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작사 작곡, 언론인 노래 '거짓공약', '지역감정'

[지역언론 별곡-119] '미디어선거시대, 지방선거를 이끄는 지역방송 역할' 세미나

등록 2006.05.03 20:15수정 2006.05.0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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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가 맥 빠진 이유는 공중의제(public agenda)가 반영되지 않은 때문."
"정치인들이 작곡한 해묵은 노래를 다시 부르는 언론인들, 이젠 지겹지도 않나?"

5.31 지방선거 레이스가 종반을 치달리면서 방송사들의 후보 공약검증을 위한 토론회가 봇물을 이루면서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선거 초반과 중반까지 만해도 종이신문들이 '앵무새', '필경사'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종반에 이르러서는 방송사들이 '확성기' 소릴 듣는 형태다. 유권자 의제개발과 정책중심의 보도가 아쉽다는 해묵은 가사의 노래가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3일 오후 2시부터 전북대 행정대학원 세미나실에서 열린 '미디어선거시대 지방선거를 이끄는 지역방송의 역할'세미나에서 최근 각 방송사들이 앞 다퉈 실시하고 있는 후보자 토론 등 지역방송의 선거보도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이목을 끌었다.

a '미디어선거시대,  지방선거를 이끄는 지역방송의 역할' 세미나가 3일 전북대에서 열렸다.

'미디어선거시대, 지방선거를 이끄는 지역방송의 역할' 세미나가 3일 전북대에서 열렸다. ⓒ 박주현

권혁남 교수, "흥미위주 가십, 스케치 기사보다 해설기사 더 늘려야"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하고 방송위원회가 후원한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권 교수는 "선거에서 논의되는 이슈나 정책들이 주로 후보와 언론, 공중들에 의해 균등하게 제기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후보들이 제기하는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는 또"후보들이 선거에서 중요의제를 설정하고 언론은 이를 확산시키는 역할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꼬집었다. TV방송의 대부분 선거기사가 가십이나 스케치기사로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후보들 간의 말장난이나 비방으로 가득 찬 흥미 위주의 가십기사나 선거 유세장 분위기, 선거운동원들 간의 충돌, 유권자들의 반응이 고작인 스케치기사를 방송사들은 이제 과감히 줄이고 이슈와 정책 중심의 해설, 배경기사를 대폭 늘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모든 후보들에 대한 산술적인 균형보다는 뉴스 가치를 더 중요시하여 경쟁력이 있는 몇몇 주요 후보들을 차별적으로 더 많이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군소 후보들에게도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해주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작용하는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보도를 방송사들이 자제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권 교수는"막판 선거전이 치열해지면 정치인들은 헛공약과 지역감정을 작사 작곡하고 언론인들은 이를 노래 부르는 행태가 서서히 재현되고 있다"며 "더 이상 과거 흘러간 노래가 이번 선거에서도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선거결과를 앞 다투어 예측하는 방송사들의 여론조사 실패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방송사 여론조사 실패했을 땐 반드시 책임 물어야"

a "정치인들이 작사 작곡한 흘러간 옛 노래를 언론인들이 다시 부르고 있다"며 선거보도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한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

"정치인들이 작사 작곡한 흘러간 옛 노래를 언론인들이 다시 부르고 있다"며 선거보도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한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 ⓒ 박주현

그는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제법 잘 나가던 <리터러리 다이제스티> 잡지는 선거예측을 잘못한 죄로 문을 닫고 말았다"며 "지난 1996년 15대 총선 투표자 여론조사에서 참담한 실패를 했던 과거가 있음에도 국내 방송사들은 2000년, 2004년 총선에서도 지난번의 실패를 교훈삼지 못하고 연달아 실패함으로써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는 사례를 상기시켰다.

그는 대안으로 "토론이 있기 전 후보들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사전 분석해 놓았다가 토론의 결과로 달라진 것이 있는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이 달라졌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유권자들에게 알려주는 토론회의 사후보도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거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무관심과 냉소주의, 투표기권 의욕을 조장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라는 권 교수는 "개인으로서의 언론인과 제도로서의 언론은 선거과정에서 자신들의 막중한 역할과 책임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며 언론인들의 윤리의식 부재를 꼬집기도 했다.

그는 끝으로 "정치부 기자는 없고 정치기자만 있다는 자족적인 얘기가 더 이상 사라져야 한다"며 "특히 취재원과의 밀착보도는 기자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야를 흐리게 만들며 소위 패거리 저널리즘, 계보기자 형성 등 적지 않은 폐허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언론사 경영진과 편집 책임자들의 특정 정치 세력과의 유대나 줄서기 등이 불식돼야 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다.

장낙인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특별 세미나에는 KBS 전주방송총국 김명성 보도팀장, MBC 전주문화방송 이흥래 국장, JTV 전주방송 고병악 보도국장, CBS 기독교방송 배재우 보도제작국장,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박종훈 공동대표가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방송 관계자들은 "지역 방송사들의 후보검증 토론회는 법적 횟수제한 외에도 예산과 인력 등의 한계가 큰 문제"라며 "일부 후보자들의 토론회 거부는 맥 빠진 토론회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애로를 호소했다.

"그러다 보니 현역 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토론회는 현직 선거기반공사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난의 소릴 듣게 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맥 빠진 토론회 '현직 선거기반공사'로 전락해서는 곤란"

타 지역 민언련이 지역방송 선거보도에 날 세운 비판들도 이날 제기된 문제점들과 무관치 않다. 부산민언련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부산지역 방송 3사 선거보도 4차 모니터 결과'에서 지난 4월 중 지역 방송사들이 실시한 선거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같은 사안에 대한 조사라도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후보들 간 1.7%포인트 차이만을 보여주는 KBS부산에 비해 부산MBC의 결과가 22.2%포인트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를 나나낸 것은 양 방송사의 여론조사 모두에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어서 유권자 입장에서는 지난 16대 총선 때 실패로 돌아간 출구조사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방송 3사의 선거보도 유목에서도 경선과 공천과정의 불법선거 위주의 부정적 보도행위가 주류를 이뤄 도마에 올려졌다.

이밖에 대전충남 민언련도 최근 지역방송 모니터 결과를 토대로 좋은 선거보도와 나쁜 선거보도를 선정하면서 "매니페스토 운동이 아직 생소한 상황에서 너무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킨 일부 지역방송사의 보도행태는 매니페스토의 올바른 정착에 저해할 수 있는 나쁜 보도로 평가됐다"며 유권자들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방송보도를 주문했다.

선거전이 종반에 접어들면서 인신공격과 흑색선전, 관권선거 시비 등으로 지방선거전이 다시 혼탁해지고 있다고 방송 및 신문사들은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학계, 언론단체의 비판의식은 더욱 냉철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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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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