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백악, 서 인왕이 경회루를 감싸 안고 있다.김정봉
영남루, 죽서루, 광한루, 촉석루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아리랑, 관동별곡, 춘향전, 논개가 떠오를 만큼 지방문화를 대표하는 지방 고을의 누각이 있다. 이들 누각은 옛 도시의 영화를 간직하고 그 지역의 향토색 짙은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어서 더 사랑스럽다.
조선 후기에는 1000여 개의 누정이 있었고, '누정 문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누정에 대한 우리의 애착은 남다르다. 생김새와 서있는 자리, 건립의 주체(백성의 세금 혹은 사재)에 따라 누각과 정자는 다를 수 있으나, 그 문화를 보면 누각과 정자를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둘 모두 만남의 장소이며, 휴식의 공간이다. 때론 공부도 하고 열띤 토론도 한다. 궁궐의 누각 같은 경우 사신이 오면 접대도 한다. 한 고을의 누정이라면 중앙정치인을 접대하기도 한다. 나라 혹은 고을에 좋은 일이 있으면 잔치도 연다. 시를 짓기도 하고 읊조리기도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악기를 연주하여 흥을 돋군다. 합주도 하고 독주도 한다. 흥이 넘치면 노래와 춤도 춘다.
경회루도 이런 누정의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신이 오면 사신을 접대하고, 나라에 좋은 일이 있으면 연회를 베풀던 자리였다. 때론 왕과 종친들이 휴식을 하는 휴식터였다. 이외에 과거시험을 치르고 활쏘기를 하였으며,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누정은 멀리서 보는 맛도 좋지만 올라서 즐기는 맛이 최고다. 언제, 누구든 들어가 오십천 푸른 물을 내려다보며 편안히 쉴 수 있는 개방적인 죽서루는 아닐지라도, 낙동강 강변에 멋들어지게 서있으면서 하염없이 생각에 젖게 하는 분위기 있는 만대루는 아닐지라도, 경복궁을 갈 때마다 꼭 한 번 올라 보고 싶었던 경회루다.
이제 오르고 싶던 경회루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6월부터 특별 관람으로 개방하고 있다. 원래 경회루는 둘레에 담이 둘러쳐져 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고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폐쇄적 공간이었다. 이런 경회루에 오를 수 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경회루로 통하는 다리는 세 개다. 그 중 임금이 드나드는 다리는 남쪽 다리로 강년전과 통하고 들어서면 곧바로 위층 누각으로 연결된다. 관람객은 함홍문을 통과하여 가운데 다리로 들어선다. 다리를 받치고 있는 기둥 돌을 자세히 보면 사각기둥을 마름모꼴로 세워 물의 저항을 줄였다. 알고 보면 선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문이 열리면 기둥과 꽃단청으로 장식된 천장이 함께 눈으로 빨려 들어와 모두 와∼하는 감탄사를 내뿜는다. 나도 모르게 죽죽 열 지어 있는 기둥으로 빨려 들어간다. 기둥 밑에 실제로 들어가 서 보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