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출마는 우롱" - "그래도 맹형규"

[7·26 재보선 현장을 가다-ⓛ] 서울 송파갑

등록 2006.07.21 06:15수정 2006.07.2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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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형규 한나라당 후보가 송파갑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맹형규 한나라당 후보가 송파갑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맹형규 선거캠프 제공
"맹형규 의원이요? 이 동네에서는 인기 좋죠! 그런데 다시 나온다니까 찍어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서울 송파구 방이사거리에서 만난 한 주부는 19일 맹형규 전 한나라당 의원의 송파갑 보궐선거 재출마에 대한 의견을 묻자 짧게 답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지역 유권자들은 26일 선거의 판세를 묻는 질문에 맹 후보의 우세를 점치면서도 대체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맹 후보는 1월 31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한 바 있다. 이번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가 맹 후보 자신이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같은 회기 내에 개인 사정으로 의원직을 사퇴한 사람이 지역구 보궐선거에 재출마하는 것은 전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2001년 선거법 위반 재판을 받던 최돈웅 전 의원(강릉)의 경우 대법원 판결 전에 사퇴한 뒤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했지만, '최돈웅 해프닝'의 재연을 막기 위해 선거법이 개정되는 등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송파구청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아무개씨는 5년 전 최씨의 재출마 소식에 혀를 찼던 기억이 있다. 당시 최씨를 당선시킨 강릉 유권자들을 욕했던 그는 이번 보선으로 인해 송파구 주민들이 같은 시험대에 올랐음을 잘 알고 있다.

"서울시장 출마하겠다고 의원직 내던졌다가 당내 경선에서 떨어지는 걸 보며 '안됐다'는 반응들이 많았는데, 다시 나온다고 하니 기가 막히죠. '10년 동안 맹형규 찍었는데, 이번에는 투표 안 하겠다'는 사람도 많아요."

올림픽공원 앞에서 자영업을 하고있는 문아무개씨도 "(의원직 사퇴는) 솔직히 정신 나간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일이 잘 안 풀리면 좀 쉬다가 다시 나오는 게 도리"라며 "그분이 좋은 일을 많이 해서 표를 주긴 할 텐데…, 영 착잡하다"고 전했다.


"이번에는 맹형규 혼내줘야겠다"

그럼에도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번에도 맹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여론조사 회사들의 최근 조사에서도 그가 59.5%(더 피플), 63%(글로벌 리서치)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맹 후보의 대항마인 열린우리당 정기영 후보는 20.3%(더 피플), 16%(글로벌 리서치) 지지에 그쳤다. 선거가 평일에 치러지고 휴가 시즌이 겹치는 관계로 투표율이 저조하면 맹 후보의 우세가 더욱 확연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맹형규를 혼내줘야겠다"고 벼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잠실의 한 아파트 주민은 "당에서 나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나는 죽어도 안 된다'고 버텼어야 했다"며 "이번에 또 당선되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유권자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냐"며 낯을 붉혔다. 풍납동의 주민 한아무개씨도 "맹씨가 10년간 국회의원을 했지만, 별로 해준 게 없다"며 "여당 후보는 이름도 잘 모르지만 경제전문가라고 하니 이번에는 여당을 찍을 생각"이라고 전했다.

유권자 반응에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사람은 맹 후보 자신이다. 그는 19일 지역구 사무실을 찾아간 기자에게 "당분간 재충전의 기회를 가진 뒤 내년 대선 무렵에 의미 있는 복귀를 하고 싶었는데, 이번 재출마로 인해 손해를 본 셈"이라고 말했다.

- 듣기 싫은 소리하는 사람은 없나요?
"이 지역은 안 그래요. (밖에서는) 그렇게 예상하지만, 수년 동안 나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소리 안 합니다. '이번에 나오지 말고 내년에 더 큰 일을 해야지, 왜 나오냐'는 말을 하긴 하더라구요."

맹 후보의 정무특보를 맡고있는 강원석씨는 "국민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당선 가능한) 후보를 내지 않는 것도 수권정당의 도리가 아니지 않냐"고 그를 옹호했다.

맹 후보는 애써 여유를 보이려고 했지만 대화가 끝날 무렵 담배를 한 대 물었다. 3년만에 다시 피게 된 담배지만, 다시 끊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맹 후보는 "백조가 겉으로 보면 우아하지만, 물밑으로는 바쁘게 헤엄치지 않냐"는 말을 남기고 수재의연금을 내기 위해 방송국(SBS)으로 걸음을 옮겼다.

맹 후보 비판 여론 있지만...

지역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는 정기영 열린우리당 후보.
지역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는 정기영 열린우리당 후보.정기영 선거캠프 제공
맹 후보가 '조용한 선거'를 선호하지만 정기영 열린우리당 후보의 사정은 정 반대다. 캐치프레이즈도 맹 후보를 겨냥해 '송파의 자존심 회복'으로 정했는데, 맹 후보가 지역방송국의 TV토론에도 응하지 않아 불만이 많다.

정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송파갑 한 군데에서만 10억원 안팎의 세금을 선거관리 비용으로 쏟아붓는데, 맹 후보가 1∼2억원에 불과한 선거비용을 사후보전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혹세무민"이라고 비난했다.

유권자들이 대체로 맹 후보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이 같은 기류가 지지표로 연결되지 못하는 게 정기영 캠프의 고민이다. 여당이 인기가 없고 후보의 지역연고가 낮다는 게 약점이다.

정 후보의 공보특보를 맡고있는 김동현씨는 "정 후보는 당의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의 기획실장으로서 '서민경제 회복'에 걸맞는 경제전문가"라며 "후보 인지도가 낮지만, 유권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힐수록 지지도가 동반상승하고 있어서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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