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보물섬' 간송 미술관 어때요?

6월 4일 막내리는 간송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

등록 2006.05.27 08:55수정 2006.05.2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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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복면을 한 남자 둘 혹은 셋. 갖가지 도구들을 들고 박물관에 잠입한다. 분명 경비들은 졸고 있다. 무사히 관문을 통과한 후 떡하니(!) 그림이 있는 방에 도달한다. 그러나 마지막 관문은 레이저 트랩. 살짝이 건드리기만 해도 경보음이 우렁차게 울리기 때문에 아주 조심히 그리고 날렵하게 한 발짝씩 다가가 아주 섬세한 도구를 이용, 그림을 훔쳐 달아난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도둑을 잡거나 아니면 도둑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져 누군가가 죽고 그 복수를 그의 딸이 한다든지 아니면 그 형사와 도둑 사이에 미묘한 애정 전선이 오간다든지 하는….


"맞아 맞아!"하고 웃음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웃고만 있기에는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마치 영화 속의 박물관이나 전시회들이 왠지 외국의 고상한 분위기에서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와 금괴도 아닌 작은 화폭 하나에 그들이 안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는지.

"세계에서 유명한 박물관은 무엇이 있나요?"라고 하면 "대영박물관? 루브르? 그리고 스페인의 프라도 박물관 정도"라고 답할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거대 제국주의의 장본인들이라는 점이다.

이들 도시들은 침략을 받지 않았으니 오래된 건물들이 파괴되지 않고 관록을 과시하며 남아 있다. 또 저 세 박물관 안에는 본국의 예술품 못지 않게 식민지 국에서 약탈을 하거나 상호 합의하에 반입해 온 예술품이 많이 있다. 이들은 이같은 박물관이나 갤러리 그 외의 수많은 문화유산으로 수십 년 동안 막대한 관광 수입을 막대하게 끌어 모으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문화재들은 다 어디에 가있을까? 프랑스에 가 있는 직지심경이나 일본이 꼭 쥐고 있는 몽유도원도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왜 그랬을까? 왜 우리는 아껴주고 잘 지켜내지 못했을까. 한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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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솔지

a 서울의 숲속에 숨어 있는 보물섬

서울의 숲속에 숨어 있는 보물섬 ⓒ 김솔지

하지만 여기 있다!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특별전이. 매년 봄과 가을에 기획전을 열어온 간송미술관이 이번에는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특별 대전(21~ 6월 4일까지)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는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등 대표작 100점이 나왔다. 이렇게 국보급이 전격 공개되기는 약 15년 만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아주 부잣집에 태어났고 부에 대한 간섭을 할 만한 친인척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이에게 막대한 부가 주어졌다? 뻔한 이야기대로라면 이리저리 탕진하거나 아니면 사업을 번창하게 해 더욱 거부가 됐을 텐데…. 정말 고마운 일이고 감사드릴 일이다.

전형필 선생은 주위의 소중한 분들과 한국의 문화재들을 수집하시는 데 전 생애를 바치셨다고 한다. 골동계의 원로인 장형수씨가 1933년 무렵 친일파 매국노 송병준씨 집에서 아궁이 땔감으로 쓰이고 있던 겸재 정선(지금 간송미술관에 비치되어 있는 해악전신첩)의 화폭을 구출해 간송 선생에게 가져간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아찔하다.


a 이야. 가까이서 숨결이 느껴진다.

이야. 가까이서 숨결이 느껴진다. ⓒ 김솔지

a 머여머여! 나도 볼래

머여머여! 나도 볼래 ⓒ 김솔지

a 이것이 훈민정음이여

이것이 훈민정음이여 ⓒ 김솔지

간송미술관은 무척이나 붐빈다. 훈민정음 원본, 고려청자, 정선, 신윤복, 장승업의 그림들. 마치 중고등학교 때 미술책을 한 번 쭉 훑어 보는 듯하다. 아마 막연하게 우리 것을 찾으면서 항상 아쉬움만 느끼던 많은 분들이 제대로 된 알찬 볼거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줄지어 찾는 것이 아닐까. "교과서에서 많이 봤는데 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몇 백 년 전 예술인들의 섬세한 붓글씨, 정갈하게 빚어진 도자기, 그리고 모나리자만큼이나 미묘한 표정의 미인들(특히나 그 미소와 함께 한쪽 발만 내미는 기교란)을 보는 맛은 색다르다.

a "모나리자만큼이나 미묘한 걸" <미인도>

"모나리자만큼이나 미묘한 걸" <미인도> ⓒ 김솔지

이번 전시회는 6월 4일이면 문을 닫는다. 전시회장 건물 입구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고 꽃밭들과 마치 동물원을 연상시키는 동물 우리, 그리고 공작, 개, 새들이 우리를 반긴다. 전시회장 안에서는 유리에 얼굴 맞대고 선조의 막걸리 내음과 고뇌 그리고 경지에 이른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빼앗긴 연인이나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한없는 미련을 가지고 서러워한다. 그런데 통곡하다 멈추고 주위를 둘러 보면 평소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던 가족이나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친구들에게 미안해질 때도 있다. 억울하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들에게도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한국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우리 것들을 금지옥엽 아껴주는 것도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a 900년도 넘게 당신을 기다려왔습니다. 청자 원숭이 연적

900년도 넘게 당신을 기다려왔습니다. 청자 원숭이 연적 ⓒ 김솔지

a 에고 지친다. 보물을 너무 많이 봤어

에고 지친다. 보물을 너무 많이 봤어 ⓒ 김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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