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은 비원이 아니다"

[포토에세이] 후원서 엿보는 우리 정원... 단순 유희 장소 아닌 휴식·학습·정치 공간

등록 2006.05.12 11:37수정 2006.05.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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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은 개념적으로 볼 때 원림(園林)에 가깝다. 원림은 동산과 계곡, 숲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살리면서 적당한 위치에 정자나 집을 배치하는 것이다. 인공물을 배치하되, 자연을 훼손하거나 거역하지 않는다.

이래서 후원의 정자는 연못, 언덕, 숲 속, 산등성이, 계곡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으면서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 속에 안기듯 서있다.


연못가엔 부용정·애련정·관람정·존덕정이 있고, 언덕엔 승재정이가 있다. 등성이엔 취규정이 있으며, 계곡에는 소요정·태극정·청의정이 있다. 또 숲 속에는 청심정이 숨어 있다. 생김새도 다양하여 후원은 정자박물관(亭子博物館) 혹은 정자원(亭子園)으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우리의 정자는 꽃밭, 언덕, 숲 속, 계곡, 연못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 속 어느 곳에나 위치한다. 낙선재 앞 뜰.
우리의 정자는 꽃밭, 언덕, 숲 속, 계곡, 연못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 속 어느 곳에나 위치한다. 낙선재 앞 뜰.김정봉
후원은 크게 연못을 중심으로 부용지 영역, 애련지 영역, 관람지·존덕지 영역으로 구분되고 가장 깊숙한 곳에 아담한 계곡을 끼고 있는 옥류천 영역이 있다. 각 영역마다 여러 모양의 정자가 꼭 있었으면 하는 자리에 서있다. 궁궐 안에 세워져서 궁궐의 정자이지, 궁궐의 정자라 하여 절대 크거나 사치스럽지 않다. 연못이나 산, 계곡과 어울려 아담하게 서있을 뿐이다.

부용지 영역은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 우리 정원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 둥근 섬이 있다.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다.

궁궐의 담은 궁궐의 경계만을 나타낼 뿐 민간과 궁궐의 교류를 차단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궁궐 밖 정원 연못은 모두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의 사상과 철학이 궁궐 안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부용지와 부용정, 부용지 영역은 정조의 꿈이 담겨 있는 곳이다.
부용지와 부용정, 부용지 영역은 정조의 꿈이 담겨 있는 곳이다.김정봉
부용정 뒷동산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아 자연 그대로다. 잘 다듬어 언제나 같은 모양에 같은 색깔,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일본 정원과 대조적이다. 싹이 트고 꽃이 피는 봄엔 눈을 즐겁게 하고, 진한 향기가 나는 여름엔 코를 즐겁게 하고, 열매가 익는 가을엔 입을 즐겁게 한 뒤에 겨울이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우리의 산과 들을 그대로 닮고 있다.


반면, 부용정 앞동산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5단의 화계를 쌓고 화계 꼭대기에는 2층 누각인 주합루를 올렸으며, 주합루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어수문을 만들어 과감하게 인공을 가하였다.

산세와 지형을 허물고 변형시키는 일을 금기시 했고 자연 속에 인공물을 세우는 것도 조심스러워한 것이 우리 정원을 꾸민 사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은 과감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인공을 가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부용정 뒷동산이 자연미가 있다면 앞동산은 인공미가 더한 곳이다. 전체적으로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다.


부용지와 더불어 대표적인 장방형의 연못이 애련지. 부용이 '연꽃'의 한자어라면 애련은 '연꽃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중국 송대의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따온 것이다. 애련정은 북쪽 물가에 두 다리를 물에 담근 채 애련하게 서 있다.

애련정은 숙종 때(1692년)에 지어진 것으로 원래 애련지 한 가운데 섬을 쌓고 거기에 정자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지금 현존하는 정자는 어떻게 이 곳에 세워졌는지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다.

애련정, 막 핀 연꽃을 보는 것 같다.
애련정, 막 핀 연꽃을 보는 것 같다.김정봉
부용정과 애련정은 모두 이름에서 연꽃과 관련이 깊은데, 아(亞)자형의 지붕을 하고 있는 부용정이 마치 막 피려는 연꽃 같다면 몸집에 비해 지붕이 커서 지붕이 유난히 돋보이는 애련정은 활짝 핀 연꽃 같다.

애련지를 떨치고 '일반관람불가' 지역으로 접어들면 관람지와 존덕지 영역이다. 관람지는 한반도 모양처럼 생겼다고 하여 '반도지'라고 하기도 하나 일제시대 때 붙여진 이름이라 하여 지금은 가급적 반도지라 부르지 않는다 한다.

이 영역에 들어서면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이 관람정이다. 정자의 멋은 정자 안에 들어가 주위 풍광을 즐기는 것이 제일이라 할 것이나, 관람정은 멀리서 보는 멋이 더 좋다.

관람정이 세워진 때는 고종 말 순종 때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관람정의 모습은 예전의 정자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 독특하다. 부채꼴 모양의 평면에 6개의 원형 기둥이 세워졌고 지붕은 두 개의 삼각형과 한 개의 사각형 그리고 부채꼴 모양의 도형으로 구성된 도형퍼즐처럼 기하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관음지와 관음정, 다른 정자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이 간다.
관음지와 관음정, 다른 정자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이 간다.김정봉
관람지 언덕에 정자 하나가 관람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승재정이다. 화사하면서도 정면 1칸, 측면 1칸의 단출한 정자인데 승재정 뒤편 언덕에 담에 가려 지붕만 보이는 연경당의 농수정까지 같이 보면 좋다. 동궐도에는 지금 승재정이 있는 자리에 조그만 초가집만 있는 것을 봐서 승재정은 농수정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지지 않았나 싶다.

관음정을 내려다 보고 있는 승재정.
관음정을 내려다 보고 있는 승재정.김정봉
존덕지의 물이 넘치면 밑에 있는 관람지로 흘러간다. 관람지와 존덕지 사이엔 예쁘고 앙증맞지만 암팡지게 생긴 홍예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이 영역의 중심 건물인 존덕정으로 연결된다.

존덕정은 평면이 육각형이어서 처음엔 육면정이라 했는데, 지금도 육우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못가에 있는 정자는 거의 빠짐없이 두 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있다. 존덕정도 예외는 아니다. 처마에도 지붕을 만들어 지붕이 마치 이중으로 겹쳐 보이게 하여 단조로움을 피했고, 본체 밖에도 퇴칸을 두었고 퇴칸 각 모서리마다 세 개의 가는 기둥을 세워 공을 들였다. 또한 천장에는 용을 그려 넣어 한껏 격을 높였다.

존덕정, 정조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존덕정, 정조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김정봉
눈여겨볼 만한 다른 한가지는 북쪽 창방의 현판이다. 정조가 집권 말기인 정조 22년(1798년)에 쓴 것으로 자신을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즉 만 갈래 시내와 강을 비추는 달과 같은 존재'라 칭하며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려는 생각을 드러내 보인 현판이다. 개혁을 하려 했으나 그에 반대하는 세력에 의하여 번번이 좌절되자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관철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는 반대로 왕권에 도전하는 양반 관료세력이 그 만큼 컸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를 내보이기보다는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지 못하는 마음을 한탄 한 것으로 봄이 좋을 듯하다. 이 때문에 집권 초기에 규장각을 지어 정조의 정치 의지를 내보인 부용지 영역이 정조의 꿈이 담겨 있는 곳이라면, 존덕지 영역은 정조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존덕정 옆으로 특이하게 놓인 넓적하고 얇은 돌을 따라 걸으면 '폄우사'가 있다. 이 돌을 따라서 걸으면 자연스레 팔자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데 세자가 걸음걸이를 연습하는 돌이라 전한다. 왼쪽 두 칸은 온돌방이며 오른쪽 한 칸은 누마루로 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다. 폄우라 하면 '어리석은 자에게 침을 놓는다'는 뜻으로 온돌방이 딸린 건물이기에 이 곳에서 쉬는 왕을 경계하는 뜻으로 지은 듯하다.

존덕지를 벗어나 언덕길을 오르면 옆에 느티나무, 단풍나무, 떡갈나무 등 활엽수로 울창한 숲이 있고, 숲 속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청심정이 오롯히 서 있다. 청심정은 옥류천을 보고 연경당 쪽으로 내려가는 곳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정면 측면 1칸의 사모지붕을 한 단출한 정자이다.

산등성이에 오르면 비교적 큰 정자하나가 서 있는데 취규정이다. 옥류천을 가다가 중간에 쉬어 가는 정자로 인조 18년(1640년)에 건립됐다.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다른 정자에 비해 규모가 크다. 정자는 공간의 크기에 비례하여 지어지게 마련인데, 이 정자가 세워진 곳은 다른 곳에 비해 공간적 여유가 있어 좀 크게 지어졌다고 볼 수 있다.

취규정에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후원 중에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옥류천 영역이다. 맨 앞에 취한정이 있고 조금 떨어져 후원의 아름다운 세 정자라는 뜻으로 상림삼정이라 불린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이, 오른쪽으로 농산정이 각자 제자리를 찾아 옹기종기 모여 있다.

상림삼정,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이 옹기종기 서 있다.
상림삼정,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이 옹기종기 서 있다.김정봉
취한정은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생김새는 취규정과 흡사하다. 농산정은 부엌과 방2칸, 마루2칸이 딸린 일자형의 단출한 건물이다. 정자라기보다는 사랑채와 같아 휴식 공간이라기보다는 학문을 했을 법한 건물이다. 실제로 정조, 순조, 효명세자가 자주 이용하며 시문을 남기기도 하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경전을 강론하게 했다고 한다.

옥류천은 소요암 뒤쪽의 어정(御井)에서 시작하는 물이 소요암 암반을 휘돌아 작은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길이다. 암반을 인위적으로 둥글게 파서 물이 휘돌아 가도록 물길을 조성하였는데, 왕희지의 난정과 경주 포석정을 연상시킨다. 소요암 정면에는 인조가 '옥류천(玉流川)'이란 글씨를, 숙종은 그 글씨 위에 시를 새겨 넣었다.

옥류천을 바로 옆에 두고 세워진 정자는 소요정. 옥류천을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숙종, 정조, 순조 등 많은 왕이 이 곳의 경치를 시와 글로 남겼다고 하니 소요정이 가장 사랑을 받은 정자 중의 하나라 볼 수 있다. 소요정 앞에 지붕을 활짝 열고 있는 정자는 태극정이다. 옥류천 일대에서 가장 멋있게 지어진 정자다.

소요정, 옥류천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하여 왕들로부터 제일 사랑을 받은 정자다.
소요정, 옥류천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하여 왕들로부터 제일 사랑을 받은 정자다.김정봉
태극정에서 서쪽으로 곱게 다듬은 돌로 된 물길을 건너면 청의정이 있다. 청의는 '맑은 잔물결'이란 의미로 후원에서 유일하게 초가지붕을 하고 있다. 정자 주변에 인공으로 만든 논이 있고 실지로 이 곳에 벼를 심었다. 농민의 정서를 헤아리려는 마음이 녹아 있는데 마치 호남지방의 모정(茅亭)을 보는 듯하다. 농촌의 정자가 궁궐의 정원 안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이다.

청의정, 농촌 지역의 모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청의정, 농촌 지역의 모정의 모습을 하고 있다.김정봉
후원은 바깥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궁 바깥 세상과 끊임없이 교류한다. 후원을 보면 우리의 자연관과 정통정원의 특징이 그대로 담겨 있다. 후원은 일반 백성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금원'이었지만 일반 백성과 동떨어진 마음을 갖고 만들어진 향락적이고 은밀하면서 비밀스러운 '비원'은 아니었다.

후원은 바깥 세상과 동떨어진 곳은 아니고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후원 영화당의 문.
후원은 바깥 세상과 동떨어진 곳은 아니고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후원 영화당의 문.김정봉
후원은 단순히 유희의 장소가 아니다. 휴식의 공간이면서 학습과 정치의 공간이었다. 정조의 꿈이 담겨 있는 부용지 영역과 정조의 한이 서려 있는 존덕정, 학습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몇몇의 정자들의 존재는 후원이 유희와 풍류, 휴식에 그치지 않고 학습, 정치로 연장되는 공간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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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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