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솔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TV] 다중 스토리 구조 돋보인 심리극, '노희경 브랜드' 입증

등록 2006.04.21 19:50수정 2006.04.2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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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버전의 '러브 액츄얼리'로 많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던 <굿바이 솔로>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 시청률이 남긴 12.5%라는 수치는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훌륭한 것이 아니지만, 자극적이고 뻔한 구성으로 일관하는 기존의 국내 드라마와 달리, 등장인물들의 잔잔한 심리묘사와 인간관계의 본질을 파고드는 섬세한 시선으로 안방극장에 새로운 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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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노희경 식으로 바라보는 '애정의 조건'

노희경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다수의 걸작들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로 꼽힌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상업적인 면에서 '성공'했다고 할만한 드라마가 드물다. 그녀의 대표작인 <거짓말>이나 <바보같은 사랑>같은 작품들조차도 방영 기간동안 한 자릿수 시청률을 오락가락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노희경의 드라마는 종종 문학적이다. 구성 또한 반전의 재미나 플롯의 정교함보다는 인물들의 심리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는 탓에 스토리를 편안하게 따라잡기 쉽지 않다. 대중의 흥미를 끌만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설정과는 거리가 먼 데다 조폭이나 불륜같은 소재를 동원한다 할지라도 극의 전개를 위한 양념이 아니라 그에 맞는 필연성이 언제나 내러티브에 깔려있다.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을 만날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러나 한번 노희경의 드라마에 빠져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그녀의 세계에 '중독'된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그녀의 작품에 열광하는 수많은 팬들의 존재는 노희경을 '마니아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그려내는 세계는 우리의 실제 삶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백마 탄 왕자나 신데렐라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늘이라도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사연 혹은 상처를 지닌 인물들로 묘사된다.

노희경 드라마의 영원한 테마는, 언제나 '소통과 치유'다. 얼핏 보면 저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듯, 시니컬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들로 보이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타인과의 교류를 갈망하는 외롭고 나약한 존재들이다. 노희경 드라마는 이처럼 고독한 현대인들이 소통의 회복을 통하여 정신적으로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청률 수치에 따라 수명이나 기획의도조차 오락가락하고, 대중의 눈높이를 따라잡기에만 급급하여 비현실적이고 선정적인 내용 일색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드라마들 사이에서 노희경은 일관되게 자신만의 작품 철학을 통해 삶과 인간의 본질을 조명하는 원숙한 시선으로 트렌디 드라마의 수준을 높여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굿바이 솔로>는 한층 더 깊고 원숙해진 노희경 작가의 시선을 만날 수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노 작가의 전매특허인 현실적이면서 정곡을 파고드는 촌철살인의 대사, 다채로운 인간군상들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놓치지 않는 섬세한 묘사, 내레이션과 판타지 기법을 아우르는 실험적인 구성 등은 기존 국내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던 부분. 7명의 주인공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본격적인 다중 스토리 시점도 드라마 내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잃지 않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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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이 드라마의 결말이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해피엔딩 그 자체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지닌 내면의 상처를, 서로를 통하여 '극복해 내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듯, 미래도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인물들은 오히려 그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삶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드라마가 끝나도 왠지 그들의 이야기가 지구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작위적인 승리의 해피엔딩보다 소시민들의 희망을 예찬하는 것이 <굿바이 솔로>식 해피엔딩이다.

여기서 내러티브의 설득력을 높이는 원동력은 역시 '노희경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배종옥, 이재룡, 나문희로 이어지는 노희경 사단의 단골 배우들은 이번 작품에서 저마다 조금씩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시도하면서도 무리 없는 호연으로 극의 감동을 배가시켰다는 평가다.

젊은 피로 새롭게 합류한 천정명, 윤소이, 김민희 등도 초반의 우려와는 달리, 섬세한 심리묘사를 소화하기 쉽지 않은 노희경표 드라마에 잘 적응하며 한 단계 성장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특히 작은 손짓, 무표정한 모습 하나에 수만 가지의 감정을 불어넣었던 두 여배우, 배종옥과 나문희의 걸출한 캐릭터 소화는 대개 능력 있는 중견 연기자들을 코믹한 감초 캐릭터에 가두어놓는 기존 작품들과 달리, 최근 드라마에서 중견 배우들의 저력을 보여준 가장 빛나는 호연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물론 15회까지 복잡하게 꼬아놓은 인물들의 갈등구조를 한 회에 해피엔딩으로 모두 풀어 넣느라 호흡이 가빠졌던 점, 보다 많은 시청자들과의 대중적 소통에 실패했던 점은 아쉽다. 이는 노희경표 드라마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그러나 <굿바이 솔로>는 시청률 경쟁의 거센 혼전이 벌어지는 안방극장에서 유일하게 진흙탕 싸움에 휩쓸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초심을 지켜나간 실험적인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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