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원 입증 책임의 '공'은 이익치에게 넘어갔다

150억원 사건은 '제로섬 게임'...논리적으로 '박지원 무죄면 이익치 유죄' 성립

등록 2006.05.25 11:23수정 2006.05.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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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현대비자금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재판장 이재환 부장판사)의 150억원 무죄 판결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는 '어두운 터널의 끝'이지만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게는 '새로운 터널의 시작'인 셈이다.

이번 재판부의 무죄판결로 이익치 전 회장은 자신이 직접 박씨에게 건넸다는 1억원짜리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 150장(150억 원)의 행방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사실 처음부터 '제로섬 게임'이었다. 현대건설에서 CD 150장이 만들어져 이익치 전 회장에게 건네진 대목까지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서로 일치하는데, 그 돈이 박지원 전 장관에게 건네졌다는 비자금 '출구' 부문에서만 "줬다"와 "안 받았다"로 진술이 서로 상반되기 때문이다.

즉 검찰이 계좌추적을 한 결과, 2000년 4월 7일 9개 금융기관의 현대건설 계좌에서 150억 원이 현금으로 인출되어 농협에서 전액 CD로 바뀌어져 누군가에게 건네진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준 자'와 '받은 자' 중에서 어느 한쪽은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이익치, '플리 바기닝' 의혹 제기 이후 <오마이뉴스> 고소

게다가 이씨가 해외 도피중인 전직 무기중개상 김영완(미국 체류) 씨와 공모해 자신의 아들 명의로 개설한 비밀계좌를 통해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사망)의 비자금을 빼돌린 구체적인 정황과 이씨가 아들 명의로 빼돌린 수천만 달러가 지난해 9월부터 미국 뉴욕의 한인 부동산타운에 투자됐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고 있다.

이익치씨는 이와 관련된 내용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오히려 이런 의혹을 보도한 <오마이뉴스>와 <월간조선>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12일 대법원이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한 현대비자금 150억원 사건이 파기환송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음에 따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권노갑씨 200억원 수수 사건의 재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영완씨의 측근 O씨(재미교포)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익치씨는 (박지원씨뿐만 아니라) 권노갑 씨의 돈 수수 내용에 관해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LA의 한미은행에 이씨 아들 이름으로 개설된 계좌를 통해 이씨가 빼돌린 정몽헌 회장의 돈이 세탁된 증거도 가지고 있지만 공개하기엔 너무 파장이 클 것 같아 망설여진다"고 밝힌 바 있다.

<오마이뉴스>도 O씨가 "이익치씨에 대해서는 검찰이 왜 입건조차 안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김영완씨의 통화내용을 들어보면 대검 중수부와 '딜'(deal)을 한 결과라고 본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해 검찰에 대한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했다.


그러자 이익치씨는 "이익치 큰아들 LA 비밀계좌로 스위스연방은행에서 1900만 달러 송금" 제하의 <오마이뉴스> 기사(2004년 11월 17일자) 등을 문제삼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를 검찰에 고소하는 한편으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그런데 이씨의 갑작스런 소송은 검찰의 '사주'나 '공조'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언론 취재를 기피해온 이씨가 <오마이뉴스>가 검찰과의 모종의 '딜' 의혹을 추가로 제기한 직후에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것도 석연치 않거니와, "이익치씨가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는 검찰 관계자의 불평이 전해진 뒤에 그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검찰, 이익치씨 재수사하지 않으면 자신의 '결백'을 의심받는 상황에 빠져

실제로 중수부 과장 시절에 이 사건 주임검사로서 검찰측 논고(論告)를 맡은 남기춘 청주지검 차장검사는 지난 4월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이 언론계에 구축해 놓은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이익치 회장이 거짓말쟁이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이익치 회장 본인이 각종 소송을 통해 모두 심판받게 할 것"이라면서 이익치 씨의 거짓진술과 해외재산 의혹을 파헤친 언론보도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남기춘 검사는 이에 앞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익치씨 계좌추적은 안했다"고 전제하고 "해외계좌는 전혀 파악이 안되며 이익치 계좌추적을 왜 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바 있다.

또 이익치·김영완씨 두 사람의 공모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것은 순수한 논리상 그렇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이익치씨가 김영완씨와 짜고 배달사고를 냈을 가능성은 다른 정황상 전혀 없다고 본 것"이라고 말해 그 가능성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검찰은 이익치씨를 재수사하지 않으면 자신의 '결백'을 의심받는 상황에 빠졌다. 대북송금 특검 및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대북송금 관련 공모자이자 현대비자금 관련 '뇌물 공여전달자'인 이익치씨에 대해 입건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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