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몸 보호법 마련 '잰걸음'

인공생식법·인공수정가족법 등 법안 속속 발의

등록 2006.03.29 15:05수정 2006.03.2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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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타임스
[채혜원 기자]전 세계 생명공학계를 충격에 빠뜨린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논란은 '여성의 몸'을 사회적 담론으로 대두시켰다. 특히 난자 채취와 매매를 둘러싼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윤리 논란과 함께 법적 제도 마련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난자 채취와 매매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해온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몸이 도구화되지 않게 하기 위한 법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계에서도 '여성의 몸'을 주제로 집중 기획포럼을 진행 중이다. 그동안 난자채취의 위험성 고발, 줄기세포연구의 한계, 불임치료과정에서의 여성인권 논란 등 '여성 몸'에 대해 지속적인 보도를 해온 본지는 여성의 재생산권에 관한 법적 근거와 관련한 움직임을 집중 보도한다.

법적 장치 미흡한 현행법 한계

최근 미국에서는 연속해서 난자를 판 돈으로 학업을 계속해 온 '연쇄난자기증자'(serial egg donor)가 쓴 책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여성은 책을 통해 무려 12차례나 난소 과배란 시술을 받았으며, 현재 부작용으로 심각한 우울증과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음을 실토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난자 매매를 허용하는 미국은 불임시술 의료기관들이 난자 기증자를 확보하기 위해 난자 기증 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불충분하거나 부정확하게 설명해 이 같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법적 장치가 미흡해 여성 몸을 둘러싼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사정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한국에는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생명윤리법)과 모자보건법, 보건의료기본법이 있으나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생명윤리법은 정자, 난자를 제공하거나 이용·유인·알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불임치료를 받는 시술기관에서 이뤄지는 여성건강 및 인권 침해에 대한 보호 조치가 없다. 인공임신중절(낙태)은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의해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보건의료기본법 제32조에 "여성과 어린이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강구하도록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법안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여성의재생산권리보장및인공생식에관한법률(이하 인공생식에관한법률)'과 '인공수정가족법' 입법 활동이 진행 중이다.


한국여성민우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인공생식에관한법률은 인공생식시술을 불임부부의 임신·출산을 위한 경우로 제한하고 대리모 출산을 허용하지 않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이달 내 법안 처리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난자 기증자를 가족 관계에서 단절시키고 인공수정관리센터를 보건복지부에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인공수정가족법은 열린우리당 양승조 의원이 4월 임시국회 때 발의를 앞두고 있다.


입법 논의의 핵심은 '여성 재생산권 보장'이다. 재생산권은 임신과 출산뿐만 아니라 피임, 낙태에 있어서도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결정,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다. 그동안 여성 재생산권은 출산의료기술 발전, 생명공학시대 도래 등과 같은 빠른 시대적 변화를 겪으며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못했다. 그 결과 난자 채취 후유증, 불임시술 기관의 배아관리 미흡 등의 한계를 드러냈다.

'재생산권'이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여성 스스로 몸에 대한 자기소유권과 자기결정권, 행동자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철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헌법재판소 결정례에 의하면 자기결정권은 자신의 사적 영역 사안에 대해 국가 등 외부 간섭 없이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며 "현대 입법에서는 사회적 약자가 주체적으로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는 경향이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재생산권 보호를 위한 여성들의 권한과 청구권을 보장하는 입법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재생산권' 인권 문제로 접근을

입법 활동과 함께 임신·출산 과정을 의료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루어지고 있다. 조영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2003)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에 17.6%에 그쳤던 의료기관에서의 분만율이 2000년에는 99.9%에 이르고 있어 여성의 출산 과정이 완전히 의료 영역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산 과정의 주체가 되어야 할 여성이 관리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출산의료기술의 발전은 시험관아기 시술 도입과 불임전문병원 확산으로 이어져 더욱 큰 폐해를 낳고 있다. 조주현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는 "지난 40년간 가부장적 가족관 유지와 출산의료기술 확산을 배경으로 여성의 몸은 도구화되어 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난자 공급이 이뤄질 수 있었다"며 "여성의 몸을 자원으로 여기는 국가주의와 재생산권이 공존하려면 재생산권을 인권으로 인정, 공식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성의 몸을 국가경쟁력을 위한 자원으로 간주해 온 정부의 출산 정책도 문제다. 정부는 1961년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인구조절계획을 실시, 여성의 임신·출산을 통제했다.

황정미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2005년 한국여성학회지의 기고 글을 통해 "정부는 여성의 몸을 국가정책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반면 정책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여성들은 경구피임약과 피임시술, 인공유산 등으로 인한 고통과 부작용을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국가정책이 여성 몸을 도구화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법 규정과 함께 재생산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화여대 생명윤리법정책연구소 김은애 연구원은 "남성이 중심이 되고 있는 기술·과학·의료계의 주장과 윤리적 측면의 논의는 난무하고 있으나 그 속에서 여성을 고려하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며 "법적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간의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으며 입법 활동에는 여성이 활발하게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건강권 관련 새담론 마련 박차
난자채취 피해자 소송·인공생식법 등

여성들이 자기 몸에 대해 온전한 권리를 가지기 어려운 사회라면 어떻게 여성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하는가? 불임 부부에 대해 여성운동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재생산권과 관련된 과학기술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여성환경연대, 한국여성민우회 등 36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여성행동네트워크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황우석 교수팀에 대한 조사는 일단락되어 가지만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여성계에서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생명윤리법 제정 과정부터 지속적으로 난자 채취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국가는 여전히 여성 몸이 과학기술의 연구용 재료로 쓰이는 현실을 방관하고 있다. 불임시술 기관에서 여전히 난자 채취가 이뤄지고 있는데다 배아관리에 대한 투명성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현재 여성계의 움직임은 크게 '난자채취 피해자 소송 준비'와 '인공생식에관한법률' 마련 준비로 나뉘어 진행 중이다. 난자채취 후유증에 대해 책임져야 할 연구자와 감독기관, 국가 중 어느 누구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민우회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2명의 난자채취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 여성 건강권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인공생식에관한법률도 이달 내로 법안제출 준비를 끝낼 예정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손봉희 활동가는 "생명공학기술의 적용 범위가 점차 확대된다고 볼 때 여성운동 전반에서 여성 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여성 재생산권과 생명공학기술에 관해 연구하는 여성학자들의 연구도 많아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성 스스로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이 가능한 사회로 변화하는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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