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분교 지붕 위 7시간 취재기
"어떻게 만나죠?" - "면회 와요!"

[동행취재] 오전 6시~오후 1시... 11인의 신부가 웃고 울던 사연

등록 2006.05.04 15:57수정 2006.05.0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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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마이뉴스> 기자는 7시간 동안 '평택 지킴이' 문정현 신부와 짧지만 굵은 데이트를 했다. 문 신부를 포함한 동료 신부 11인이 지붕에서 한나절 동안 웃다 울었던 사연을 공개한다. <편집자주>
대추분교가 4일 오전 국방부의 강제집행으로 경찰찰병력이 진입한 가운데 문정현 신부 등 성직자들이 대추분교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맨 오른쪽이 취재기자.
대추분교가 4일 오전 국방부의 강제집행으로 경찰찰병력이 진입한 가운데 문정현 신부 등 성직자들이 대추분교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맨 오른쪽이 취재기자.오마이뉴스 남소연
[새벽 4시] 애인보다 더 보고 싶었던 문정현 신부

3일 특별취재팀 소속인 기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문정현 신부 스토킹. 문 신부 인터뷰, 문 신부 기고 등 '문정현'과 함께 좌르르 쏟아지는 뉴스들 속에서 문 신부의 새로운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고민하던 기자는 이날, 문 신부의 24시간을 쫒기로 했다.

하지만 만남부터 쉽지 않았다. 사복 경찰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범대위 사람들이 문 신부를 모처에 숨겨놓았던 것. 그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문 신부 어디 계시냐"고 묻던 기자를 대추리 주민들이 단체로 '물 먹인' 셈이었다.

다음날 4일, 새벽 4시. 졸린 눈을 비비던 도중, 이게 웬 떡인가. 국방부 병력의 투입에 대비해 열린 결의대회에 문 신부가 연사로 뛰쳐나온 것. 길 잃은 아이가 어미를 만났을 때 이만큼 기쁘랴. 한 걸음에 문 신부에게 달려가 "어디 계셨던 것이냐"고 물었다.

"나? 대추분교 2층에 있었는데?"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오마이뉴스 권우성
[새벽 6시 7분] 타는 목에 물, 타는 속에 담배

본격적으로 문 신부 스토킹에 돌입, 몇 마디를 나누던 중 상황실의 긴박한 보고가 전해진다.


"지금 학생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내리에서 경찰 병력과 충돌했습니다, 운동장에 계신 여러분은 어서 정문으로 향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다렸다는 듯 문 신부와 그의 일행은 정문을 등진 채 학교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들이 간 곳은 대추분교 지붕. 까만 슬레이트 판이 스케이트장처럼 미끄러웠다. 지붕 위에는 5cm 두께의 합판으로 만든 평상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초록색 담요, 생수 2박스, 담배, 사탕 등 비상 식량이 구비돼 있었다.


지붕 위의 평상은 문 신부의 아이디어. "문 신부 아니면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겠나"라며 후배 신부들이 크게 웃었다. 문 신부는 "지난 3월 15일 2차 침탈 때 진작에 올라오려고 했는데 위험하다는 주위의 만류로 이제야 한다"고 했다. 단단히 벼른 모양이다.

내리쪽에서부터 시꺼먼 파도가 밀려왔다. 신부들 사이에서는 "전쟁이다", "만명은 족히 넘겠다", "이 나라가 어쩌려고 이러느냐"는 등의 탄식이 새 나왔다. 문 신부는 긴장한 탓인지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빈 속에 입에 댄 것은 커피 한 잔과 담배 몇 개비. 얼굴이 시꺼먼 이유를 알 것 같다.

[오전 7시] "대낮 같은데 이제 7시야?"

경찰 병력이 점점 대추분교를 에워싸고 들어오자 문 신부는 메모를 시작했다. 손바닥 만한 수첩에 날치기로 시각과 단어 몇 개를 써 내려갔다. "다 기록해둬야 해, 이런 짓은 잊어버려서는 안 돼"라며 지팡이를 손목에 걸고 볼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손목시계를 보고 한 말. "대낮 같은데 이제 7시야"라며 놀란다. 지붕 위의 한 시간은 문 신부와 동료들에게도, 기자에게도 왠지 모르게 길게 느껴졌다. 기분을 묻자 문 신부는 "초조하고 긴장되지"라며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문 신부가 굳이 지붕을 택한 이유는 뭘까. "멀리까지 내다보고 진두지휘할 수 있는 곳이고, 대추분교가 침탈되더라도 끝까지 막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란다. 한 동료 신부의 물음, "우린 어떻게 내려가지?"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이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들과 함께 대추분교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문 신부의 손에는 여전히 수첩과 볼펜이 들려있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이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들과 함께 대추분교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문 신부의 손에는 여전히 수첩과 볼펜이 들려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오전 8시 50분] "그냥은 안 내려가지… 아마 끌려내려 갈껄?"

문 신부는 지붕으로 올라갈 때부터 "구속될 각오"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왜 굳이 평택이냐"고 묻자 성경에 등장하는 '갈릴리'를 예로 들었다. 갈릴리는 부활한 예수가 예루살렘을 마다하고 향한 곳으로, 소외된 민중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땅이었다.

"여기가 갈릴리 같다. 주민들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살던 데서 밀려나고… 사람 사는데 돈이 다인가. 평생의 업을 한순간에 뺏어갔다. 여기 들어와 보고 더 절절히 느꼈다. 초조와 긴장 속에 지난 3년을 산 사람들이다."

문 신부가 평택을 향한 것은 지난해 2월 14일. 그는 평택을 "내 운동 역사의 종착역"이라고 평했다.

[오전 9시 30분] 문 신부의 눈물

경찰은 순식간에 대추분교를 에워쌌고, 흰 연기와 함께 경찰 병력은 학교 안으로 점점 몰려 들어왔다. 문 신부 일행이 있는 지붕까지 돌덩이와 빈 유리병 등이 날아들었다. 문 신부는 "이 놈들아"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1층까지 들릴 리가 없었다.

학생들이 힘없이 쓰러져 나가자 문 신부는 흰 손수건을 빼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내 눈으로 다 봤어, 이 야만성을 기억 안 할 수가 없어"라고 눈물을 훔쳤다.

[오전 10시 5분] 신부 11인의 작전명 '버티기'

대추분교 앞 운동장까지 경찰 병력이 열을 맞춰 자리를 잡았다. 어디선가 회색 매트리스 10여개가 공수됐다. 문 신부 일행과 기자는 감지했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언제 있을지 모르는 연행에 대비해 문 신부 일행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작전명 '끌어낼 때까지 버티기'.

신부들은 바깥 소식이 궁금했던 걸까. 한 인터넷 신문 사진기자가 무선 모뎀을 이용한 인터넷을 이용하자, 노트북 컴퓨터 곁으로 모여든다. 안쓰러운 마음에 "인터넷 하고 싶으시냐"고 묻자 신부들은 "뭐라고들 하는지 궁금하다"며 기자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문 신부의 후배 신부 두 명은 강한 햇빛을 피해 잠바를 뒤집어 쓴 채 인터넷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때로는 '신기하다'는 표정, 어쩔 때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괴롭힌 것은 점점 뜨거워지는 햇빛뿐 아니라 일부 언론사의 오보였다. 한 신부가 '지붕 위 신부들이 추락 위협을 하고 있다'는 한 방송사의 보도를 전했다. 신부들은 "진짜 뛰어내리라는 소리냐"며 쓴 웃음을 지었다.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추락위협설, 음독설에 대해서 이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추분교가 7일 오전 국방부의 강제집행으로 경찰찰병력이 진입한 가운데 미군기지확장에 반대하는 성직자들이 대추분교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추분교가 7일 오전 국방부의 강제집행으로 경찰찰병력이 진입한 가운데 미군기지확장에 반대하는 성직자들이 대추분교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오전 11시] 장단 맞춘 문 신부와 학생들… "미군기지 확장반대"

문 신부는 아랫쪽을 바라보다 갑자기 "미군기지"라고 외쳤다. 그러자 밑에 남아있던 범대위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확장반대"라고 장단을 맞췄다. 이에 "있는 미군"이라고 외쳤고, 밑에서는 "돌아가라"는 답이 왔다. 문 신부는 갑작스런 고성에 머쓱했던지 "사람들 표정이 허탈해서 소리 한 번 질러봤다"고 해명했다.

혹시 몰라 문 신부에게 미리 인사를 해뒀다. "내려가서 뵈어요, 근데 어떻게 만나죠?"고 묻자 문 신부의 짤막한 대답, "면회 와".

[낮 12시 10분] 대추분교 나무마저 베어가고…

더위 탓에 문 신부 일행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올랐다. 점심 식사로 올라온 김밥과 김치는 따뜻한 지경을 넘어 이제 뜨거운 상태. 사탕이나 과자보다는 다들 물병에 손이 갔다. 경찰 병력이 굴착기로 운동장 주변의 나무를 무너뜨리자 문 신부 일행은 "산 생명을 저렇게 죽여서 어쩌려고 그러느냐", "에잇, 나쁜 놈들아"며 혀를 찼다.

문 신부 일행이 정오 뉴스를 장식하자 여기 저기서 '희한한' 소식이 전해졌다. "신부 11시, 대추분교 지붕에서 추락 위협!"이라는 한 언론사의 오보에 신부들은 "(취재를 위해 돌아다닌) 기자들을 신부로 착각한 거 아니냐"며 혀를 찼다. 심지어 문 신부의 음독설까지 나돌았다. 문 신부의 한 마디, "아침에 약 먹은 거 보고 그러나?"

대추분교 앞으로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과 경찰 관계자들의 모습이 보이자 문 신부를 제외한 신부들은 플래카드를 들어 "농사를 짓게 해달라"는 등 구호를 외쳤다. 문 신부는 휴대폰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연신 전화를 걸어온 것. 문 신부는 무슨 연유인지 잔뜩 목소리를 높이고는 전화기를 닫아버렸다.

지붕으로 올라오려던 임 의원의 뜻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문 신부는 "올라오고자 하면 무엇을 못 하냐"며 편치 않은 기색을 드러냈다. 문 신부와 임 의원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의 휴대폰으로 통화에 성공했다. 문 신부는 "전 내려가면 바로 연행입니다"며 '올라가겠다'는 임 의원의 말에 "그러시죠"라는 짧은 답변을 내놓았다.

국방부가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대추분교에 설치된 어린이놀이터, 동상 등 각종 시설물과 가로수를 모두 파괴하고 있다.
국방부가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대추분교에 설치된 어린이놀이터, 동상 등 각종 시설물과 가로수를 모두 파괴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낮 12시 50분] 인사 못하고 작별

경찰 병력와 용역업체 직원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고요하던 경찰 병력은 열을 정비했고, 파란 모자를 쓴 용역업체 직원들은 분교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특공대가 투입된다'는 문자가 한 신부의 휴대폰에 도착했다.

선배 기자가 다급히 뛰어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빨리 내려오라'는 손짓과 잔뜩 찌푸린 표정이었다. 문규현 신부에게 "사다리 좀 내려달라"고 요청했고, 솔직히 무서운 마음에 배신을 때리고 내려왔다.

그들은 오후 3시까지 지붕 위에서 플래카드를 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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