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가 국기 들고 '노동절 전야제' 가는 이유

[116주년 노동절] 휴대폰으로 온 문자메시지 40여건 "나도 참석!"

등록 2006.04.30 10:42수정 2006.05.0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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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주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인도네시아 국기를 들고 있는 친구들

이주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인도네시아 국기를 들고 있는 친구들 ⓒ 고기복


116주년 노동절을 앞두고 서울에서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를 위한 이주노동자대회'를 준비하던 토니(Fathoni)는 어디서 났는지, 가로폭이 4m나 되는 대형 인도네시아 국기를 깃대에 감고 있었습니다. 그런 토니에게 제가 시비를 걸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기는 뭐하러 달고 있나? 집회 장소에 있는 상메라뿌띠(인니 국기)를 보면 대사관에서 어지간히 좋아도 하겠다."
"그래도 깃발 아래 모여야죠. 사람이 많을 텐데…."

노동절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토니는 콩팥기형과 신장결석으로 얼마 안 있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입원을 연기하고 집회를 준비하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지난 18일 인도네시아인 누르 푸아드(Nur Fuad)가 법무부 출입국 단속을 피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토니는 "그 사람이 2층에서 떨어져 죽었다는데, 나도 죽을 뻔했던 거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작년 8월 출입국 단속을 피해 4m 높이에서 뛰어내렸다가 왼쪽 복숭아뼈 아래가 으스러지고 오른발이 삐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두 달 가까이 입원하며 수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았던 경험이 있던 토니의 입장에서는 누르의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르의 사망 소식을 접한 토니는 수술 일정을 잡아야 하는 약속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산에 있는 헤리(Heri)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헤리는 자신의 인도네시아인 직장동료가 기계 오작동으로 사망했는데, 당시 고인의 마지막 비명소리 때문에 며칠째 잠을 못자고 있고, 도저히 업무에 복귀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두명의 인도네시아인 사망 소식을 들은 저나 친구들은 침울하기만 했었습니다. 토니는 저녁 늦게 방부처리를 위해 시신을 차량에 실을 때까지 장례식장에서 별다른 말없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시신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울음을 참아보려고 어금니를 깨물며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던 그는 어깨를 들썩이는 걸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누르 푸아드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토니와 친구들은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해 농성중인 광화문 열린 시민공원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던 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후 문자메시지를 통해 '4월 30일 메이데이전야에 모이자'라는 연락들을 주고받기 시작하더니, 집회를 위해 국기도 준비하고 전통복장들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심에 출입국의 단속으로 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는 토니가 있었습니다.


a 이주노동자 합법화 촉구 농성장의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 합법화 촉구 농성장의 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저 역시 인도네시아 친구들로부터 문자메시지를 40여건이나 받았는데, 처음 문자를 보냈던 한 친구가 제 핸드폰 번호를 발신인으로 적어 보내자, 문자를 받은 친구들이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메이데이 전야에 모이자는 문자메시지에 대해 답신을 해온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흔히 말하는 '불법' 체류자가 아닌,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가진 이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불법체류자를 합법화 하자는 자리에 합법체류자가 뭐가 아쉬워 참석하겠느냐 하겠지만, 이들은 다른 생각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신들도 2년 혹은 3년 후에 원치 않지만 미등록 신분이 될 수도 있고, 미등록신분 때문에 동료들이 겪는 어려움을 옆에서 지켜봤거나 직접 경험했던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갖고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은 인도네시아인들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 입에서 나온 말로는 집회 참석자 중 절반 이상은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졌거나 곧 갖게 될 중국동포들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불법체류자로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고 위험한지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같은 노동자로서 연대의식을 갖고 힘든 시간을 함께 하고자 팔을 걷어붙인 것입니다.

이래저래 이번 노동절에는 지구촌 곳곳에서 몰려든 이주노동자들이 한 자리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전면 합법화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라!"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살인적인 강제추방정책을 즉각 중단하라!"


조국을 떠나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요? 인도네시아 친구들 말인데요, 평상시엔 자신들의 정부나 대사관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더니, 좋을 것 없는 궂은 집회를 하면서 국기 아래 모이겠다고 합니다.

농성장 비닐 천막 안에 놓인 촛불이 아련하게 타오르는 시간, 부디 이번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를 위한 이주노동자대회'를 통해, 우리 사회가 외국 인력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a 농성장 비닐천막 안의 촛불이 아련하다

농성장 비닐천막 안의 촛불이 아련하다 ⓒ 고기복

덧붙이는 글 | 4/30 서울광화문에서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위한 전국동시다발 이주노동자대회'가 개최된다.

덧붙이는 글 4/30 서울광화문에서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위한 전국동시다발 이주노동자대회'가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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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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