고 있으라고 한 거 어디에 있어? 이렇게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 밖에 나가면 제대로 생활 할 수 있겠어?" 뭐 이런 식으로 겁을 주는 것입니다. 말 안 들으면 마치 하늘이 내려앉을 것 같이 말이지요. 그러면 대답도 못하고 큰 두 눈 멀뚱멀뚱 뜨고 계십니다. 그때쯤 "지금까지 아빠 잘했잖아. 너무 잘해서 사람들도 칭찬하잖아. 그런데 지금 와서 이러면 안 되겠지? 그치?" 달래기도 하면 짜증은 마무리가 되고요 당분간은 좀 잠잠합니다.

믿으세요. 굳게 믿으시고요, 잘한다, 엉덩이 톡톡 두드려주면 덩실덩실 잘하는 게 사람 아니겠습니까? 환자에게도 그리고 본인한테도 "나 잘하고 있는 거야. 아빠도 잘될 거야. 아니 더 이상 나쁠 것이 뭐 있어? 까짓것." 무엇이든지 말입니다. Nothing to lose(잃을 것도 없다!) 아시죠?

오늘은 여기까지 마감하겠습니다. 원래는 짧게 가려 했는데 노인네 마냥 자꾸만 말씀드릴 것이 생기네요. 다음에는 재활원 내에서의 생활과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것들 끌어와서 적어보겠습니다. 화려한 봄날 오늘하루 흐드러지게 예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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