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비올 때 눈치 안 봐도 되겠네

로비와 친구들이 일요일에 노력 봉사한 이유

등록 2006.04.04 11:20수정 2006.04.0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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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으면 좋은 게 뭔지 알아?"
"글쎄…."
"잡다하게 못할 게 없다는 거야. 우리를 보면 알 수 있잖아."
"맞아 맞아… 하하."


용접봉을 들고 일을 하던 로비(Robie)가 잠시 쉬면서 담배를 입에 물고 친구들에게 묻고는 스스로 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용접하면서 계속 고개를 쳐들고 있던 터라 목이 뻣뻣했던지 책상 위에 짝 자리를 하고선 로비는 연신 고개를 돌리면서도 일을 하는 게 즐거운지 방글방글했습니다.

a 로비와 친구들이 설치한 베란다 아크릴 천장

로비와 친구들이 설치한 베란다 아크릴 천장 ⓒ 고기복

일주일 내내 용접 일을 했을 로비나 친구들이 신나게 일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일요일마다 바글대는 상담 때문에 우리 쉼터 거실이나 사무실 안에 다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베란다에서 서성대며 순서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림이 지루한 이들은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비 오는 날이면 비를 피하려고 건물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지나가는 한국 사람들에게 눈치를 받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 불편을 자주 겪었던 터라, 베란다가 있는 곳에 천장을 만들자는 논의가 시작되자, 저마다 노력봉사를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더니 뚝딱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폭은 얼마 되지 않지만, 길이가 18m나 되는 베란다에 아크릴로 천장을 만들고, 그 아래에 철봉으로 버팀목을 만들어 비를 피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공구가 신통치 않아 공사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다들 자기 일처럼 해서 깔끔하게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도 피하고 바람도 막고 소음도 막을 수 있도록 천장 외에 베란다 정면에도 칸막이 공사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급한 부분인 천장만 하고 공사를 마쳤습니다.

공사는 쉼터 식구들과 인니, 베트남 공동체 식구들이 짬짬이 시간을 내서 했고, 저는 언뜻언뜻 기웃거리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작업현장을 기웃거리다 금방 용접이 끝난 철봉에 잘못 손댔다가 가운데 손가락에 허옇게 물집이 생기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공사를 마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a 일요일 쉼터를 찾은 상담자들의 신발

일요일 쉼터를 찾은 상담자들의 신발 ⓒ 고기복

그렇지 않아도 임금 체불이나 폭행 등으로 주눅들 대로 들어서 쉼터를 찾아왔던 이들이 비 오는 날 건물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들이 궁상스럽고 안쓰러웠는데, 해놓고 나니 참 잘했고 진작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당해보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고 했던가요? 로비나 친구들은 쉼터를 찾는 이들이 어떠한 문제를 갖고 오는지, 어떠한 심정으로 쉼터를 찾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자기 일처럼 천장 만드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 처지에서는 최소한 마음이나마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조금이나마 넓혀 보고자 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덕택에 이제 최소한 비를 피할 수 있게 됐고, 이주노동자들은 비 오는 날 건물 계단에서 담배 피운다고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다른 층 임차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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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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