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 케리 케네디, 민주화운동가 인재근을 만나다

케리, <진실을 외쳐라> 한국어판 출판기념회 위해 방한... "작은 노력이 착한 세상 만든다"

등록 2006.05.22 15:17수정 2006.05.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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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케네디(왼쪽)와 인재근씨는 마치 10년 만에 해후한 친자매 같았다. 얘기를 나누는 중간 중간에도 눈인사로, 마주 잡은 손길로, 때론 어깨를 토닥이며 다정한 마음을 전했다.
케리 케네디(왼쪽)와 인재근씨는 마치 10년 만에 해후한 친자매 같았다. 얘기를 나누는 중간 중간에도 눈인사로, 마주 잡은 손길로, 때론 어깨를 토닥이며 다정한 마음을 전했다.여성신문
[이은경 기자] 미국의 인권운동가 케리 케네디가 자신의 책 <진실을 외쳐라> 한국어판 출판기념회를 위해 방한한 길에 민주화 운동 선두에 섰던 인재근씨를 만났다.

케네디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조카이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딸로, 인재근씨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최고위원의 아내로 정치적 가족 배경을 지닌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인연은 인씨가 남편의 고문 사실을 뉴욕타임스 등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 폭로한 용기로 남편과 함께 1987년 로버트케네디인권상을 공동 수상하면서부터다.

지난 12일 자신의 호텔방에서 인씨를 만난 케네디의 첫 마디는 "더 아름답고 더 젊어 보인다"는 친구에 대한 칭찬이었다.

케네디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1988년 당시 "연애에 열 올리며 국제전화비가 많이 나왔다"고 불평하던 처녀 시절 모습을 어제인 듯 떠올리던 인씨는 "인권운동 때문에 세계 곳곳을 방문하고 다니고, 올해 안에 수단도 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케네디에게 대뜸 "그럼 세 딸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되묻는다. 케네디의 답변은 간단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맡겨놓는다는 것.

수양부모협회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씨는 "수양부모협회는 외환위기 당시 버려진 아이들의 수양부모 역할을 담당하는 단체"라며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선 정치적으로 탄압 받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을 도와주는 일을 담당했으나(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총무) 한국이 민주화의 진전을 어느 정도 이뤄냈으니까 이젠 여성,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위한 방향으로 활동 방향을 넓히게 됐다"고 설명한다.

인씨로부터 남편 김근태 의원이 내년 대선 경쟁에 나설 것이란 말을 듣는 순간 케네디는 "김 의원이 더 이상 감옥에 있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인데다가 대선까지 나올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라며 감탄했다. 케네디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엔 인씨는 웃음으로 답했다.


여성신문
그래도 이들의 깊은 끈은 여전히 80년대 후반 그 시절로 드리워 있었다. 당시와 달리 이젠 승리감으로 그때의 고통을 추억할 수 있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 다를 뿐.

케네디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91년 노태우 정권 때 강원도 홍성 교도소에 김 의원이 구금됐을 당시 미국에서 일단의 인권운동가들과 방한해 구명운동을 펼쳤던 일이다.


"옥중에 있는 김 의원을 만나고자 청와대에 면회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이어서 법무부, 미국 대사관 등 세 차례나 연이어 거절당했다. 그래서 (홍성에 내려가) 인재근 여사와 밴을 타고 감옥 주위를 도는데,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의 화신 다스 베이더 같은 전경들이 감옥 주변을 세 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그 세 겹의 라인을 인재근씨와 손잡고 뚫고 들어갔다. 그때의 느낌은 마치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 바닷물이 좌우로 갈라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 인씨가 영어로 '빅토리(victory)!'라고 외쳤다. 사흘 동안 내내 함께 지내면서 그가 한 번도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해 영어를 아예 못하는 줄 알았는데(웃음)."

인씨도 "그 사건이야말로 나와 케리가 당시 정권에서 큰 인권침해를 당한 유일한 공동의 사건"이라며 웃었다.

세계 각지의 인권운동가 51명의 삶을 2년에 걸쳐 5개 대륙 4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책이라고 '진실을 외쳐라'를 설명하는 케네디를 바라보며 인씨가 묻는다. 당신의 책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반향을 일으키길 원하는지.

"한국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인권운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권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내 책이 주고 싶은 메시지는 '소수의 개인이 세상 전체를 바꿀 필요는 없다. 조금의 노력이라도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간다'는 것이다."

인권운동가 케리 케네디가 말하는 '인권운동'…"세상과 맞서는 도덕적 정의감"

여성신문
케리 케네디의 <진실을 외쳐라>(뿌리와 이파리)를 읽으면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인권운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여성인권운동가들이 당하는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뉴멕시코 태생으로 우르술라회 수녀인 다이애너 오르티스는 과테말라 선교활동 중 89년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돼 윤간과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시체 구덩이에 버려졌다 탈출에 성공했다. 인권, 그 중에서도 여성인권은 어떻게 다를까.

1981년부터 인권운동을 시작한 케네디는 "당시 세계적으로 '여성인권'이라는 것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있었다"며 "그래서 여성인권이란 것을 찾고자 노력했고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성인권회의'를 172개국이 가입한 상태이며 미국은 아직도 회원국으로 가입하지 않았다"며 "따라서 미국의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고 신랄하게 말한다.

"20년 전만 해도 여성 인신매매, 여성 할례, 남녀 임금 차이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동안 인식의 변화와 함께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됐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여성 스스로의 노력과 여성들을 위해 싸운 아버지, 오빠 등 다른 가족의 인식 변화 덕분이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로선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일이지만, 그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 반대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권을 특정 정부를 몰아세우는 도구로 악용해서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며 "인권을 무기로 마치 중세시대에 성문을 부수듯 정권을 몰아붙이는 것은 쉬우나, 그것이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진정 개선하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반면, 북한에 대해선 "아직도 전제주의 국가이기에 다른 전제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인권의 개선 가능성이 보이고 있지 않다"며 "이 같은 상황들을 문서화하고 세세히 알려 북한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센터를 설립해 아동노동, 실종, 토착민의 권리, 표현의 자유, 인종폭력, 여성의 권리 등 다방면에 걸쳐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온 케네디는 현재 30여 개국에 파견된 30여 명이 인권대표단을 이끌고 있다.

이 같은 그의 활동 뒤엔 암살당한 형 존 F 케네디의 뒤를 이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왔다가 역시 피살당한 아버지 로버트 케네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아버지는 전 세계를 다니며 마틴 루터 킹 같은 인권운동가들이 독재와 인권 유린에 맞서 싸우도록 도우셨다. 이때 아버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덕목은 바로 용기였다. 이 용기는 바로 도덕적 정의감에 근거한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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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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