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에서 기원전 로마의 영화를 보다

파묵칼레, 에베소 그리고 트로이

등록 2006.07.10 15:21수정 2006.07.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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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온천의 천국 파묵칼레, 풍요롭고 평화로운 마을 전경

지중해 연안의 도시 안탈랴는 관광도시이지만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문화 유적을 간직한 수없이 많은 고대도시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옥외 극장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그 공명 상태까지 배려한 시설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자주 들른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중해를 끼고 그 뒤로 펼쳐져 있는 산과 어우러진 절경이 대단하다.


온천 지역인 파묵칼레는 이 지역 온천수에 다량 함유된 탄산칼슘 성분이 물속의 산소와 결합되어 침전한 곳으로, 석회봉 같은 것이 가득 차 있는 회색 지역이다. 이 온천지역 위쪽에 터를 잡고 살던 로마 귀족이나 상류층 사람들은 세상 최고의 낙을 즐겼으리라. 이 지역에서 나오는 온천물로 눈을 씻으면 완쾌된다는 라우디에르를 만들어 돈을 벌었던 이들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언덕 아래 펼쳐진 마을의 전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회색 온천이 흘러내려가 호수를 만들고 그 너머 평지에 펼쳐진 마을의 모습은 평화롭고 풍요한 삶이 가득한 곳으로 보였다.

에베소, 로마의 영화 간직한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

에게해 해안도시 이즈미르에서 찾아간 에베소는 그리 멀지 않았다. 초기 에베소는 기원전 10세기에 건설되었다고 하니, 그 위치가 사람 살기에 무척 적합한 곳이었다. 로마시대에 번창하여서 인구 25만의 도시였다고 한다.

세 개의 대로변에 각기 위치한 대소 공연장, 신전, 도서관, 유곽, 손도 씻을 수 있게 만들어진 수세식 공중변소, 창고, 체육관, 널찍한 목욕탕 등 로마인들이 살다 간 흔적을 2000년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마차를 위한 대리석 길, 물이 흐르도록 만든 길 옆의 물길, 하수도 시설을 보면서 당시 로마 도시들은 어디든지 그러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반원형 대공연장은 기원전 3세기에 건축되었는데 로마시대에 수차 확대되었다. 서기 53년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설교를 하였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트로이에 관한 관심은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로 증폭된다. 1860년대 고고학 배경이 전혀 없는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발굴 작업에 성공했다. 기원 전 3000년 도리아인들이 세운 트로이 왕국을 신화가 아닌 실존의 사실로 규정지었던 것. 트로이는 긴 역사흐름 속에서 자연 간척으로 육지 도시가 되어 있지만, 동전이 수없이 발견되어 트로이가 당시 에게해, 지중해의 무역 중심지였던 항구도시로 판명되었다. 슐리만 부인이 발굴한 머리장식과 목걸이를 걸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발굴물들을 세계 유수한 박물관에 처분하면서 이들 부부가 취했다는 경제적 이익의 자릿수를 가늠할 수 있었다.


고고학의 기적 ‘트로이’, 그리고 원형극장 안 연극

당시의 목마가 들어갔다고 하는 트로이 왕국의 부서진 동쪽 성벽 앞에 선 필자는 신화와 실제가 교차하는 현장에 온 감흥에 젖었다. 주변에 피어 있는 노랑, 보라, 하양, 분홍의 수많은 들꽃들이 갈대와 함께 바람에 팔랑이면서 이 무너진 옛 성터에 생명의 힘을 가미하고 있었다.


1000여 명이 들어갈 정도의 원형극장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작은 무리를 보았다. 초등학생 서너 명이 한국인들의 시끄러운 원형극장 설명이 끝나자 바닥무대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둥그렇게 만들어진 폐허의 원형극장 계단들 중간에는 부모들로 보이는 20여 명의 서양인들이 앉아 있었다. 필자는 한 대 얻어맞은 모습으로 그들을 살폈다. 저 유럽인들은 3000년 역사 속에 2006년 6월이라는 시점을 접목시켜서 자신의 삶을 그 역사적 선상에 놓는 방법을 어린아이들에게 체험시키고 있지 않은가? 학원 뺑뺑이로 지쳐 있는 한국의 어린이들이 떠오르면서 그들이 무척 부러웠다.

터키의 산야는 무척 다양하다. 앙카라에서 카파도키아와 콘야로 가는 길은 밀밭으로 가득하다. 세계 밀 3대 수출국답게 밀밭이 끝없지만, 가다 보면 차창 밖의 전원이 무척 넓다. 그 넓은 평원에 길이 곧바로 뻗어 있다. 동서양을 잇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오갔을 비단길을 우리들은 21세기에 버스를 타고 달렸다. 가끔 비단길 거상들이 머물다 간 허물어진 집터 케르반사라이가 진작 사라진 비단길을 말해주듯 거의 다 허물어진 형태로 역사적 흔적을 보여주었다.

차창 밖의 나무 한 그루 없는 넓은 평원에 수천, 수만의 색갈이 조합되어 여행객의 시선 속에 신비한 감탄사를 연발시킨다. 푸른 초원의 표면인 초록색과 흙색 사이에 이렇게 많은 색감이 존재한단 말인가? 연두색, 연초록, 진초록, 쑥색, 흙 갈색, 검은 갈색, 베이지색 등. 나는 더 이상 색깔 이름을 엮어낼 수 없지만 차창 밖에 펼쳐지는 노랑에서 초록, 흙색 사이의 색깔의 향연에 감탄할 뿐이었다.

산 너머 산인 한국 땅에서 간 여행객에겐 푸른 초원이 정말로 평평하게 펼쳐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넓은 초원 속에 가끔 보이는 마을은 색 바랜 주황빛의 지붕들이 세련된 모습을 연출한다. 10여 채, 또는 20여 채 집들 속에 어김없이 보이는 첨탑은 이슬람사원들이다. 동네 유지가 만든 사원이면 첨탑이 한 개로 소규모 사원이고, 첨탑이 2개면 귀족이 지은 사원이므로 그 규모가 커진다(첨탑이 4개면 국가 차원의 사원이어서 이스탄불에서만 불 수 있었다). 동네마다 다른 사원의 모양이 흥미로웠다.

차창 밖으로 훅훅 지나가지만 다양하게 지어진 사원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 둥그런 돔이 사원에 거의 다 들어가지만 어떤 사원은 사각집이기도 하다. 그러나 첨탑은 어김없이 붙어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있는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한 첨탑은 이슬람 기도 생활에 필수이기 때문이다.

콘야 대평원을 넘어서 지중해 도시 안탈랴로 가려면 성경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에서 넘어간 타우르스 산맥을 넘게 된다. 한참 평원을 달리다가 슬슬 나무들이 보여서 가끔 포플러 나무가 무리지어 보이고 점점 나무 무리가 자주 보이더니 돌바위도 뜨문뜨문 나타난다. 이건 분명 넓은 산이다. 이어지는 낮은 언덕 산들의 평평한 곡선들이 멀찍이 보이고 차창 길 근처 평지에는 들꽃이 장관이다.

끝없는 밀밭, 올리브나무 밭의 풍요로움에 숨막혀

붉은색 야생 양귀비를 비롯하여 노랑, 주황, 보라, 흰색 야생화들이 산 들판 여기저기를 여유롭게 넘나들며 피어 있다. 터키는 넓다 못하여 산맥 꼭대기도 이렇게 넓은 형태인가? 때로는 돌산 사이를 달리게 되는데 돌과 나무가 잘 어우러진 가파른 산이 나오기도 한다. 가파른 산이 제법 오래 지속되다가 다시 평원성 산지로 바뀌는 타우르스 산맥지역이다.

밀밭과 함께 올리브나무 밭도 끝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심어서 기르는 곳도 있지만 산등성이 높이까지 덮어버린 야생 올리브 나무를 보면서 그 풍성함에 기가 질렸다. 약 8000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있지만 실제 수확은 20%에 그친다고 하니, 이는 신이 허락한 옥토란 말인가?

터키는 태양이 참 좋은 지역이다. 집마다 지붕에 달려있는 태양열판으로 이를 알 수 있다. 이 지역 모든 집은 열판을 지붕에 붙여서 자체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햇볕 좋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평원이나 구릉지를 보면서 무엇이든지 재배할 땅이 이렇게 널리 퍼져 있으니 참으로 풍요로운 땅이라고 여행 내내 생각했다.

터키는 분명히 다양한 역사와 풍요로운 산천에서 살고 있다. 터키 사람들과 어우러져 보낸 시간이 없어서 그들의 종족적 다양성은 가늠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다양한 역사 속의 사람들이 거쳐 갔으니 그 혈통엔 다양한 종족성이 섞여 있으리라고 가늠해 본다.

아시아와 유럽의 길목에서 어쩔 수 없이 담당해야 되는 ‘교차로 국가’, 터키를 거쳐간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시작되어서 페르시아,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제국과 현재의 터키공화국이다. 그 많은 역사와 문화의 터를 제공한 터키 산천에서 터키 역사의 대여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 속에 21세기에 동방에 사는 필자도 한 객으로 잠깐 뒹굴 수 있어서 행복했다.

덧붙이는 글 | 박은경 / 세계 YWCA부회장, 연세대 객원교수

덧붙이는 글 박은경 / 세계 YWCA부회장, 연세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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