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장으로 간 이프... 양산세관에 보관된 이프 담배가 18일부터 폐기되고 있다.오마이뉴스
국내 담배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KT&G가 경쟁 업체의 제품을 1억원 이상의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폐기 처리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경남 양산세관 황성물류창고에 보관중이던 담배 'IF(이프)' 800만갑(20컨테이너(C/T), 1만6천 박스 분량, 1박스=500갑)이 박스채 폐기장으로 옮겨져 소각되고 있다.
폐기되는 담배 이프는 현재 시중에서 200원에 공급되는 제품으로, 16억원(800만갑×200원)이 고스란히 쓰레기가 되는 셈이다. 이프는 ㈜구강물산(대표이사 주미화)이 중국에서 자체 제조(OEM방식), 수입해 2001년 말부터 시중에 판매하기 시작한 담배다.
양산 세관에 따르면, 이프 폐기처리와 소각은 KT&G가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KT&G는 다른 회사의 담배 폐기에 주도적으로 나선 것일까?
2500원→200원 가격이 하락하니...
구강물산은 지난 2000년 담배제조 독점 폐지 법령이 통과되면서 담배제조와 유통에 뛰어든 회사다. 2001년 7월 이프를 판매해 단일 제품으로 2001년 150억원, 2002년 23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노조 파업, 영업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자 구강물산은 2005년 3월 대출금 변제를 위해 하나로 저축은행에 담보로 잡혀있던 이프 4만 박스 분량(2000만 갑)의 선적화물증권(BL)을 하나로 저축은행(충북 청주 소재)에 넘겼다.
그러나 담배는 일반 상품과는 다른 특수 품목이기 때문에 제조 및 유통 허가권이 없으면 판매가 어렵다. 이 때문에 이프 4만 박스(50C/T) 선적화물증권을 넘겨받은 하나로 저축은행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로 저축은행은 4만 박스(50C/T) 가운데 일부인 9600 박스(12C/T)를 업자에게 팔았지만, 이후 불법유통 문제가 발생하면서 골머리를 앓게 됐다.
반면 구강물산은 올해 3월 'IF(이프) 노블'이라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과거 이프의 남은 물량을 한 갑당 200원에 판매하는 전략을 세워 회사 재건에 나섰다(기존 가격 2500원). 담배의 경우 시중가 200원 이하로 판매되는 제품에는 담배부담금이 면제돼 66원의 세금이 부과되지만, 200원이 넘게 판매되는 제품에는 1300원 가량의 세금이 부가된다. 따라서 저가 제품을 판매할 경우 200원 이하로 판매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저가 담배의 부담금 면제는 올해 7월에 사실상 폐지되기 때문에 구강물산의 200원 판매 전략은 7월 이전까지만 유효하다.
구강물산은 서울시청의 허가를 얻어 올해 3월 15일부터 이프의 가격을 200원으로 변경해 팔고 있다. 시중에 유통시킨 물량은 6351박스(317만5500갑). 또한 구강물산은 하나로 저축은행과 협의해 세관에 보관중인 나머지 물량에 대해서도 저가 공급을 계획하고 있었다.
2500원 담배가 200원에 공급되자 긴장한 것은 KT&G. 200원 담배가 현실화 되자 KT&G는 지난 4월 14일 마케팅부장 등이 구강물산의 김인재 회장을 찾아와 양산 세관에 남아있는 이프 담배에 대한 폐기 처분을 권유했지만, 김 회장은 이를 거부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프 담배를 담보로 잡고 있는 하나로저축은행이 열흘 뒤인 4월 24일 양산세관에 "(남아있는) 34컨테이너 담배 가운데 14컨테이너는 보류하고, 20컨테이너는 폐기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KT&G "애연가 건강을 위해 폐기 비용 부담했다"
▲구강물산이 시중에 판매하는 이프(왼쪽)와 이프노블구강물산
이프 담배 폐기에 대해 양산 세관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양산세관 박윤칠 과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담배 소유권자인 하나로 저축은행이 10억원의 보관료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담배 폐기를 원했기 때문에 소각을 결정했다"면서 "여기다 KT&G가 '오래된 담배가 시판되는 것은 곤란하니 폐기비용 1억 2000만원 정도를 부담하겠다'고 해서 폐기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과장은 "구강물산에 이프의 상품 소유권이 있는 것은 맞지만, 양산세관은 실제 소유권자인 하나로 저축은행의 요구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구강물산은 하나로 저축은행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담배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KT&G가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이프 담배 폐기에 나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구강물산 주미화 대표이사는 "생산 원가가 20억원에 이르는 멀쩡한 상품을 군인 등에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는데 왜 폐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KT&G의 경쟁사 죽이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KT&G 측은 "담배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2001년부터 창고에 보관된 담배가 유통되는 것은 애연가들의 건강을 위해서 좋지 않다는 생각에서 폐기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고 도의적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창고에 보관된 이프 담배는 지난 3월 10일 충북대학교 연초연구소 시험성적 결과 적합제품인 것으로 확인됐고, 서울시로부터 판매 허가도 받았다. 제품만 놓고 봐서는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다.
| | [현장] 경남 양산 담배 보관 창고에 가보니 | | | |
| | ▲ 트럭으로 운반되는 이프 담배 | | 22일 오전 9시경 경남 양산 소재 황성물류 창고 안. 3대의 대형 트럭이 도착하자 2대의 지게차를 이용해 담배상자를 싣는 작업이 시작됐다. KT&G 직원 5~6명이 나와 사진을 찍으면서 수량을 파악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사흘째 이프 담배 폐기처분 작업이 진행중이었다.
트럭 1대당 400개의 담배상자가 실렸고, 이렇게 담배를 나눠 실은 트럭 3대는 곧바로 울산으로 향했다. 이날만 2400상자의 담배가 울산 소재 소각장으로 운반돼 폐기됐다.
트럭에 싣는 작업이 거의 끝나갈 즈음 현장에 나와있던 최아무개씨를 만났다. 최씨는 KT&G 직원. 명함을 건네면서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그는 "양산세관"이라고 말했다. 다시 '세관 직원이냐'고 묻자 말을 바꿔 "KT&G에서 왔으며, 신탄진 제조창에서 왔다"고 밝혔다.
물품 보관료와 폐기처분 비용 등에 대해 질문하자 최씨는 "모른다"고 답했다. '어디서 지시를 받느냐'고 묻자 그는 "세관의 지시를 받는다"고 말했다.
구강물산 직원들은 담배가 트럭에 실리는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한 간부는 "물품을 폐기처분하려면 세관 책임 하에 해야 하는데, 직원은 잠시 나왔다가 바로 가버리는 등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물품을 트럭에 싣는 작업이 거의 끝나갈 즈음 반장이라고 밝힌 세관 직원이 나왔다. 양산세관 관계자는 "그 담배는 시중에 한 갑이라도 유통되면 안되기 때문에 세관의 관리감독 하에 폐기처분이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KT&G 직원이 '세관의 지시를 받는다'고 한 것은 업무협조 상황을 그렇게 설명한 것 같다"고 밝혔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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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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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는 왜 경쟁사 담배 폐기에 1억원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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