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미쳤다고 하는 사람 봤냐?

마음의 상처로 불안했던 아데의 출국기

등록 2006.04.13 13:46수정 2006.04.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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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스스로 미쳤다면서 자신을 도와달라던 아데(Ade)가 결국 귀국했습니다. 아데는 출국하기 직전까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데는 지난주 토요일 새벽, 귀국하고 싶다면서 우리 쉼터에 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귀국준비를 위해 대사관에 갔던 날도 순간 사라졌던 적이 있어서 정서적으로 좀 불안한 면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나서 찬찬히 이야기해 보면, 너무 멀쩡해서 왜 갑자기 사라지는 행동을 하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물어봤습니다.

"만나자고 해서 사람 기다리게 해 놓고 왜 자꾸 갑자기 사라지냐?"
"다 낳아서요. 그땐 다시 일해도 된다고 생각해서요."

"친구들이 뭐라고 하던데… 맞아?"
"맞아요. 미쳤어요. 사탄이 들어왔어요. 피를 흘리면서 자꾸 달라붙어요…."

주절주절 털어놓는 이야기는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미친 사람이 스스로 미쳤다고 말하는 거 못 봤다. 너 말짱하네."
"맞아요. 맞아. 지금 멀쩡해요.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누가 자꾸 뛰라고 시켜요. 나를 막 간섭해요."

대사관과 병원을 오가는 동안 아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어느 순간 조용해져서 승용차 백미러를 보면 곤하게 잠이 들어 있곤 했습니다. 그런 그를 보며 제가 내린 결론은 아데는 누군가 옆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을 땐 편안함을 느끼지만, 아무런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땐,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끼고 본인이 원치 않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아데 자신은,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지 한 달만에 업체를 이탈한 후 줄곧 불법체류자로 있으면서, 단속에 대한 두려움과 임금체불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피해의식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해 아데를 줄곧 옆에서 지켜봤던 친구들은 여자한테 차여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어찌됐든 마음의 상처와 불법체류 신분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아데를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아데는 멀쩡히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어디론가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순간순간 힘이 빠지며 눈이 풀리는 일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한국에서 완치될 때까지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더니, 자신의 여자친구가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자신의 상태를 전화로 전했는데, 부모님께서 당장 귀국하라고 하셨다고 하더군요.

결국 아데는 부모의 권유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귀국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권이 없어 출국을 위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던 아데는 다시 저를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저 다시 입국할 수 있게 추천서 한 장 만들어 주면 안 돼요? 여권분실된 거 찾을 수 있을까요?"

재입국을 위해 추천서를 부탁하는 모습은 대단히 상식적이었던 반면, 3년 전에 분실한데다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필요도 없는 여권을 찾겠다는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체불임금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저 못 받은 월급이 있는데, 사장님께 전화 좀 해 주세요"라고 툭 던져 놓더니,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이었습니다. 받을 월급이 있다는 회사였습니다.

"사장님, 미안해요. 우리 집에 가요. 우리 아파요. 나 월급 주세요. 미안해요."

아데는 서툰 우리말로, '나'와 '우리'를 번갈아가며, 조심스럽게 말하고는 전화를 저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업체 사장은 아데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의아해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래저래 대화를 나누면서 아데가 빨리 귀국해서 가족의 품에서 안정을 찾는 것이 최선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국을 앞두고 아데를 찼다는 소문이 있는 여자 친구는 공항까지 배웅을 함께 갔고, 아데는 공항에서 다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 다 낳았어요."
"그래, 다 나았단 거 안다. 잘 가라."

스스로 미쳤다던 아데가 출국을 앞두고 다 나았다고 했던 자신의 말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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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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