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광주항쟁 다룬 작품
국가 이미지 재고에 부적절"

일본 한국문화원, 이승만·박정희 비판 작품도 전시 불가 결정

등록 2006.07.25 18:49수정 2006.07.2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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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일씨의 캐리커처 작품. 왼쪽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태일 열사.
고경일씨의 캐리커처 작품. 왼쪽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태일 열사.엘피 출판사 제공

류진환 일본 주재 한국문화원장이 문화원에서 열리는 만화·영상 전시회의 일부 작품에 대해 내용을 문제 삼으며 철거를 지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25일 오후 6시 일본 도쿄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는 '한 안 갤러리'가 열렸다. '한 안 갤러리'는 지난해 한국 작가 12명이 "일본 내 일부 장르에만 편중된 한국 문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기획 전시회로, <도쿄신문>에 이미 연재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전시회는 첫날부터 일부 작품들이 철거되면서 반쪽행사로 진행됐다. 전시회 시작을 하루 앞두고 만화가 고경일씨의 캐리커처 작품과 <도쿄신문> 기자이자 화가인 김영숙씨의 영상작품 '카페G는 고발한다' 등이 철거됐기 때문이다.

고씨의 작품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김주열·전태일·박종철 열사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을 다룬 것으로, 한국에서는 <현대사 인물들 재구성>(고지훈 저)라는 책에 그림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김씨가 제작한 영상의 경우, 일본인들이 출연자와 스태프 등으로 참여해 만든 것으로 10분짜리 영상 가운데 3초 정도 광주민주화항쟁 장면이 나온다.

문화원측은 이들의 작품에 대해 "예술 작품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높여야 하는 문화원에서 전시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 24일 철거를 지시했다.

문화원장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


류진환 문화원장은 25일 오후 작가들과의 면담에서 "<도쿄신문>에 연재된 작품을 보고 국가 이미지 재고에 좋을 것 같아서 장소를 제공했는데, 작품을 직접 보니 문화원 활동과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고 철거 배경을 밝혔다. 그는 또 "보는 이들이 한국 역사를 잘못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있기 때문에 전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경일씨는 문화원의 이같은 처사에 대해 "이미 한국에서 책으로 출판까지 된 그림인데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며 "철거를 지시한 문화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문화원의 철거 지시에 고씨는 "작품을 뒤집어놨지만, 25일 문화원이 작품을 철거했다"고 주장했다.


김영숙씨는 "광주민주화항쟁은 비극이기는 하지만, 그 곳에서 한국의 민주화 정신이 시작됐다"며 "한국 국민들의 그런 정신이 한일 문화교류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문화원의 결정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 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들의 작품에 대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제 작품을 확인한 결과 문화원에서 전시하기에 너무나 부적절한 내용이었다"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린 작품의 경우, 정치적 문제로 얼룩진데다 한쪽 시각에서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술작품에 소재의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작품을 누가 어디서 전시하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한국문화원에서 그런 작품을 내걸어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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