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알고 싶다면 '언니네 방'에 노크하세요

[서평] 언니네 사람들의 <언니네 방>

등록 2006.05.23 19:51수정 2006.05.2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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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 겉그림.
<언니네 방> 겉그림.갤리온
남자가 여자를 알고 싶을 때, 가장 쉬운 것으로 일단 '대화'가 떠오를 테지만 알고 보면 그건 그리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다. 솔직한 이야기가 생각처럼 쉽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되레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반면에 책은 제대로만 고른다면 어느 것보다 좋은 도우미가 된다. 다만,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과격한 페미니스트'의 책을 보고 혀를 내두른다면 책을 펼치나 마나다. 또한 '연애'를 목적으로 한 책도 여기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좋은가? 속내를 엿볼 수 있고,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는 책이어야 한다. 이왕이면 소설보다 수필 류가 좋고, 외국의 것보다 국내의 것이 좋다.


그런 면에서 <언니네 방>은 여러모로 반갑게 집을 수 있는 책이다. '일기장에도 차마 쓰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라는 광고 문구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질 만큼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여자들이 하고픈 말들을 고이 담아 놓았기 때문이다.

너무 부끄러워 남자의 얼굴을 붉게 만드는 책 <언니네 방>

먼저 책을 살펴보기 전에 '언니네(www.unninet.co.kr)'라는 커뮤니티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언니네는 몇 가지 규정을 통해서 여성회원들의 글쓰기를 보장하는 인터넷 사이버 공간으로 유명한 곳이다. '안전'하기도 하거니와 다른 곳들보다 '자매애'가 강한 곳으로 알려졌는데 그 때문에 언니네에서는 여자들의 진실한 고백들이 온다. 여기서 살펴볼 <언니네 방>은 그곳에 올라온 글들 중 '보석'같은 글을 모아둔 것이다. 그러니 기대를 걸어도 좋다.

그럼 노크를 하고 방을 들어가 보자. 첫 번째 글의 주제는 '섹스'에 관한 것이다. 아뿔싸, 여자가 말하는 섹스라니! 너무 자극적인 것 아닌가 싶지만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자극과는 거리가 먼, 남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남자들에게 꼭 필요한 글임을 알 수 있다. 글의 소제목들을 살펴보면 "여자는 모두 타고난 에로배우인가?", "힘세고 오래가는 '로켓트 밧데리'가 좋다?" 등이다. 자, 무슨 내용이 있을지 짐작이 되는가?

글쓴이는 토로한다. 남자를 위해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섹스는 그저 피곤하기만 한 일"이라고 말하게 된 사연을. 이 대목에서 남자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신음소리에 왜 그리 민감했는지, 그리고 힘세고 오래가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말이다.


사실 남자들은 그것이 모두 여자를 위한 것이라고 떠들곤 한다. 정말일까? 말로만 여자를 위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남자들의 일방적인, 자신의 만족감을 뽐내기 위한 척도가 아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들은 이내 남자의 얼굴을 붉게 만든다. 왜? 부끄러우니까.




또 다른 방에는 아줌마들은 어쩌고저쩌고 하며 욕하는 아저씨들에게 전하는 뼈아픈 말도 있는데 이것도 남자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데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절대' 접할 수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가득

"사람 많으면 아줌마들 무대뽀로 밀고 들어온다고?
아자씨, 아자씨는 사람 없어도 뒤에 달라붙어 손이 바빠지더라.

아줌마들 게을러서 집 잘 안 치워 짜증난다고?
아자씨, 아자씨는 집 더러워도 리모콘 발로 쿡쿡 누르면서 누워 있다가 덜 지저분한 곳으로 발 딛고 다니더라.

할 일 없는 아줌마들 차 끌고 나와서 길이 막힌다고?
아자씨, 아자씨는 옆에 다른 여자 앉히고, 드라이브 한다고 나와서 길 막히게 하더라." - '책' 속에서


<언니네 방>에서 만날 수 있는, 이곳이 아니면 '절대' 접할 수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쿨한 남자와 나쁜 남자의 차이점, 비혼 여자나 유능한 여자로 사는 것, 레즈비언, 이혼을 꿈꾸며 산다는 것, 여자들의 오줌 소리에 관한 생각, 여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제안 등 여자들의 솔직한 '글'들이 대거 포진돼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니네 방>을 노크할 때마다 '여자'를 알 수 있다하여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여자들이 얼마나 숨 막히게 살았는지를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그녀들의 답답함이 오롯이 마음으로 전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언니네 방>을 나올 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단지 여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그 아픔들 앞에서, 남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피할 수 있었고 모를 수 있었던 행운 아닌 행운이 실은 불행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깨닫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이 고개 숙이는 것을 고까워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반기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억압받아야 하는 '여자'들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가? 한번 다가가 보지 않겠는가? '당신'을 위해, '당신'과 다른 누구를 위해,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결코 어렵지 않다. 책에 담긴 진심만 만나면 된다. 그러면 '당신'은 최소한 아주 짧은 한 뼘만큼은 커지리라. 소중한 그것으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갤리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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