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루에 올라 경복궁 사방을 보다

[포토에세이] 궁궐 특별관람 세번째 '경회루'

등록 2006.08.08 10:01수정 2006.08.0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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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회루, 밀양 영남루, 삼척 죽서루, 진주 촉석루, 남원 광한루와 담양의 면앙정·식영정 함양 안의의 농월정·거연정, 봉화의 청암정, 울진의 망양정·월송정, 고성 청간정, 경복궁 향원정,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은 어떻게 다를까?

전자는 누각(樓閣)이며, 후자는 정자(亭子)다. 이 둘을 합쳐 누정(樓亭)이라 한다. 듣기만 하여도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둘의 차이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경회루는 언제,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품위가 있다.
경회루는 언제,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품위가 있다.김정봉
정자는 개인적인 휴식공간이어서 구조와 규모, 서있는 자리가 자유롭다. 자연과 하나가 되듯 자연의 품안에 안겨 있다. 농월정·거연정처럼 계곡에 몸을 담그고 있기도 하고, 면앙정·식영정처럼 언덕 위에 자리하기도 하며, 망양정·월송정·청간정처럼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있기도 한다. 마음속으로 있었으면 하는 자리에 부담을 주지 않고 서있다.

반면, 누각은 개인적인 휴식터라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모여 연회·풍류·접대·교육을 하는 공공적 성격이 강한 건물이다. 누각도 여러 가지여서 경회루, 주합루와 같이 지배층 왕권문화가 낳은 궁궐의 누각이 있는가 하면, 병산서원의 만대루와 옥산서원의 무변루와 같이 교육적 성격을 갖는 서원의 누각이 있다. 좀 성격이 다르지만 부석사 안양루, 전등사 대조루와 같이 종교적 색채를 띠는 절의 누각이 있다.

북 백악, 서 인왕이 경회루를 감싸 안고 있다.
북 백악, 서 인왕이 경회루를 감싸 안고 있다.김정봉
영남루, 죽서루, 광한루, 촉석루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아리랑, 관동별곡, 춘향전, 논개가 떠오를 만큼 지방문화를 대표하는 지방 고을의 누각이 있다. 이들 누각은 옛 도시의 영화를 간직하고 그 지역의 향토색 짙은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어서 더 사랑스럽다.

조선 후기에는 1000여 개의 누정이 있었고, '누정 문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누정에 대한 우리의 애착은 남다르다. 생김새와 서있는 자리, 건립의 주체(백성의 세금 혹은 사재)에 따라 누각과 정자는 다를 수 있으나, 그 문화를 보면 누각과 정자를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둘 모두 만남의 장소이며, 휴식의 공간이다. 때론 공부도 하고 열띤 토론도 한다. 궁궐의 누각 같은 경우 사신이 오면 접대도 한다. 한 고을의 누정이라면 중앙정치인을 접대하기도 한다. 나라 혹은 고을에 좋은 일이 있으면 잔치도 연다. 시를 짓기도 하고 읊조리기도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악기를 연주하여 흥을 돋군다. 합주도 하고 독주도 한다. 흥이 넘치면 노래와 춤도 춘다.


경회루도 이런 누정의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신이 오면 사신을 접대하고, 나라에 좋은 일이 있으면 연회를 베풀던 자리였다. 때론 왕과 종친들이 휴식을 하는 휴식터였다. 이외에 과거시험을 치르고 활쏘기를 하였으며,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누정은 멀리서 보는 맛도 좋지만 올라서 즐기는 맛이 최고다. 언제, 누구든 들어가 오십천 푸른 물을 내려다보며 편안히 쉴 수 있는 개방적인 죽서루는 아닐지라도, 낙동강 강변에 멋들어지게 서있으면서 하염없이 생각에 젖게 하는 분위기 있는 만대루는 아닐지라도, 경복궁을 갈 때마다 꼭 한 번 올라 보고 싶었던 경회루다.


이제 오르고 싶던 경회루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6월부터 특별 관람으로 개방하고 있다. 원래 경회루는 둘레에 담이 둘러쳐져 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고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폐쇄적 공간이었다. 이런 경회루에 오를 수 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경회루로 통하는 다리는 세 개다. 그 중 임금이 드나드는 다리는 남쪽 다리로 강년전과 통하고 들어서면 곧바로 위층 누각으로 연결된다. 관람객은 함홍문을 통과하여 가운데 다리로 들어선다. 다리를 받치고 있는 기둥 돌을 자세히 보면 사각기둥을 마름모꼴로 세워 물의 저항을 줄였다. 알고 보면 선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문이 열리면 기둥과 꽃단청으로 장식된 천장이 함께 눈으로 빨려 들어와 모두 와∼하는 감탄사를 내뿜는다. 나도 모르게 죽죽 열 지어 있는 기둥으로 빨려 들어간다. 기둥 밑에 실제로 들어가 서 보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문이 열리면 기둥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문이 열리면 기둥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김정봉
우람한 누각을 떠받치고 있는 화강석 기둥의 열을 보고 있으면 최순우 선생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우리의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인 것 같다. 최순우 선생은 "쩨쩨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며 답답하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크고도 담담한 아름다움과 멋의 본보기를 이 화강석의 주열에서 역력하게 볼 수 있다" 하였다.

'쩨쩨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며 답답하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게' 서있다.
'쩨쩨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며 답답하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게' 서있다.김정봉
또 최 선생은 "화강석 돌기둥의 우람한 주열을 보고 있으면 잔재주를 부릴 줄 모르는 한국인의 성정과 솜씨가 너무나 잘 나타나 있어서 바로 이런 것이 실질미와 단순미를 아울러 지닌 한국인의 멋이로구나 싶어진다"고 하였다. 소박한 문화에 길들여지고 크기에 자존심이 상해 왔던 우리에게 힘이 되고 큰 위안이 되는 것이다.

우람한 화강석 기둥은 소박한 문화에 길들여지고 크기에 자존심이 상해 왔던 우리에게 힘이 되고 큰 위안이 된다.
우람한 화강석 기둥은 소박한 문화에 길들여지고 크기에 자존심이 상해 왔던 우리에게 힘이 되고 큰 위안이 된다.김정봉
덤벙주초 위에 그랭이법으로 세운 삼척 죽서루의 기둥이 자연에 순응하는 우리의 심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 경회루의 화강석 기둥은 우리의 강인한 힘을 보여 주는 것이어서 죽서루 기둥과 다른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죽서루 기둥, 경회루 기둥은 자연에 순응하는 죽서루 기둥과 다른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죽서루 기둥, 경회루 기둥은 자연에 순응하는 죽서루 기둥과 다른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김정봉
연결한 흔적이 없는 이 큼직한 돌을 어디서 구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에 앞서 아랫동아리와 윗동아리의 굵기를 달리하여 곱게 다듬은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바닥은 검은 회색 전돌로 깔고, 그 위에 흰색의 돌을 올려 색의 대비가 오묘하며, 천장은 붉은 색조를 사용하여 검정과 흰색 그리고 붉은 색이 조화를 이뤄 세련미까지 갖추었다.

바깥을 두르고 있는 24개의 외진기둥은 사각기둥이고, 안쪽 24개의 기둥들은 원형이며, 모두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민흘림기둥이다. 사각과 원형 기둥 모두 기단부에는 화강암을 사각으로 다듬어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돌기둥 서쪽 끝에는 연못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연산군이 이곳에서 배를 탔다고 전해진다. 이 근방이 제일 시원하여 이곳에 모여 안내원의 설명을 듣는다. 서북쪽 담 밑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낚시를 즐겼다는 하향정이 있다.

이층 누마루는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일 높은 중앙 부분이 왕의 자리다.
이층 누마루는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일 높은 중앙 부분이 왕의 자리다.김정봉
이층 누마루는 구조가 특이하다. 누마루 전체가 평평한 것이 아니라 삼단으로 높이를 달리 하였다. 가장 높은 중앙부분이 왕의 자리다. 높이가 달라지는 경계구역에는 분합문을 설치하여 모임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여닫을 수 있게 하였다. 제일 높은 가운데 부분도 미닫이문을 설치하여 공간을 분할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천장의 장식도 단의 높이에 따라 달리하여 차이를 두었다.

낙양각 사이로 바라본 백악.
낙양각 사이로 바라본 백악.김정봉
궁궐의 주요 건물의 배치와 구조가 동양적 사상을 토대로 만들어졌듯이 경회루도 이런 사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래층의 사각과 원형 기둥들은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고, 위층 누각의 칸과 기둥, 문짝의 개수는 삼재(三才), 괘(卦), 년, 절기 등을 나타낸다.

낙양각 사이로 바라본 인왕.
낙양각 사이로 바라본 인왕.김정봉
사방에 화려한 액자모양을 한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광경을 보는 것이 경회루의 참 맛이다. 서쪽으로는 두 개의 섬과 함께 인왕산이, 동쪽으로는 근정전을 비롯한 경복궁 건물이 겹쳐 보인다. 북쪽으로는 백악산이 걸음을 뗄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고, 남쪽으로는 수정전이 경회루를 음미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인다.

낙양각 사이로 바라본 경복궁 건물.
낙양각 사이로 바라본 경복궁 건물.김정봉
경회루의 관람시간은 대략 30분 정도다. 편안히 쉬면서 감상하려면 30분 갖고는 모자란다. 그래서 난 2주 연속 다녀오기도 하였는데, 관람 시간을 1시간으로 늘리는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 다음에 갈 때는 고급 답사자처럼 30분 내내 누각에 앉아 쉬어 볼 심상이다.

덧붙이는 글 | 창덕궁 후원·낙선재에 이어 세번째 궁궐 특별관람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창덕궁 후원·낙선재에 이어 세번째 궁궐 특별관람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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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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