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라면

등록 2006.06.05 09:38수정 2006.06.0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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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사람의 자세

한 그릇의 라면에도 정열과 예절이 있다. 드럼통만한 큰 통에 도야지 두 마리의 뼈를 통째로 넣어 가스불을 최대로 올린다. 일흔두 시간을 불을 때 삼십분 마다 일어나는 거품을 걷어내고 물이 졸아들면 다시 붓고 또 졸아들면 다시 붓고 ... 이것이 삶는다는 것의 기본이다.

돼지고기는 입에 넣으면 녹아야만 한다. 손님들이 씹을 틈을 주면 안된다. 북해도 산 검정 돼지를 실로 꽁꽁 묶어 푹 삶는다. 젓가락을 찔러 힘을 안 주어도 통과가 되어야 한다. 살과 비계의 비율이 2대1의 비율이어야만 한다.

면은 쫀득쫀득이 생명, 물 반 계란 반을 넣어 기계로 반죽을 한다. 삽시간에 면이 완성되면 면발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햇볕에 말린다. 적당히 마르면 밀가루를 묻혀 하루를 재워두어야만 한다. 재워두지 않으면 면끼리 싸움을 한다.

먹는 사람의 자세

기본 한시간은 기다려 주리라. 맛있는 것을 넘어선 면과 국물과 고기의 조화를 감상해 주리라.

신문을 들고 만화책을 읽으면서 십분 만에 먹고 나올 것이지만 한시간을 투자해 기다려 주리라.


다 먹은 후  주방장에게 잘먹었습니다를 잊지 말도록.

포만감은 한순간의 트림으로 튀어나온다. 꺼억!


저희 집에서 자전거 타고 오분 가면 나오는 곳입니다만 먹으려고 기다리는데 한시간은 걸립니다. 가기 전에 만화책 두 권 들고 신문 들고 자전거 타고 불이 나게 달려갑니다.

일본 사람들 기다리는 것에는 아주 익숙해 져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들과 함께 그렇게 기다려서 정말 맛있다고 느낀 곳도 별로 없지만 그 중에서 기다릴 만한 곳도 꽤 있습니다. 여긴 그런 곳 입니다.

만약 일본에 오실 일이 계시면 연락 주십시요. 제가 같이 먹으러 가겠습니다. 물론 한 시간 기다릴 마음의 준비는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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