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서비스직" 고질병이 비정규직 키운다

여성고용의 질을 높여라

등록 2006.03.28 16:38수정 2006.03.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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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안전업' 여성 '서비스업' 나눠 채용부터 차별
여행원제 폐지 불구 여전히 업무 조건 부당대우
여성계 "여성중심 직종 재평가 이뤄져야" 목청


성별분리채용부터 예고된 KTX 승무원 파업은 성차별적 고용관행으로 구조화된 우리사회 여성노동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사진은 KTX 승무원 대량 계약해지 철회 촉구 KTX 승무원·여성단체 합동 기자회견 모습. 노민규 기자  chy@iwomantimes.com
성별분리채용부터 예고된 KTX 승무원 파업은 성차별적 고용관행으로 구조화된 우리사회 여성노동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사진은 KTX 승무원 대량 계약해지 철회 촉구 KTX 승무원·여성단체 합동 기자회견 모습. 노민규 기자 chy@iwomantimes.com우먼타임스
여성경제활동인구가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을 넘었지만, 전체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일 정도로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고 있다. 오는 4월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 비정규직법안 역시 여성 비정규직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비정규직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용시장에서도 성차별적 관행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여성 노동자들을 주변화하고 배제시켜 여성의 빈곤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우먼타임스는 '여성고용의 질을 높여라' 기획 시리즈를 통해 여성노동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본다.

KTX 승무원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공공부문에서 여성 비정규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KTX의 승무원 채용 방식은 서비스 직종처럼 여성이 몰려 있는 직종을 중심으로 외주화 하고, 유사한 업무를 하더라도 성별로 분리해서 채용하는 성차별적인 고용 관행의 전형적 사례다. 이번 파업을 통해 93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이후 폐지된 '여행원제'와 같은 성차별적인 노동행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고용 절차상 차별= 2004년 KTX 개통을 앞두고 (주)한국철도유통은 채용 공고에서 '고속열차 여자승무원'으로 성별을 구분했다. 그 뒤, 담당 업무를 '고속열차 내 서비스업무'라고 규정하고, KTX 승무원 직제를 '여승무원'으로 분리해 계약직 계약을 맺었다. 반면, 같은 열차 내에서 유사한 업무를 담당하는 열차팀장은 운수직(역무원, 수송원), 열차운용원(역에서 열차운전정리, 신호취급) 등으로 일정한 경력을 갖추고 자격시험을 거쳐야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등 채용 단계부터 구분했다.

승무원과 열차팀장은 대우와 조건도 다르다. 따라서 철도공사측은 채용 단계부터 이미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여=서비스업무, 남=안전업무'라는 성별 고정관념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번 파업에 대해 일부에서 "채용 단계에서부터 성별 고정관념을 전제했고, 여승무원들은 이에 동의하고 채용되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를 따지기 어렵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 철도공사측은 직제를 구분해 채용한 것에 대해 "서비스업무의 특성상 여성을 뽑았다"고 답했다.

▲ 승무원 업무상의 차별= 열차 승무원은 핵심·상시업무인 '안전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탁고용으로 일한다. 철도공사는 안전업무의 경우 열차팀장이 담당하게 했고, 승무원에게는 영접, 환송, 객실서비스 및 승차권 검표 등 서비스 업무를 할당했다. 철도공사측은 "승무원의 업무는 서비스다. 역과 역 간격이 15분 남짓한 가까운 거리라 만일의 경우 고객에게 비상사태가 생겼더라도 그 다음 역에서 119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세윤 KTX 승무본부 승무지부 지부장은 "한 달에도 여러 건씩 고장 사고가 난다. 정거장도 아닌 데서 정차하고 고객들을 다른 열차에 옮겨 태운다. 안내방송을 하고, 홈도 없는 곳에서 고객들을 안전하게 하차시키고, 특실 서비스 물품을 허겁지겁 옮긴다"며 자신들이 실제로는 '안전업무 담당'이라고 반박했다.


▲ 남녀 구분 없이 뽑는다고 성차별 없어지나= 성 차별성 비판에 직면한 철도공사측은 성별 구분 없이 승무원을 뽑겠다고 밝혔다. 새 사업자 KTX관광레저는 전문적·체계적 시스템을 갖춘 고객서비스 전문회사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여성계는 근본적으로 여성중심 직종인 서비스 업무에 대한 재평가 없이, 여성의 비정규직화 증가는 막을 수 없다며 철도공사의 여승무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KTX관광레저가 보인 여승무원에 대한 인식은 성차별적인 고용 관행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만들었다. 지난 14일 철도공사측이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김웅 KTX관광레저 대표는 향후 사업 계획을 밝히면서 "여직원 복지를 위해 파우더룸 설치를 계획 중이다"라며, 설치 이유에 대해 "여자승무원이 (파우더룸에서) 곱게 차려입고 나가 서비스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말해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 최진섭씨는 "남자 몇 명 더 뽑는다고 노동시장에서 성차별이 해소되는 게 아니다. 여성중심 직종이 우선적으로 외주화 되는 실정에 주목하며 근본적으로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차별적인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KTX 승무지부로부터 시정요구를 접수받고 사실관계를 조사 중인 국가인권위원회 김은미 차별조사팀장은 "성별직종분리제로 인한 성차별적인 고용 관행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광범위한 범위의 진정으로 볼 수 있어 조사 범위가 넓다"며 이번 조사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과거 대표적인 성별분리채용제도였던 '여행원제'가 남녀고용평등법 입법에 따라 '성차별제도'로 간주돼 폐지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성차별적 고용 행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여성 92만, 남성 112만 원…여성빈곤 심화

사회양극화 해소와 비정규직 보호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오히려 비정규직을 확대·양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직종에 따른 성별 분절화 현상으로 여성의 비정규직화가 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작년 9월 최순영 의원과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가 1003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4만5413명의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한 결과, 여성 비정규직은 전체 비정규직의 58%를 차지했다. 특히 13개 중앙부처에서 여성 비정규직의 절대 다수가 일반 사무 및 서비스, 단순노무 직종에 집중되어 있다. 임금도 해당 직종의 여성 비정규직 평균임금이 92만원인 데 비해, 남성 비정규직 평균임금은 112만원으로 20만원 정도 차이가 났다.

이처럼 여성 비정규직의 절대 다수가 저임금 직종에 집중된 결과 동일직종 내 정규직 남녀 임금격차는 11만5천원으로 비교적 적게 나타난 반면, 전체 비정규직의 남녀평균 임금격차는 47만4천원(남성 153만원, 여성 106만 6천원)으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 성별 분절화 현상이 여성의 저임금을 고착시키고 있음이 드러났다.

단순 업무에 종사하는 취약계층 여성들은 구조 조정시 가장 먼저 비정규직화, 해고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지난해 있었던 경찰고용직 정리해고, 올해의 한국전력공사 콜센터 직원 위탁업체 고용 등의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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