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혼자가 아닌 그곳, 언니네 방

언니네 사람들 <언니네방> 발간

등록 2006.04.10 16:25수정 2006.04.1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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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타임스
[채혜원 기자]20세기 페미니즘 문학의 대명사가 된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이 억압적인 삶에서 벗어나려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오르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성주의자들의 인터넷 기지 '언니네(http://www.unninet.co.kr)' 사이트의 '자기만의 방'은 여성들 간의 연대를 위한 공간으로 시작됐다. '자기만의 방'은 4만여 명의 회원들이 개인 블로그 식으로 누구나 만들어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다.


1500여 개에 이르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들은 깊숙이 숨겨놓은 아프고 시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익명으로 글을 쓰고 여성과 회원들만 볼 수 있는 기능을 통해 내밀한 고백과 적나라한 진실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특별하거나 소중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간직해 왔던 비밀을 '자기만의 방'에 털어놓으면 그 글에 공감하는 언니들의 지지가 이어진다. 지난 5년 동안 올라온 글 중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글들이 모여 <언니네 방>(언니네 사람들 지음, 갤리온)이라는 책으로 엮였다. 비밀 이야기집이 탄생한 것이다.

책 속의 이야기는 우선 비밀을 털어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더 이상 남자친구와 아무 느낌 없는 섹스를 하면서 신음소리를 내며 연기하는 에로배우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여성의 이야기, 자위를 시작하면서 내 몸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폭력을 일삼는 남자친구로부터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일 등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이러한 고백은 남성과 사회통념을 향해 강타를 날리는 것으로 넘어간다. 자기와 헤어졌다는 이유로 사귀던 여자의 신원을 포르노 사이트에 올려놓거나 섹스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조르고 구걸하는 남성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라고 경고한다. 나쁜 남자들의 뻔뻔함을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알고 있으니 스스로의 인간성에 대해 되물으라는 뜻이다.

언니네 방을 일군 여성들은 행복해지지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니 좀 더 용기를 내보자며 서로를 격려한다. "성적 모욕에 당황하지 말고 기분 나쁜 웃음 한번 날려보세요", "지혜롭게 파고들면 상대방은 반드시 허를 찔리게 되어 있어요", "소란을 일으키고 그것을 즐겨보세요"라고.

언니네 방은 이제 나 자신과 다른 여성들을 사랑하는 축제의 장으로 변해 있다. 언니네에서 나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 이야기가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이 사이트가 따뜻하고 평등한 소통 방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용기를 내 고백한 여성들은 언니들과 소통하면서 행복했고 가슴이 벅찼다고 털어놓는다. 상처는 상처로, 흔적은 흔적으로 보듬을 수 있게 됐고 더 이상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자기만의 방'을 통해 자신을 연 여성들은 이제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고, 화해하기보다 정당한 의사를 표시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언니네 방'에서 외친다.
"이제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언니네는?

2000년, 여성들이 언니를 만나 이야기하듯 편안하고 부담 없는 사이버마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언니네'(www.unninet.co.kr)는 웹진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후 여성주의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자기만의 방'을 비롯한 동호회 서비스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시작했으며 섹슈얼리티, 성매매, 페미니즘 이론 등 다양한 글을 모아놓은 '자료창고'도 꾸리게 된다. 또한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한 간단 건강식 만들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카페와 각종 이슈가 넘치는 토론장도 높은 관심을 끌었다.

대안적인 여성공간으로서 의미를 인정받은 언니네는 보존해야 할 인터넷 문화유산으로 선정돼 '정보트러스트 어워드 2005'를 수상했다. 이 외에도 2001년 12월 서울 YMCA가 선정한 좋은 여성사이트상, 2005년 또하나의문화 선정 제3회 고정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언니네 사람들│갤리온 펴냄│9,800원

덧붙이는 글 언니네 사람들│갤리온 펴냄│9,800원

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갤리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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