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인 마이만, 한글교사 되다

해외봉사단원에게 한글 배워 이주노동자에게 가르쳐

등록 2006.04.11 09:39수정 2006.04.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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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9일) 우리 쉼터에 외국인 한국어 강사가 탄생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어학원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는 마이만(Jahns Maiman)입니다. 마이만은 한글교실을 열기에 앞서 강의 안내문을 써 붙이면서 준비를 하더니, 드디어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a 마이만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마이만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 고기복

첫날 첫 시간, 마이만은 신이 났습니다. 늦게 온 사람이 자리를 잡기 어려울 만큼 둘러앉은 친구들 때문이었습니다. 저 역시 몰려든 친구들 때문에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워, 기웃거리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쉼터 공간이 강의를 진행하기에 비좁은데다 칠판조차 변변치 못했고, 강의안도 제대로 준비된 것 같지 않아 강의가 제대로 진행될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강의는 술술 진행되었습니다.

옆에서 들어보니, 그저 기계적으로 한글을 어떻게 쓰고 읽는가를 먼저 시작하지 않고,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 대해 말한 다음 한글창제원리를 설명하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강의안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이만은 자신이 아는 한글 창제 배경을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듯 구수하게 늘어놓았습니다. 학생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 끄덕하며 재미있게 듣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a 칠판에 적고 있는 마이만-교실치곤 참 열악하다.

칠판에 적고 있는 마이만-교실치곤 참 열악하다. ⓒ 고기복

마이만이 한글을 가르치면서 창제 배경까지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들로부터 오랫동안 한글을 배웠던 경험 덕분입니다. 사실 마이만이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마이만을 직접 가르쳤던 사람들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마이만을 추천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이만은 참 성실한 사람이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해외봉사단원들이 그런 말을 한 이유 중 하나는, 몇 년 전 마이만이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입학했지만, 학생들이 없어 강의가 개설되지 않은 기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강의가 개설되지 않자 마이만은 휴학한 후 스스로 우리말을 배우고 익혔고, 강의가 개설되자 복학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쉼터 한글교실은 인도네시아어를 하는 자원 활동가들에 의해 진행되다가 중간 중간 끊겼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 배우고 싶다고 하면 앉혀놓고 물어보는 말에 답하는 수준의 강의가 반복되면서, 체계적인 강의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한국인 자원 활동가들에 비하면, 마이만은 외국인이었지만 오히려 우리말을 가르치는 데 있어선 한 수 위였습니다.

앞으로 마이만은 한국인 해외봉사단원들로부터 자신이 배웠던 한글과 우리말을 매주 친구들에게 전할 것입니다. 공부를 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면서도, 자신이 그동안 받은 것을 나눠주고자 시간을 쪼개고 정성을 기울여 값있게 투자하는 유학생 마이만, 그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a 수업시간에 받아적는 학생들

수업시간에 받아적는 학생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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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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