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케리 케네디의 <진실을 외쳐라>(뿌리와 이파리)를 읽으면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인권운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여성인권운동가들이 당하는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뉴멕시코 태생으로 우르술라회 수녀인 다이애너 오르티스는 과테말라 선교활동 중 89년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돼 윤간과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시체 구덩이에 버려졌다 탈출에 성공했다. 인권, 그 중에서도 여성인권은 어떻게 다를까.
1981년부터 인권운동을 시작한 케네디는 "당시 세계적으로 '여성인권'이라는 것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있었다"며 "그래서 여성인권이란 것을 찾고자 노력했고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성인권회의'를 172개국이 가입한 상태이며 미국은 아직도 회원국으로 가입하지 않았다"며 "따라서 미국의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고 신랄하게 말한다.
"20년 전만 해도 여성 인신매매, 여성 할례, 남녀 임금 차이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동안 인식의 변화와 함께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됐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여성 스스로의 노력과 여성들을 위해 싸운 아버지, 오빠 등 다른 가족의 인식 변화 덕분이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로선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일이지만, 그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 반대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권을 특정 정부를 몰아세우는 도구로 악용해서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며 "인권을 무기로 마치 중세시대에 성문을 부수듯 정권을 몰아붙이는 것은 쉬우나, 그것이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진정 개선하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반면, 북한에 대해선 "아직도 전제주의 국가이기에 다른 전제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인권의 개선 가능성이 보이고 있지 않다"며 "이 같은 상황들을 문서화하고 세세히 알려 북한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센터를 설립해 아동노동, 실종, 토착민의 권리, 표현의 자유, 인종폭력, 여성의 권리 등 다방면에 걸쳐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온 케네디는 현재 30여 개국에 파견된 30여 명이 인권대표단을 이끌고 있다.
이 같은 그의 활동 뒤엔 암살당한 형 존 F 케네디의 뒤를 이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왔다가 역시 피살당한 아버지 로버트 케네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아버지는 전 세계를 다니며 마틴 루터 킹 같은 인권운동가들이 독재와 인권 유린에 맞서 싸우도록 도우셨다. 이때 아버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덕목은 바로 용기였다. 이 용기는 바로 도덕적 정의감에 근거한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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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 케리 케네디, 민주화운동가 인재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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