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 메마른 정치에 단비

[이슈칼럼] 박상기 연세대 법대 교수

등록 2006.03.27 13:58수정 2006.03.2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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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여성상위시대'란 한국영화가 있었다. 영화 내용보다는 제목이 더 눈길을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여성상위'라는 표현은 여러 가지의 도발적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 문제는 여성인권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성을 둘러싼 문제제기도 그러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인권유린이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성별 구분 말고 균형있는 사회 기원

여성인권의 문제와 함께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이 여성의 사회참여 수준이다. 즉,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다. 인구 비례로 보면 한국인의 절반은 여성이다. 선거에 의해 움직이는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성은 인구 비율로 보면 남성에 비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 만큼의 유권자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다. 제도적 장벽도 있지만 의식의 장벽을 타파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면 너나없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과거, 교육비 부담 때문에 대부분 가정에서는 아들을 교육시키고 딸은 후순위로 돌렸다. 이는 어머니가 가장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에서는 자연히 아들이 우선이었다. 출산도 아들 우선이었고 교육기회도 그러하였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급격하게 논의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정치적 민주화의 영향이 크지만 출산율 감소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즉, 자녀를 한두 명씩만 출산하는 상황에서 딸도 과거의 아들 이상으로 귀하게 키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60, 7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여성교육의 효과가 나타난 점도 여성의 발언권 증대에 한몫을 하였다.

여기에다 대학입학시험을 포함하여 각종 국가시험에서 여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학생들 가운데 모두가 선호하는 서울지역 법원 판사발령 비율에서 여성이 남성을 초과한 것은 벌써 오래되었다. 법조계에 여성 진출이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다.

한편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것과 함께 다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여성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만일 여성들이 여성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남성이 남성중심으로 움직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또한 여성의 시각에서만 사회를 바라보는 것도 일면적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서는 사회구성원 전체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소수자로서 여성이 사회를 바라보는 것과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분리를 전제하지 않고 사회적 이슈를 말하는 것은 내용이 다르다.


한국의 여성운동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폐습을 없애고, 왜곡된 남성중심의 사회문화 현상을 바로잡는 데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남성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한국사회의 남성들 역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왜곡된 의식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많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의식 왜곡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남성 역시 남성중심 사회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여성총리시대 실현 반드시 이뤄져야


사회는 공동체이다. 구성원 간의 공존의식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여성과 남성 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능력의 차이를 말하기 전에 모두가 기본적 인권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동등하다. 이제까지 남성들이 경쟁을 앞세우면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다면 한국의 여성들이 우리 사회를 보다 온화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박상기 연세대 법대 교수
박상기 연세대 법대 교수우먼타임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여성 총리가 탄생될지 화제이다. 지난 정권 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좌절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꼭 실현되기를 바란다.

여성의 부드러움과 포용력이 우리의 메마른 정치와 사회환경을 조금이나마 촉촉하게 적셔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 총리라는 대내외적인 상징성도 크다. 우리나라가 여성지위에 관한 한 후진국이라는 편견을 버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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