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병치라고 해야 팔려요"

누렇게 보리 익어가는 전남 신안군 송도에 가다

등록 2006.06.05 15:18수정 2006.06.0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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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녹음이 짙어질 무렵 서민들이 맛있고 가장 싸게 먹을 수 있는 횟감으로 무엇이 있을까. 회를 즐겨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술을 즐겨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쉽게 '병치'를 기억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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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치는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은 채로 갈무리 해 냉동실에 보관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다. 머리와 내장을 잘라내고 잘 갈무리해 냉동실에 넣었다가 썰어 따뜻한 밥에 얹고, 마늘과 고추 그리고 집 된장을 상추와 깻잎에 가득 싸서 한 입에 몰아넣고 씹으면 달고 고소함이 입 안 가득하다. 여기에 소주라도 한잔 곁들이면 부러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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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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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다른 병치도 '지도병치'라고 해야 팔려요"

"왜 이렇게 비싸요. 며칠 전에는 10만원도 안 되던데."

30미 한 상자에 12만원이라는 주인의 이야기에 병치를 사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손님이 벌써 두 번째 묻는다. 20여개의 생선가게들이 늘어선 송도어판장을 두 바퀴 돌았다는 이야기다.

이곳 가게들은 모두 중매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들이다. 싱싱한 생선을 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점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바다에서 비슷한 그물로 잡은 것들이라 거래되는 생선들이 비슷하다. 그래도 손님들이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오늘처럼 쉬는 날이거나 주말이면 지도읍에 위치한 신안수협송도공판장의 주차장은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다른 상품과 달리 갯것들은 물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물이 살아나는 '산짐'이나 '객기사리' 무렵에 병치가 많이 잡히고 조금 물때에는 적게 난다. 당연히 가격도 상자에 8만원 하던 것이 조금 물때에는 12만원까지 오른다. 바다와 갯일을 모르고 백화점에서 고정된 가격만 보아온 '육지 것'들의 눈으로 보면 왜 비싸게 받느냐고 따질 일이지만 후덕한 송도상인들이 이를 설명하기 보다는 한 마리 더 얹어주는 것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작은 섬에 광주는 물론 멀리 다른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병치'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다른 해역에서 잡는 병치들도 '지도병치'라고 해야 팔리겠는가. 이 모두 신안의 갯벌 탓이다. 갯벌에서 나는 생선치고 안 맛있는 것이 없다. 특히 이곳 갯벌이 게르마늄 갯벌이고 보면, 제철에 나는 음식에 건강에 좋은 갯벌이라 '웰빙'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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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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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병치가 이곳 바다에서만 나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 어디 포구나 조금 무렵에 병치그물을 손질하는 어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박해 있는 배들의 십중팔구는 병치 잡는 그물을 싣고 있다. 크면 고용된 선원들까지 네댓 명이, 작으면 부부 혹은 부자지간에 그물질을 하는 것이 병치철의 바다풍경들이다.

전국에 유통되는 병치의 60% 이상 공급하는 곳이 전남 지도읍에 위치한 손바닥만 한 작은 섬 '송도'다. 이 섬에는 고추와 깨를 비롯해 밭농사와 갯벌을 막아 마련한 작은 논에 벼농사를 짓는 70여 호의 주민들과 10여 년 전부터 운영되고 있는 '송도공판장'이 있다.


신안수협에서 운영하는 '송도공판장'은 겨울철 몇 달을 제외하고 늘 문이 열려 있다. 광어, 농어, 돔, 갑오징어 등 잡어들이 잡히기 시작하면, 기세등등한 찬바람도 물러가고 병치들이 한두 마리씩 그물에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놈들이 남해 먼 바다에서 겨울을 지내고 봄꽃 소식들이 남쪽 섬에서 들려오기 시작할 무렵 조도해역을 지나 임자도, 우이도, 안마도 인근 해역으로 이동해 산란준비를 한다.

이곳 갯벌은 모래갯벌이 발달해 하늘이 주신 산란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찍부터 모여들었던 모양이다. 돈 실으러 간다는 칠산어장의 조깃배들도 이곳에서 그물질을 하며 올라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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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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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7월쯤이면 이곳 어장에서 잡은 민어가 미식가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병치가 잡히는 임자도 일대의 어장은 일제강점기 민어파시가 형성되어 일본기생들이 기모노에 사미센을 연주하며 머물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해방 전까지 임자도 타리섬 앞(대광해수욕장) 모래밭에는 100여 동의 초가를 이은 임시 막들이 지어져 파시촌이 형성되기도 했다.

여기서 잡은 민어들은 운반선을 거쳐 무역선으로 옮겨져 바로 일본으로 보내졌다. 민어를 즐겨하는 일본인들 중에는 아직도 '타리파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찬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8월이면 민어 대신 농어가 다시 공판장을 차지하고, 겨울이면 김장용 새우 '동백하'가 12월 말까지 판매되면 공판장은 문을 닫고 4월까지 휴식에 들어간다.

'당일바리' 병치로 승부한다

최근 근해어장에서 조업을 하던 어선들이 감척되면서 서남해 연안어장으로 회유하는 고기들이 과거에 비해서 많아져 병치잡이 어선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송도 중매인협회 진미봉(46) 대표의 이야기다.

송도수협공판장의 일년 매출액은 350~400억원에 이르며, 전국 군단위 수협에서 최고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이곳 송도에서 거래되는 대표적인 어종은 단연 '병치'와 '새우젓'이다. 임자도 전장포를 비롯해 어민들이 직접 가공한 새우젓은 화요일과 목요일 각각 목포와 송도에서 위판이 이루어지는데, 이곳에서 거래되는 양이 전국 새우젓 공급물량의 70%에 이른다고 한다.

광천, 강경, 곰소 등 전국 유명 새우젓은 대부분 이곳에서 유통된 것들이다. 요즘 제철을 맞고 있는 병치의 경우도 전국에 공급되는 80% 가량이 이곳 송도를 통해서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 진씨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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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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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송도위판장이 이렇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10여 년 전 진씨를 비롯해 4~5명이 중매인으로 참여할 때만 해도 어민들이 이곳을 찾지 않아 직접 운반선으로 어장을 찾아다니며 잡은 고기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송도위판장은 어판장의 크기로 본다면, 며칠씩 바다에 머물며 근해에서 잡은 생선을 공급하는 목포, 군산, 대천, 인천 등 대도시 어판장에 견줄 수 없다.

하지만 연안어장에서 5~10톤 내외의 작은 배를 타고 그물질을 해 당일 잡은 생선을 새벽을 가르고 달려온 '당일바리'이기 때문에 신선도에서는 비교할 수 없다. 바로 이점 때문에 병치만 해도 한 상자에 인근 목포에 비해서 1~2만원 더 비싸게 거래되며 병치철이면 주차장은 전국에서 찾아온 차들로 가득하다.

요즘 송도위판장은 조금철을 제외하고는 오전 10시에 공판을 시작해 밤 9시를 넘기기 일쑤다. 송도지역 주민들과 지도 주민들은 이곳에서 하역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신안군에서는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송도위판장을 회센터, 유통과 판매 그리고 관광을 겸하는 복합센터로 개발하려고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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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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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지금 서남해안의 어느 지역에서나 잡히는 병치라지만 이곳 병치를 덮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지역의 특성을 살린 명품은 단연 '병치'라 할 것이다. 최근 관광을 비롯해 축제의 추세를 볼 때 볼거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지역토착 먹거리이다.

대하, 전어, 키조개, 주꾸미 등을 이용한 지역축제들이 봄과 가을철에 어촌지역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다. 하지만 병치처럼 생산에서 지역성이 강하고, 소비가 광범위한 생선도 흔치 않다. 뿐만 아니라 보관성도 좋고, 계절적으로도 축제가 집중해 있는 봄철과 가을철을 피해 여름철로 접어드는 시기이기 때문에 더 적절하다.

신안처럼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은 아무리 좋은 축제라 하더라도 접근성이 떨어져 성공하기 어렵다. 다행스럽게 송도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근 사옥도와 증도도 이어지는 다도해의 특징도 간직하고 있다. 전국 명품으로 자리한 지도병치와 임자도민어 그리고 다도해의 다양한 해양문화자원을 활용한 지역축제의 소재로 삼아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섬섬玉섬'에도 연재됩니다.

병치를 회로 먹기에는 6월달이 가장 좋습니다. 송도공판장에 주문을 하면 얼음에 넣어 잘 갈무리한 병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섬섬玉섬'에도 연재됩니다.

병치를 회로 먹기에는 6월달이 가장 좋습니다. 송도공판장에 주문을 하면 얼음에 넣어 잘 갈무리한 병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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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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