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더니 미운일곱살이 돼버린 아버지

28개월 솔지아빠 뇌출혈 정복기

등록 2006.03.21 09:39수정 2006.03.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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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실에서의 24시간 : 정말 피곤합니다. 환자는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리지 못하고 수시로 잠이 들고 잠이 깨거든요. 참내 그동안 좀 힘들었던 것을 알면 보호자가 잘 때 내버려둬야 하는데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팔로 자꾸 침대를 딱딱 쳐서 깨웁니다. 안 되면 구부리고 있던 다리로 침대모서리를 확 내리치는 심술까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정말 짜증이 극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하지만 벌떡 일어나서 순진 난만한 아빠의 얼굴을 보면 화를 낼 수 없습니다.


“아빠. 여기는 10인실이고 아빠가 한밤중에 이러면 사람들이 짜증이 나겠지? 그러면 우리 구박받고 다른 데로 쫓겨날지도 몰라. 그리고 나도 정말 많이 피곤해 아빠. 나 아빠 외동딸이잖아. 좀 아껴줘야 하지 않겠어?” 차근차근 타이르면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느리게 알았다는 듯이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엉 그래 자. 자.” 이 세상 가장 인자한 아버지가 됩니다.

그리고 삼십분, 또 이어지는 앙탈. 한 삼일 그렇게 지나고 나니 정말 이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 90세 할아버지 간병하시는 할머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죽으려고 할 때는 살아만 주면 뭐든 다하겠다가도 이렇게 밉상 굴면 그땐 그냥 콱! 해버리지 왜 살았어, 한단 말이야” 하시며 허허 웃으십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 할아버지는 심술 나시면 판소리를 하시거나 대소변을 마구 봐버리시는 고약한 취미를 가졌거든요.

급기야 의사선생님께 찾아갔더랍니다. 왜 이렇게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일어나서 발버둥치다가 또 금방 기절하듯이 잠들어버리는지. 의사선생님 말씀하시기를 뇌출혈에서 깨어나면 정신이 든 것이더라도 뇌의 활동은 아주 느리기 때문에 잠이 들 때도 잠이 드는 거라기보다는 정신을 잃는 것이며 그 느낌은 까만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것 같다시네요. 한참을 헤엄치다가 불안하니까 벌떡 일어나게 되고 외로움을 느끼니 자꾸만 옆에 있는 사람을 깨운답니다. 뇌출혈에서 깨어나서 약 일주일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말도 단답형이고 논리도 없으며 아기같이 징징거립니다.

이 상황에서 보호자는 환자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이제부터는 천천히 회복하는 단계만 남았으니 힘을 내어 극복하려고 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몸이 마음같이 안 움직이는 것도 얼마큼 환자가 마음먹고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발전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강하게 강조하셔야 합니다. 자꾸만 그렇게 말하다 보면 환자도 보호자도 세뇌(!)가 되어서 긍정적 사고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의사선생님 말씀의 변천사 : 1. 수술하기 전 - 아마 수술 후에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으며 잘해서 정신이 나도 평생 침대에서 살아야할 것이다. 2. 수술 후 - 당장 목숨은 건졌으나 그것도 고비가 지난 다음에 장담할 수 있다. 3. 말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침대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 4. 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5. 잘하면 아주 잘하면 느리게 걸을 수도 있다.(지금 당장이 여러분은 궁금하시죠? 저희 아버지 느리게 뛰실 수 있습니다!)

재활원으로 가다 : 일반실에서 한 열흘 안정을 취한 후 저희 아버지는 재활의학과로 옮기셨습니다. 삐요삐요 앰뷸런스로 희망을 가지고 당차게!


재활원 가기 전에 유의해야 할 사항 : 일단 앉을 수 있도록 세워지는 침대가 있는지 꼭 확인하세요. 저희 아버지는 재활의학과로 옮길 당시 거동하실 수 없었습니다. 앉을 수도 무엇을 집을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밥을 먹거나 티브이를 보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특수침대가 있는 재활의학과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또한 휠체어로 밀고 들어가서 샤워를 할 수 있는 샤워실이 있어야 합니다.

계단이 있거나 하게 되면 환자를 씻기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환자가 되도록 여럿 계신 병동으로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뇌출혈 회복단계에서 중요한 것이 대화 즉 소리입니다. 자꾸 사람소리가 들려야지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티브이를 켜놓고 있기도 합니다.


이때쯤 되면 손발이 구부러진 채 굳어져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재빨리 보조기 신청을 해주세요. 보조기는 병원 카운터에 물어보시면 연락처를 가르쳐줄 것입니다. 네, 비쌉니다. 손 하나만 보조하려 해도 보통 8만 원 정도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총 50-60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회복하여 더 이상 보조기가 필요 없을 때 약 70% 이상을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근처 신발가게에 가셔서 운동화도 하나 사주세요. 보조기를 착용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큰 것을 사야 합니다. 발목이 굳은 채 힘이 없기 때문에 꼭 발목까지 오는 농구화를 사주세요. 싼 것 하나 있습니다. 거의 유니폼이나 다를 바 없는데요. '왕창신발세일' 이런 데 가시면 아주 가벼운 하얀색 농구화 약 만 원짜리 있습니다.

조금 성질 급한 환자분이나 보호자이실 경우에는 환자가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무리해서 걷게 하려 하고 그로부터 희망을 보려 합니다. 그러나 잠깐! 정말 위험합니다. 물론 넘어지는 거야 옆에서 부축하면 되지만, 발이 뒤꿈치가 들린 상태로 굳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냥 강제로 걷게 만들면 이제는 발을 또 수술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재활원에서 하는 일 : 물리치료를 통해서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며, 전기침도 맞고요, 언어치료도 합니다. 따라서 재활원은 막 주사 맞고 여기저기 간호사 선생님들 뛰어다니는 긴급한 상황은 별로 없습니다.

이제부터가 진검승부 : 짐정리를 하고 저녁을 아빠랑 같이 먹고 침대 아래 보조침대를 꺼내 드러눕습니다. 주마등처럼 그간의 일들이 스쳐지나갑니다. 사람 마음 참 좁지요? 면회 왔던 사람, 안 온 사람, 안부전화 한 친구 안 한 친구 등등이 떠오르데요. 사람, 정말 힘들 때 알아보는 것 같아요. 세상이 미워지고 화가 나고 열등감 생기고 그러다가 두고 봐라 하는 오기까지. 그래도 아량 넓은 짓 하나 했습니다. 용서가 안 돼도 한번은 기회를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따졌습니다. 혹시 몰랐다면 아니면 정말 바빴다면 용서를 구하라고 미안하다고 하라고 한 번의 기회는 주겠다고요. 그리고 맥주 한 캔 쭉 마시고 잠들었습니다. 아빠 살아줘서 고마워. 꼭 정상으로 돌려놓을 테다. 뭐 이러면서.

이튿날 하얗게 질려서 온 친구들 지인들. 쩔쩔매는 모습에 화도 금방 풀리더군요. 사람 사는 게 뭐 그렇죠 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됩니다. 이렇게 일 년여의 재활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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