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캠프', 인천 앞바다에 돛을 올리다

걸음마 단계 <중국어캠프>, 소프트웨어는 있는데 하드웨어 지원 아쉬워

등록 2006.08.02 16:22수정 2006.08.0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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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쟈하오! (大家好!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엔따오 니먼 헌 까오싱!(見到你们我很高興!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색해하면서도 진지하게 또박또박 중국어 원고를 읽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겨우 6개월 배운 중국어실력으로 과연 원어방송이 될까 걱정을 했는데 서툰 발음인데도 첫날부터 7반과 8반 아이들은 전원이 방송을 해야 한다며 저녁방송시간을 늘려달라고 졸라댄다.

인천광역시교육연수원 허회숙원장이 <중국어캠프> 입영식에 환영사를 해 주시고 있다.
인천광역시교육연수원 허회숙원장이 <중국어캠프> 입영식에 환영사를 해 주시고 있다.김대오
이름도 생소한 '중국어캠프(漢語夏令營)'. 고등학생을 대상으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인천 영종도 교육연수원 외국어수련부에서 제2회 중국어캠프가 막을 올렸다.

‘워아이한위!(我愛漢語, 중국어를 사랑해요!)’ 라는 제목으로 인천지역 84명의 고등학생들과 14명의 중국어교사, 8명의 원어민교사가 참가하여 7월 31일부터 8월 5일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열리고 있다.

흔히 한중 양국의 지리적, 문화적 근접성을 설명하며 ‘산동반도의 닭울음 소리가 인천 앞바다까지 들린다’고 한다. 국제공항과 차이나타운, 한중문화원이 위치하고 있는 인천은 한중 양국의 각종 문화와 문물이 조수처럼 들고 나는 관문이며 또 명실상부하게 동북아시대를 선도할 대중국 교역의 전초기지인 셈이다.

인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영종도 경제자유구역 내의 '중국어마을' 조성이나 인천 중구의 ‘중국어특구’ 조성 등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볼 수 있으며 또 '중국어캠프' 개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아직까지 '중국어캠프'를 개최할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캠프를 준비해야 하는 중국어교사들은 우선 영어캠프 전용으로 꾸며진 수련장을 중국적인 분위기로 꾸미는 일부터 시작해야했다. 1년 이상의 어학연수 경험을 가진 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사온 중국물건들을 여행용 가방에 싸 들고 와 캠프장을 꾸미고 교실을 중국소품들로 장식했다. 그래도 영어만 외롭게 울려 퍼졌을 외국어수련부에 중국어가 메아리칠 것을 생각하면 ‘행복한 고생’인 셈이다.


중국어전용구의 간이매점에서 중국어로 간식을 사고 있는 학생들
중국어전용구의 간이매점에서 중국어로 간식을 사고 있는 학생들김대오

이렇게 해서 힘들게 만들어진 ‘중국어전용구’에는 중국의 전통의상을 비롯한 다양한 중국 관련 소품들이 진열되고 또 이곳에는 간이매점도 운영되는데 중국어로 말을 해야만 필요한 간식을 살 수 있다. 캠프장에 매점이 없는 관계로 간식에 목말라하는 학생들에게 간이매점은 대단히 인기가 높은데 자연스럽게 물건사기에 필요한 중국어표현들을 배우게 되는 셈이다.

중국원어민의 지도에 따라 아침체조로 태극권을 연마하는 모습이다.
중국원어민의 지도에 따라 아침체조로 태극권을 연마하는 모습이다.김대오

교육내용은 아침운동으로 하는 태극권과 요가에서부터 오전은 중국어교사 중심의 기본회화과정, 오후는 중국원어민교사 중심의 심화보충과정, 저녁은 경극, 역할극, 노래, 마작반의 클럽활동 시간으로 편성 운영된다.


최첨단 교수-학습시설을 갖춘 교실에서 한 반에 10명! 그것도 한국중국어교사와 원어민교사 2명이 지도하기 때문에 개별학습은 물론 학교 수업에서는 할 수 없었던 학습자 체험 중심의 밀도 있고 다양한 수업진행이 가능하다. 당연히 수업에 대한 교사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 학생들은 빡빡한 일정에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재미있고 중국어를 배우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어 유익하다며 즐거워한다.

흥분된 모습으로 마작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흥분된 모습으로 마작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김대오

특히 중국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해보는 클럽활동시간은 학생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학생들보다 더 흥분하여 마작에 심취하는 원어민교사의 지도에 따라 학생들은 낯선 중국게임의 방법을 배우고 재미를 들였는지 저녁에 숙소에서도 하겠다며 마작을 빌려달라고 졸라댄다.

다양한 교수매체를 활용하여 이뤄지는 밀도있는 수업
다양한 교수매체를 활용하여 이뤄지는 밀도있는 수업김대오
원어민이 중국 런민비를 들고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원어민이 중국 런민비를 들고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김대오

중국대륙을 강타한 <대장금>의 주제가에서부터 아톰동요까지 다양한 중국노래를 배우는 시간도 학생들의 합창소리가 우렁차다. 그리고 방송시간에 기발한 아이디어로 그 노래를 편곡하거나 개사하여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또 역할극 시간에는 조별로 배역을 맡아 ‘모순(矛盾)’ 성어를 공연하며 자연스럽게 성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체득한다. 비록 장난감 창과 방패로 준비된 소품이지만 중국어 대본을 외우고 연기까지 가미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보면 학생들의 그 싱싱한 아이디어와 순발력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경극시간에 아이들은 경극배우처럼 페이스페인팅을 하는데 <왕의 남자>에 나오는 경극장면이 학습자료로 제시되어서인지 특정배우(?)의 분장이 유독 눈에 띤다. 경극배우처럼 분장한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나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사진을 보고 경극분장을 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을 보고 경극분장을 하고 있는 학생들김대오

이렇게 익힌 다양한 중국어와 중국문화에 대한 내용들은 금요일 밤에 골든벨, 말하기대회, 연극공연, 가요제 등의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무대에 올려진다. 이날 발표회는 특별히 캠프참가학생의 학부모와 중국어교사에게도 개방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캠프기간 동안 차이나타운과 한중문화원, 화교학교로 현장학습을 가게 되는데 학생들은 캠프기간 동안 배운 중국어로 직접 물건을 사고 음식을 주문하는 경험을 갖게 된다.

중국어에 ‘뚱뚱이는 한 입 먹어 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팡즈 부스 이커우 츠더-胖子不是一口吃的) 우리 학생들이 캠프장을 중국으로, 캠프 온 것을 중국 어학연수 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무쪼록 캠프기간 동안 부지런히 중국어를 먹고 마시고 싸며 중국어의 뚱뚱이가 되길 바란다.

21세기 주역이 될 우리 학생들에게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은 분명 거대한 탐구의 대상이자 극복해야 할 도전의 상대이다. '중국어캠프'가 중국을 이해하고 또 중국을 극복하는데 작은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다양한 중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다양한 중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김대오

또 방학시간을 누구보다 알차게 보내기 위해 '중국어캠프'에 참가한 우리 학생들이 낯선 환경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상상력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보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캠프를 진행하며 많은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한다. 우선 늘어나는 중국어 수요를 과외나 학원 같은 사교육에만 내맡기지 말고 '중국어 캠프'나 '중국어 주말광장'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로 공교육 안으로 흡수하는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연수를 통해 뛰어난 중국어실력을 갖추고 열정이 넘치는 젊은 교사진들이 가진 캠프 운영에 관한 소프트웨어를 적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적인 지원도 빠른 시일 내에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도 간절하다.

걸음마 단계인 '중국어캠프'도 ‘땅에는 원래 길이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길이 된다’고 한 루쉰(魯迅)의 말처럼 이렇게 ‘맨땅에 헤딩’을 하며 다져진 땅이 더 많은 발걸음들로 모아져 하나의 길이 되어 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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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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