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는 이주노동자들의 마지막 피난처

외국인만 있다고 한밤중에 쉼터를 휘저은 사장을 보며

등록 2006.03.20 18:30수정 2006.03.2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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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예측이 가능한 답변과 행동을 하는 사람 혹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언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주 저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 수요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 화성에 있는 'E**'라는 회사라면서 저에게 전화를 해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소 집에 가면 손 전화를 꺼놓는 습관을 갖고 있던 제가 전화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마침 당일 지방에 강의가 있어서 핸드폰으로 알람 설정을 해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짜고짜 자신의 회사에 근무하던 외국인 다섯 명이 기숙사를 나갔는데, 그 사람들이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상식밖의 시간에 뜬금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남의 전화번호를 알았는지도 궁금했지만, 묻는 말에 먼저 답을 했습니다.

“제가 퇴근하기 전까지 쉼터에 새로 들어 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쉼터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왜요?”
“한 번 찾아가 보려고요.”
“그래요? 그럼 우리 쉼터가 들어선 건물엔 밤에는 밖에서 문을 못 열게 시건장치가 돼 있으니까, 내일 들르시죠. 지금 늦은 시간이니까 내일 전화 주십시오.”

잠을 설쳤지만 다혈질인 사람이 물불 안 가리고 다급함에 전화를 했으리라 생각하고 허허 웃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전화를 걸었던 회사 사장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끊은 지 한 시간이 채 안 돼서 쉼터를 직접 찾아가 쉼터 이 방 저 방을 뒤지고, 자고 있는 사람들 이불을 들춰 보는 등 쉼터 식구들을 불안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밤늦은 시간에 오지 말라는 곳을 찾아 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뜻밖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자정과 새벽 1시경 두 차례에 걸쳐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목요일 오전에 쉼터를 찾아온 다섯 명을 만날 때였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하던 그들은 회사 사장이 한밤중에 다시 나타나 쉼터를 한바탕 휘젓고 갔다는 얘기를 친구들로부터 듣고 저에게 사실 관계를 물었습니다.


쉼터를 찾은 다섯 명이 나온 E**는 지난 2월에 최저임금이나 보험관계 등을 전혀 지키지 않아 우리 쉼터에서 노동부 고시 최저임금 안내문을 복사해 인편으로 발송한 적이 있는데, 당시 E**에서는 최저임금을 지키고 임금정산을 약속하는 팩스까지 보내왔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급여일에 E**에서는 기본급을 더 인하시키고 잔업 등의 급여계산을 엉터리로 하자 이주노동자들이 관리자에게 따졌나 봅니다. 이 과정에서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말을 듣고, 밤에 다섯 명이 기숙사를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자, 당장 외국인 인력이 필요한 E**에서 안내문을 보낸 적이 있는 우리 쉼터에 와 사람을 찾는답시고, 자는 사람 이불을 들치는 등의 난리를 피운 것이었습니다. 쉼터를 헤집었던 사장 입장에서는 한국 사람도 없고, 외국인만 있다는 사실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런 행동을 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E** 사장이 찾는 외국인들은 미리 말한 것처럼 쉼터를 이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자, 쉼터를 찾았던 다섯 명은 쉼터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곳에서 잠을 자면서 문제를 풀고 싶다고 했습니다. 쉼터를 불안하다고 여긴 사람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불안감이 있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고 가지 않으면 쉼터를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줄 것 같아 E**측의 해명을 듣기로 했습니다. 처음 전화를 받은 사람은 E** 김 차장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김 차장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근무처를 이탈한 외국 인력에 대한 E**측 대응 과정에서 야간에 쉼터에서 행한 부분에 대해 사과가 없을 경우,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으니 사장님께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하며 느낀 바는 외국인이라고 함부로 해도 된다는 태도였는데, 업체 대표가 쉽게 사과할 거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a E**에서 보내온 사과문

E**에서 보내온 사과문 ⓒ 고기복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E**에서는 우리 쉼터에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 때문인지 모르지만, 어제(일) 오후에 쉼터를 찾아와서 쉼터 식구들에게 사과를 한 후 사과문까지 발송해 왔습니다. 결국 저는 E** 측에서 쉼터를 무단으로 들락거리며 사람들을 불안케 한 부분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E**를 나온 쥬마이니(Jumaini)와 친구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장님은 사장님 말만 하고 끝나요. 알았어! 알았어! 그 다음 없어요. 김 차장도 똑같아요.”

쥬마이니와 친구들은 입사한 후 줄곧 근로계약을 한 대로 급여를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회사에서는 “알았어! 알았어!”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자 회사를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쉼터는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안전하고 믿을 만한 피난처 같은 곳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 기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저는 E**에서 보내 온 사과문을 쉼터 입구에 붙여놨습니다.

쉼터에 혹은 남의 집에 허락 없이 심야시간에 불쑥 찾아가 휘저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E**의 최저임금과 근로계약 위반 문제는 노동부에 진정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E**의 최저임금과 근로계약 위반 문제는 노동부에 진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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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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