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일주일만 일해봐요, 세상에 버릴 게 있나"

[사회적기업을 찾아서③] EPR 활용해 큰 일터 꿈꾸는 미래산업

등록 2006.04.05 10:11수정 2006.04.0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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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빵을 만들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 미국의 사회적 기업 루비콘 제과 관계자는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양극화'의 해법으로 사회적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저소득층의 일자리 창출과 직업훈련, 혹은 장애·독거노인·저소득층에 간병과 가사, 산후조리, 방과 후 지도를 제공하는 사회적 서비스 등을 목적으로 한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해 빈곤층의 생계 보조와 자활지원을 목적으로 전국 242개소 자활후견기관이 운영 중이다. 자활후견기관의 지원을 받아 자활공동체로 독립한 곳들은 사회적 기업의 모태가 되고 있다. 여기에 2003년부터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 또한 사회적 기업으로의 확대와 재편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자활공동체든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든 혹독한 시장 상황에서 생존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아직 사회적 기업은 흔한 사례가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논의됐던 주제였던 데 반해 우리에게는 여전히 생소하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사회적 기업을 다루는 기사를 6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 위치한 폐자원 재활용업체 미래산업 작업장. 입고된 폐자원에서 재활용 가치가 높은 가전제품과 플라스틱류 등을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 위치한 폐자원 재활용업체 미래산업 작업장. 입고된 폐자원에서 재활용 가치가 높은 가전제품과 플라스틱류 등을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1400평 남짓한 공간에 잡동사니가 즐비했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저 쓰레기들을 다 뭐에 쓰려고 하나"라고 의아해 하겠지만, 그 물건들이 바로 20명의 밥 줄이다.

충북 청원군 오창면 성재리에 위치한 미래산업은 다 쓰고 버린 가전제품이나 폐플라스틱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미 청원군에서 자리잡은 사회적 기업 미래자원(폐플라스틱 재활용업체)과 청원 자활후견기관 폐소형가전 재활용사업단이 결합해 지난해 12월 만들어졌다.

차상위 계층 9명과 기초생활수급자 7명, 미래자원 파견 인력 4명이 이 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의 손길이 무척이나 분주하다.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40∼50대여서 그런지 작업장 안에서는 흥겨운 뽕짝(트롯)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작업자 1명이 지게차로 잡동사니가 모아진 자루를 옮겨 놓으면 4명이 자루를 풀어 품목별로 물품을 나눈다. 복사기, 프린터, 오디오 같은 가전과 일반 플라스틱 물품 등이 1차적으로 분리돼 다음 과정으로 전달된다.

이렇게 나눠진 물품이 10명의 손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분해된다. 분해 후 분리 작업도 중요하다. 어떻게 분류해내느냐가 수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고철과 알루미늄의 가격은 하늘과 땅 차이다. 고철은 1kg에 100원이지만, 알루미늄은 1kg에 1200원이다. 잘못 분류하면 10배 이상 손해가 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 때문에 분해한 가전제품과 플라스틱, 고철은 다시 5명에 의해 재분류 작업을 거친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를 잡아라


새로운 제도는 기회의 창을 제공한다.

미래산업에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생산자 책임 재활용)은 기회를 제공하는 원천이다. EPR은 생산자에게 제품의 제작-유통-처리 과정을 책임지도록 만든 제도다. 폐 제품에 대한 효율적인 재활용과 함께 친환경 제품 개발에 힘을 쏟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200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업에게 제품생산과 품질보증(A/S)뿐 아니라 폐 제품의 회수와 처리에 대한 의무가 주어진 셈.

기업들은 이 때문에 재활용공장을 직접 운영하거나, 재활용사업자에게 위탁 또는 재활용공제조합에 분담금(보증금)을 주는 방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있다. 출고된 상품의 80% 이상을 수거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미 TV, 냉장고, 세탁기, PC, 오디오, 핸드폰이 EPR품목으로 지정돼 있고 올해부터는 프린터, 복사기, 팩시밀리가 EPR품목으로 추가 적용을 받는다. 적어도 2010년까지 가전제품 전 품목에 이 제도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 착안해 지난해 7월 자활후견기관협회는 삼성전자와 소형 폐가전제품 재활용 협약을 맺어 물건을 확보했다. 그 소형 폐가전제품 가운데 일부는 미래산업에 맡겨진다. 가전제품별로 kg당 보증금 가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프린터 367원, 복사기 239원, 오디오 194원, 휴대폰 2634원 등이다.

올해 삼성전자에서 처리해야 할 프린터가 7만대인 점을 감안할 때 보증금만 해도 1억 원에 달한다.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 위치한 폐자원 재활용업체 미래산업 작업장. 일차적으로 분리된 폐자원에서 가전제품을 분리해 재활용할 수 있는 부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 위치한 폐자원 재활용업체 미래산업 작업장. 일차적으로 분리된 폐자원에서 가전제품을 분리해 재활용할 수 있는 부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미래산업 양정열(39)팀장은 "아무렇게 버려진 프린터가 고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일 아니냐"면서 "버려진 가전 제품들이 사랑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며 사업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미래산업의 현재 수입은 한 달에 1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는 차상위계층과 수급자 16명의 인건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지만 1년 후인 2007년 4월까지 독립된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받고 있는 월급 70∼80만원도 미래자원 직원 수준인 100∼120만원으로 인상이 가능하다.

미래산업은 EPR 처리량을 올 6월까지 꾸준히 늘려 월 100톤까지 끌어올리고, 비닐을 녹이는 사업 등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발해 직원도 20명에서 32명으로 증원할 계획이다.

"지구 환경을 지키는 독수리 5형제"

미래산업 직원들은 매주 화요일, 작업 과정에 대한 교육과 토론을 함께 진행한다. 일하면서 느끼는 애로사항뿐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작업 방식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40∼50대 이기도 하고, 수동적인 일에 익숙한 탓에 어려움도 많다. 양정열 팀장의 이야기기다.

"일하는 분들이 간혹 이런 불만을 터뜨리세요. '왜 난 어려운 일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일 주느냐'고. 대부분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라 배려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죠. 무엇보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근로의욕을 부여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양 팀장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미래산업이 하는 폐자원 재활용 사업이 '지구 환경을 수호하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폐 제품 재활용을 통해 환경도 보존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교육을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해요. 일반 회사와 다른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주력을 하죠. 직원들에게 우리는 지구 환경을 지키는 독수리 5형제라고 말합니다.(웃음)"

미래산업은 문을 연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지만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모 기업에 해당하는 미래자원이 안정적인 일감을 공급해주고 있으며 청원군청도 다른 지자체와 달리 폐재활용품 수의계약을 통해 사회적 기업 지원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회사의 목표를 공유하고, 수동적인 자세를 탈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어진 일을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미래산업이 인센티브제 도입이나 교육을 통한 인성 훈련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래산업 직원들은 폐자원 재활용 사업을 진행하면서 쓰레기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쓰레기도 매만지면 돈이 되고 환경보호라는 사회적 책임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산업 직원들은 한결 같이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일주일만 일해 보세요. 세상에 버릴게 없다니까요."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 위치한 폐자원 재활용업체 미래산업 작업장. 입고된 폐자원을 지게차로 옮겨오면 종류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출구에서 이뤄진다.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 위치한 폐자원 재활용업체 미래산업 작업장. 입고된 폐자원을 지게차로 옮겨오면 종류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출구에서 이뤄진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안정된 직장? 아니 좋은 직장입니다"
사회적 기업의 순환 근무자 강규윤씨

▲ 폐자원 재활용업체 미래산업에서 파쇄와 용접 파트를 맡고 있는 강규윤씨. 강씨는 이웃 사회적기업인 미래자원에서 파견된 케이스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IMF는 많은 사람들을 삶의 끝으로 내몰았다. 강규윤(58)씨도 IMF 이후 예상치 못했던 시련을 겪어야 했다. 잘 나가던 사업이 도산하고, 설상가상으로 고등학생 아들은 뇌수막염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몇 년 사이에 생활의 근거지가 아파트에서 허름한 셋방으로 변해있었다. 사장님 소리를 듣던 그는 어느새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극단적 생각까지 하다가, 2004년 자활후견기관의 소개로 삶과 환경(청주에 있는 음식물 재활용업체)에 갔어요. 그 곳도 사회적 기업이었는데 일하면서 이런 곳도 있구나라고 감탄을 했죠."

그 사이 아이들도 자라 대학교에 진학하고 생활도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았다. 그는 삶과 환경에서 17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그러나 야간 작업이 대부분이고, 100kg 가량 되는 음식물 쓰레기 통을 끄는 것이 여의치 않아 대표에게 '일자리를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

"제가 힘이 딸려서 일이 늦어지니까, 젊은 친구들이 도와주는데 어찌나 민망하고 미안한지…."

기계용접이나 대형 트럭운전 등이 가능했던 강씨는 다른 사회적 기업인 미래자원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는 파견 형태로 미래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첫 순환근무자인 셈이다.

강규윤씨는 삶과 환경에서 일할 때 보다 월급은 많이 줄었지만 신명 나게 일하고 있다.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게 참 매력적이죠. 저한테 이 곳은 안정된 직장을 넘어 평생 일 하고 싶은 좋은 직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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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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